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여기도 들러볼만한 곳입니다

운문사에서 소싸움축제장까지의 여행

등록 2006.04.07 11:33수정 2006.04.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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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에서 청도 소싸움축제가 열리는 서원천변까지는 약 40km정도…. 멀리 운문산과 가지산을 나란히 하며, 운문댐을 내려와 흐르는 물은 청도를 거쳐 밀양땅으로 흐릅니다. 소싸움축제를 보기위해 운문사에서 청도읍까지 성급하게 몰아간다면 청도의 진면목을 볼 수 없습니다.

청도읍까지 가는 길에는 운문사와 함께 오갑사에 속했던 대비사와 청도 양반들의 집결지라 할 수 있는 운강고택과 여러 고택들, 사세가 컸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장연사터, 그리고, 그 옛날 청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읍성의 여러 유적들이 가는 길에 즐비합니다. 깨끗함이 절로 느껴지는 청도의 맑고 깨끗한 모습 속에 감춰진 보물과도 같은 곳을 누벼봤습니다.

운문사를 나와 달리다보면 운문댐 근처에 이르러 물길이 넓어집니다. 넓어진 물길이 도로와 갈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문득 한 공원이 나타납니다. 잠시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근래에 보기 드문 공원이었습니다.


특이한 공원...새마을 운동공원의 전경
특이한 공원...새마을 운동공원의 전경문일식
1970년대초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이곳 청도에 기념비적인 공원이 조성된 것은 새마을 운동 당시 마을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업전개로 가히 모범이 될만한 마을이었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직접 내려와 순시를 했다고 합니다. 비석에 박힌 사진 속에는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순시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도로변에 일렬로 나부끼는 새마을 깃발이 어색하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운문댐의 전경...
운문댐의 전경...문일식
머지않아 운문댐에 도착했습니다. 댐이 건설된 곳이면 어디든지 고향을 잃은 슬픔이 애달프게 남겨져 있습니다. 운문댐 상류에 갇힌 잔잔한 수면위로 여기저기서 날아든 새들만이 적막함을 일깨우고, 이는 바람 속에 수면의 흔들림이 전부였습니다. 댐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 또한 엄청난 것이지만, 졸지에 정들었던 마을을 등져야하고, 실향민 처지가 되어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원주민들의 아픔과 고통 또한 저 수면아래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의 애틋한 향수와 풋풋한 인정들,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였고, 배움과 생활의 공간이었던 곳이었을텐데….

너무나 조용한 운문을 거쳐 987지방도를 갈아타고 동창천을 건너면 청도 양반들의 터전이었던 신지리에 이릅니다. 이곳은 중요민속자료 106호로 지정된 운강고택 외에 오래된 고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입니다. 밀양 박씨의 세거지였던 이곳은 조선 선조때 박숙이란 분이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가집이었던 것이 대대로 이어지면서 기와집으로 중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창천 암벽위에 자리잡은 만화정...
동창천 암벽위에 자리잡은 만화정...문일식
동창천의 암벽 위에는 운강 박시묵 선생이 19세기 초에 지은 운강고택의 별서 만화정이 이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개 고택과 별서는 대대로 살고 있거나 문을 잠궈둔 채 관리만 해오는 터라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담장 바깥에서 뜀박질로 잠시 눈요기를 하거나 문틈으로 들여다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운강고택의 경우에는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고, 만화정은 관리하시는 분이 몇 주에 한 번씩 오신다고 하니 속절없이 담장너머로 빼꼼이 보이는 지붕만 쳐다봐야 했습니다.

대비사 가는 길에 펼쳐지는 대비지... 물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대비사가 있습니다.
대비사 가는 길에 펼쳐지는 대비지... 물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대비사가 있습니다.문일식
운강고택의 사잇길로 들어서면 박곡리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오갑사 중의 하나인 대비사를 만날 수 있고,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비사를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농촌 풍경이 그대로 엿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생각지 못한 큰 저수지가 앞에 나타납니다. 대비지라 불리는 저수지를 따라 난 길은 산속으로 인도하고, 곧 대비사 앞에 이르게 됩니다.

대비사는 오갑사, 즉 대작갑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대비갑사 등 '갑'자가 들어가는 5개의 사찰을 말하는데 대작갑사는 현재 운문사로 남아있고, 대비갑사는 지금 이곳의 대비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되어 없어졌다고 합니다. 대비사는 일주문이나 천왕문 등 사찰 경내로 진입을 위한 전각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보물 834호로 지정된 대비사 대웅전...
보물 834호로 지정된 대비사 대웅전...문일식
보물 834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몇 개의 전각만이 옛 대비갑사의 흔적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골을 따라 깊게 들어온 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조금 갑갑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2단의 기단위에 맞배지붕을 이고 있는 대웅전은 단청이 모두 벗겨져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반면, 측면의 풍판은 너무나 가깝게 닿아 있어 단아한 맛이 적고, 비좁아 보이기도 합니다.

대비사에서 나와 다시 운강고택을 바라고 내려오다보면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깨진 석탑 한기가 왼쪽에 살짝 비켜 서 있고, 석가여래좌상은 또다시 전각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석가여래좌상은 보물 20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928년 화재로 손상되어 얼굴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지만, 법의를 표현한 것이나 신체의 표현은 무척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장연사터 쌍삼층석탑...보물 67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장연사터 쌍삼층석탑...보물 67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문일식
다시 운강고택까지 나와서는 987번 지방도를 계속 타고 장연사터를 찾았습니다. 장연사터가 있는 장연리 장수골을 가기위해 또다시 동창천을 건너야했는데, 도로공사중이어서 동창천을 따라 저 아래편의 잠수교를 건너야 했습니다. 덕분에 방향감각을 잃어 한참을 헤매게 되는데 다행히 자료집에서 보았던 배례석을 발견하고서야 제대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워진 배례석이라…. 이 배례석은 마치 마을 입구의 표지석이 된 듯합니다. 동창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장연사 3층석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운문사에 있는 쌍 삼층석탑과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는 것은 기단부에 팔부중신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석탑은 과수원에 둘러싸여 있는데, 봄이 오고 나무에 새생명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가히 장관을 이룰 듯합니다. 장연사터 3층석탑 건너편 과수원에는 잘려서 윗부분이 없는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고, 근처의 사원재에는 장연사터의 석물로 알려진 석물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또한 장연사터 입구근처의 매전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장연사터의 석물로 알려진 석불과 몇몇 석물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전리 처진소나무의 축 처진 모습...
매전리 처진소나무의 축 처진 모습...문일식
장연사터를 둘러보고 나서는 다시 20번 국도에 올랐습니다. 조금 가다보면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와 형태가 전혀 다른 매전리 처진 소나무가 어깨처진 사람마냥 서 있었습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넓게 퍼진 형태로 웅장한 맛이 나는데 매전리 처진 소나무는 높이가 13m가 넘는데다가 너무 처져 있어서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옛날 한 정승이 이 나무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절을 하듯 가지가 처지더니 그 후로는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제 청도읍을 지나 화양읍에 들어섰습니다. 이서천변의 소싸움축제를 찾아가는 차량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싸움축제장을 가기 전에 화양읍에 들러 옛 청도읍성터를 둘러보았습니다.

청도읍성의 옛 흔적들...
청도읍성의 옛 흔적들...문일식
청도읍성터 주변에는 청도향교와 청도 석빙고가 있고, 읍성의 흔적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습니다. 청도읍성은 정방형형태로 남쪽으로는 남산과 오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으로는 낮은 평지여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일제시대때 읍성철거정책으로 대부분 헐리고 성을 이루었던 낮은 돌담만이 남아 있습니다.

청도향교의 '즐거움을 생각하는 곳' 사락루
청도향교의 '즐거움을 생각하는 곳' 사락루문일식
읍성터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청도향교가 나타납니다. 청도향교는 1568년 선조 때 창건되었는데, 영조 때 들어서 현 위치로 옮겨진 향교입니다. 향교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락루를 통해야 합니다. '즐거움을 생각하는 곳'이란 즐거운 이름을 가진 2층 누각입니다. 이 향교의 재밌는 것은 대체로 향교나 서원이 전학후묘, 즉 앞쪽에는 가르침의 공간인 명륜당이, 뒤쪽으로는 제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기 마련인데, 청도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청도 석빙고는 표지판을 찾지 못해 한참을 찾았는데, 청도향교를 오르는 중간에 있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로 겨울에 강에서 채취한 깨끗한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창고입니다. 대체적으로 땅을 파고, 물이 잘 빠지도록 경사지게 만든 뒤 벽은 석재로 쌓고, 홍예처럼 덮개를 만듭니다.

보물 323호로 지정된 청도 석빙고
보물 323호로 지정된 청도 석빙고문일식
청도 석빙고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석빙고들은 모두 조선시대때 만들어진 것인데, 청도 석빙고는 옆에 세워진 석비에 의하면 조선 숙종때인 1713년에 지어졌습니다. 경주나 창녕의 석빙고를 보더라도 외관상의 모습은 마치 봉분과 같은데, 청도석빙고는 덮개부분이 홍예만 남아 있어 다른 곳의 석빙고와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땅을 파고, 돌을 쌓아 냉장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창고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안 지혜가 참으로 대단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당시에 혹시라도 팥빙수가 있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양읍까지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정오의 시간이 다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운문사에서 맞은 아침을 시작으로 바삐 움직여 여러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청도라고 하면 그저 소싸움축제와 운문사만 떠올리고 대부분 여행은 그렇게 움직이게 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찾아다니면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청도여행에서 얻었습니다. 운문사 새벽예불의 경건함과 소싸움의 흥겨움과 함께 깨끗한 자연과 역사 속으로 시간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청도가 아닌가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운문사에서 소싸움축제 가기전 여행일정
운문사▶만화정 및 운강고택→대비사→박곡리 석조여래좌상→장연사터→매전리 처진소나무→청도읍성→청도향교→청도 석빙고▶소싸움축제장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 운문사에서 소싸움축제 가기전 여행일정
운문사▶만화정 및 운강고택→대비사→박곡리 석조여래좌상→장연사터→매전리 처진소나무→청도읍성→청도향교→청도 석빙고▶소싸움축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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