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야학은 살아있습니다

그들만의 경쟁...검정고시 현장스케치

등록 2006.04.09 17:11수정 2006.04.0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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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하면 1970~1980년대의 아련한 청년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옛날 야학은 가난 때문에, 또는 손위·아래 형제자매를 위한 희생으로 학교에 다닐 시기를 놓치고 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 뒤늦게 찾아오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야학교사는 풋내기 대학생인데 비하여 공부할 학생들은 같은 또래이거나, 또는 형 누나이거나, 아니면 나이 많은 어른이 대다수였습니다.

따라서 야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학교 역할에 머무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옛날 야학은 검정고시 준비뿐만 아니라 노동과 일상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지식과 상식들을 배우고 나누는 생활교육마당이었습니다. 풋내기 대학생 선생님들에게는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곳이었고 나이든 학생들에게는 현실의 절망을 딛고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야학은 그렇게 서로의 것을 주고받는 삶의 공동체였습니다.

이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우리사회의 관심은 여러 가지 이유로 탈학교화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지역 아동센터 또는 방과 후 학습지도센터에 쏠려있습니다. 따라서 야학은 있는 듯 없는 듯 그 옛날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BBS 대전야학 수업 모습
BBS 대전야학 수업 모습김철호
그러나 우리 사회에 여전히 야학은 살아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풋내기 대학생 선생님의 지도아래 형, 누나, 나이 어린 동생, 또는 부모님연배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비록 번듯한 졸업장은 없을지라도 제도권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교육과 서로 함께 나누는 사회활동이 이루어지는 멋있는 학교입니다.

대전지역 검정고시장 삼천중학교 모습
대전지역 검정고시장 삼천중학교 모습김철호
매년 정규학교 학생들이 치르는 수능고사가 다가오면 온 나라가 시끄러워집니다. 하지만 오늘, 야학생들에게 정규학교학생들의 수능고사 못지않게 중요한 검정고시가 전국에서 조용하게 치러졌습니다. BBS대전야학(교감 홍윤기 충남대학 사학과 2년)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치르고 있는 대전 삼천중학교를 찾아 갔습니다.

후배들의 성취를 기원하는 선배들의 격려 깃발, 여러 검정고시 학원들의 선전 부스들이 어지러이 운동장을 메우고 있습니다. 그 사이로 초라하지만 당당한 야학들의 천막이 보였습니다.

요즈음 야학들도 옛날처럼 풋내기 대학생 선생님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야학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사이의 만남과 소통의 마당입니다. 그렇다 해도 요즈음 야학의 가장 큰 목표는 검정고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정고시는 야학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학력을 평가받고 더 높은 학문의 길로 나가는 징검다리입니다. 물론 검정고시는 야학생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풋내기 선생님들에게도 학생들의 성취를 통하여 자신들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를 보람으로 수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시험이 끝날 때 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가채점을 하는 수험생모습
시험이 끝날 때 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가채점을 하는 수험생모습김철호
아무리 그들만의 경쟁일지라도 야학생들에게 검정고시는 떨리고 두려운 일입니다. 막 1교시 시험을 본 학생들이 삼삼오오 선생님께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의 정답풀이를 들은 학생들의 탄식과 선생님들의 격려가 오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김철호
마침내 검정고시가 모두 끝났습니다. 젊은 야학생에게는 게을렀던 자신이 부끄럽고 아쉬운 하루였습니다. 나이든 야학생에게는 조금은 절망스럽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희망의 끈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직, 풋내기 선생님들의 섬김과 나눔의 열정이 식지 않은 이상 아직, 나이든 학생들의 용기와 끈기 남아있는 이상 그들에게 미래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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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와 불평등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다. 필자는 희년빚탕감 상담활동가로서 '생명,공동체,섬김,나눔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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