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낡은 추억이여, 이젠 안녕!

[범람하는 지역 축제, 어떻게 다가갈까? (중)] - 축제를 향유하는 방식

등록 2006.04.06 11:29수정 2006.04.06 11:29
0
원고료로 응원
꽃처럼 만개하는 지역축제의 범람 속에서도 정작 축제의 ‘빈곤’과 ‘소외’를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분명 이들은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지역 축제가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있는 현실에 꽤 비판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호소와 주장을 귀담아 듣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평소 축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를 향유하는 태도와 연관한다.


축제를 향유하는 일상문화의 부재

일반 회사원 ㄱ씨는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었다지만, 아직도 일상은 고달프며 주말엔 그냥 자고만 싶다. 요즘 부쩍 늘어난 흥청망청한 축제가 별로 탐탁치도 않다. 가끔 가족들의 성화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나서긴 하지만, 축제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나마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한다고 좋아하니 조금 위안은 된다.

아마도 ㄱ씨는 축제를 향유하는 대다수 우리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평균치에 가까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에게 예술 공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교적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마저도 먹고 살 만한 배부른 이들에게나 가당한 일이다. 그는 솔직히 다수가 모여 있는 광장에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축제에 몰입하여 즐길 엄두도 없고, 방법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난처함은 우리 사회가 여태껏 축제나 놀이에 대한 편견 속에서 살아왔고, 교육 받아왔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생존과 경제 재건을 위해 살아오신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논다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게으른 이들의 표상이었다. 전통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가 아니면 ‘흥청망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더라도 은밀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져야 했던 것이다.

a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축제장의 첫 느낌은 낯설기만 하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축제장의 첫 느낌은 낯설기만 하다. ⓒ 권오성

축제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


자칭 축제 마니아 ㄴ씨는 축제가 일상을 전복하는 ‘판타지’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유수한 축제가 발산하는 풍경들은 우리의 축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화적 경지에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춰지는 브라질 리오(카니발), 스페인 산 페르민(투우축제), 영국 에딘버러(예술공연축제) 등의 축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축제들은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축제의 전형이다.

축제에 대한 보다 진일보한 생각으로 주관이 뚜렷한 ㄴ씨의 주장 속에는, 한 마디로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축제란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서양의 축제에 대한 상당한 환상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자신이 예로 든 세계의 ‘환상적인 축제’가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유명한 세계의 축제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어떤 노력으로 그러한 축제를 만들어냈는지, 또한 대중 매체들이 그럴 듯하게 포장한 유명 축제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과대평가는 없는 것인지 따져볼 안목도 부족하다. 그리고 너무도 막연하게 이상적인 축제를 머리와 입으로만 끊임없이 갈구하며 서서히 축제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제는 오히려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무수한 우리의 지역 축제를 서슴없이 비난하고 무시한다.

a 축제를 즐기는 데 남녀노소는 없다.

축제를 즐기는 데 남녀노소는 없다. ⓒ 권오성

축제, 즐기는 방법도 고민해야 할 때

이렇듯 축제의 낡고 오래된 ‘추억’에서 깨어나지 못하거나, 영상 매체를 통한 화려한 볼거리만을 선호하는 자세는 주위의 지역 축제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결국 지역 축제가 갖는 문화사회적 가치를 포기하거나 방치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소 정형화되긴 했지만 위의 두 사례는, 이른바 ‘축제의 빈곤과 소외’가 단지 주최하는 기획자들의 탓만이 아님을 반증한다. 잘 알다시피 축제의 과정은 주어지는 게 아니고 참여하는 것이다. 왜 이 축제는 그 모양일까, 하고 나무라기에 앞서 즐겁게 자신을 ‘내던지는’ 참여가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물론 체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축제 현장에서 팔짱을 끼고 모로 볼 것이 아니라, 다소 어색하더라도 같이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음침한 밀실에서나 허용하던 광란의 몸짓도 백주의 광장에서 허용할 수 있는 따뜻한 시선도 가져야 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자, 그럼, 이 봄에 당신은 어떤 축제에서 그러실 건가?

덧붙이는 글 | '범람하는 지역 축제, 어떻게 다가갈까?'라는 주제 아래, 세 번에 걸쳐 연재하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범람하는 지역 축제, 어떻게 다가갈까?'라는 주제 아래, 세 번에 걸쳐 연재하는 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