깊어 가는 가을밤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향기로운 찻잔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는 이가 친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아니어도 만개한 목련과 화사한 벚꽃으로 환했던 어느 봄 밤, 캠퍼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함께 있던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그런 생각들이 몰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만 믿고 기약 없이 인연을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볼 필요가 있고, 그렇게 인연을 만들되 제대로 된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저자가 강조하듯 되도록 빨리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서은규의 <그 남자를 차버려라>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랑에 대해서 이제는 웬만큼 알게 되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 책은 남자들의 심리 분석에만 치우쳐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던 연애 지침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현실적인 이야기,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설득력 있게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할 것이며 무릎을 치게 만들 것이다.
책을 먼저 읽은 동생이 묻는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있을까? 너무 극단적인 사례들이야. "
"극단적이긴 하지만 실제의 사례들인 걸. 충분히 있을 수 있지. 다만 당하는 여자들이 너무 불쌍해서 속상할 따름이지."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형의 남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돈 안 쓰는 남자, 잠수 타는 남자, 무심한 남자, 관계 기피증, 마마보이, 의처증, 폭력적인 남자, 바람 피우는 남자, 전 애인과 연락하는 남자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독자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남자들의 유형을 간파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총망라하고 이에 덧붙여 그 남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까지 첨가하여 들려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유익한 책인가.
이 책을 보고 나면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어떤 '문제'이니까. 덜 상처받고 덜 아프기 위해서 여자들은 한 번쯤 이 책을 읽어 봐야 한다. 또한 남자들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평생 어떤 여자에게 나쁜 놈'으로 각인되지 않기 위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책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가장 흔한 유형의 '잠수' 타는 남자였다. 도대체 왜 남자들이 '잠수' 타는 건지 이유가 무척 궁금했던지라 이 책을 읽고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바보였던가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잠수 타는 남자의 속성에 대해 몰랐던 것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사랑을 시작할 때 이유가 없듯이 사랑이 떠나갈 때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이별을 하고 싶다면 깔끔한 이별이 되겠지만, 대게 이별은 덜 사랑하는 어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먼저 통고하게 된다. 그 방법이 차라리 직접적으로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한 마디면 족할 것을 그냥 편하게 '잠수' 타 버리면 상대는 어떻게 될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 같지만 그런 이별 방법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방법이며 가장 잔인한 방법이다. 상대에게 미련을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잠수' 타는 이유는 여자들이 따지거나 울고 매달리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상황을 피할 수만 있다면 여자가 평생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고 해도 그 남자 앞에서만 그러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뜻이라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지 않을 때 인간은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잠수' 타는 남자만큼 잔인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이 사랑을 놓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라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진정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거나 비슷한 어떤 감정일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나쁜 남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 과연 이렇게 당하는 여자들은 천사나 바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며 그 모두가 사랑하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사랑을 않고 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위에서 연애하는 친구들 혹은 지인들, 잘 알지 못하는 선후배들도 이런 과정을 숱하게 겪으며 성숙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랑이 아닌 집착에 빠져 본질을 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책이다. 지나고 보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지 않도록, 시간 낭비 않도록, 마음의 상처를 깊게 내지 않도록 나쁜 남자들과 빨리 이별하도록 도와주는 서은규의 <그 남자를 차버려라>는 그 제목 만큼이나 강한 힘을 독자들에게 실어 줄 것이다.
바야흐로 사랑하기 좋은 계절 4월이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스스로를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남자를 차버려라
서은규 지음,
예문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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