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화/1888/암스테르담 반 고흐 국립미술관도서출판 눌와
병든 세상의 집단병실 - '햇빛 찬란한 나날'
각기 다른 작품이 실려 있는 단편집에 대해 하나의 주제로 서평을 쓰기란 난감한 일입니다. 작가론, 작품론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작품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소설적 소재나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정도이거나 또는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독자의 소설읽기에 약간의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자의 진단처럼 독자들이 '후기자본주의' 같은 골치 아픈 낱말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가벼운 기대 정도로 독서를 시작하면 그 뿐입니다. 실려 있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병원이 등장합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메리와 헬렌'의 두 주인공인 메리와 헬렌은 두 몸이 아닌 한 몸으로 태어난 샴쌍둥이입니다. '김분녀의 일생'에서 손녀는 낙태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고 주인공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바람기와 시댁의 구박을 피해 집을 나와 한 많은 세파를 헤쳐 온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피해자입니다.
'서울의 지붕 밑'의 K는 사고로 거동이 어려운 남편에게 얻어터지면서도 참고 살아가는 파출부이고 '부두키트 세러피'는 말 그대로 세러피(치료, 요법)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 혹은 정신적 심리치료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경리 7년'의 주인공 정희는 숫자(화폐 또는 회계)로 획일화된 산업자본주의시대의 정신 병리를 앓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고 '한 때 우리는 신촌에서 만났지'의 옛 연인은 젊은 나이에 돌연사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에덴의 건너편'에서 뇌종양을 앓는 정연의 딸을 위해 기도해주고 상담을 해주던 심리 상담가(원우 엄마)는 정작 자기 남편의 죽음은 이겨내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지난여름의 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상의 탈출을 꿈꾸지만 통화권 이탈로 전화가 불통되자 불안에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현대인들이며 '백일몽'의 애영은 자궁검사를 낙태수술로 상상하는 노처녀로 등장합니다. '향수'의 등반가는 이혼이 현실이 되어서야 그동안 무심했던 가족 혹은 부부의 사랑을 깨닫는 도피증 환자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