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세탁소에서는 연극을 본다고?

[시어터멘터리③]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등록 2006.04.11 09:18수정 2006.04.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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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곳이 세탁소일까, 소극장일까? 세탁소 모양을 한 매표소가 있는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이곳이 세탁소일까, 소극장일까? 세탁소 모양을 한 매표소가 있는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 이민정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서 명륜동 쪽으로 걷다 보면 재미있는 극장과 맞닥뜨리게 된다. '세탁 오아시스'라는 초록색 간판에 세탁기 모양을 한 매표소가 버티고 있는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이곳이 소극장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를 정도로 감쪽같다. 극장이 아니라 신장개업을 한 세탁소의 색다른 홍보 전략으로 보이기도 한다. 간혹 이곳을 진짜 세탁소로 착각하고 세탁물을 맡기러 온 주민들이 웃으며 되돌아가는 일도 간혹 있다고.


여기가 세탁소일까, 소극장일까?

보통 동네 세탁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곳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이라는 연극을 위해 꾸며졌다. 2003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예술의 전당 등 큰 무대에 올려졌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은 작년 9월 소극장용으로 개편되어 지금까지 이곳에서 공연 중이다. 3월 누적 관객이 벌써 2만을 넘어섰고 관객평도 좋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탄탄한 희곡과 실력 있는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은 극장 대관, 제작비 등 재정 문제로 장기 공연을 이어갈 수 없었다. 또 흥행에 비해 초대권 비율이 높은 것도 고질적인 딜레마였다. 때문에 재정 압박에서 벗어나고 공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원래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은 당구장이었다. 칙칙하고 어두운 당구장을 세탁소(?)로 탈바꿈하는 데는 지금 극장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배우 조준형씨의 공이 컸다. 그리고 거기에 '솜털처럼 따뜻한' 연극을 하는 '극단 모시는 사람'의 노력 봉사가 곁들여졌다.

객석에는 백열등 세 개... 소박함이 더욱 빛난다


a 백열등 세 개가 밝히고 있는 관객석. 무대 조명은 백열등에 은박지를 싸서 처리했다.

백열등 세 개가 밝히고 있는 관객석. 무대 조명은 백열등에 은박지를 싸서 처리했다. ⓒ 이민정

극장 개관을 앞두고 배우들은 발 벗고 나서 페인트칠을 하는 등 극장 단장에 앞장섰다. 극장 전용 공간이 아니어서 천정이 매우 낮았고 조명 설치에도 어려움이 따랐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무대 조명은 백열등에 은박지를 감싸 조절했고 관객석에는 백열등 세 개 만을 설치했다. 객석 배치에 높낮이를 주기 위해 멀쩡한 의자 다리를 잘라 내기도 하는 등 악전고투 끝에 모두 100석의 객석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해서 당구장은 세탁소 꼴을 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전용관'으로 재탄생했다.

원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은 예술의 전당에 올려졌던 스케일이 있는 연극이었다. 하지만 10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에 올리면서 소극장에 맞게 재구성해야 했다. 기획팀장 이춘완씨는 공간이 협소해 아직도 풀지 않은 짐이 많지만 그런 조촐한 살림살이가 사실적인 공간 묘사에는 오히려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좁은 공간에 빼꼭하게 채워진 무대에서는 오래된 영화에서나 봄직한 푸근한 느낌의 세탁소가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은 30년 동안 세탁 일을 해온 강태국이 세탁소에 걸려 있는 옷과 그 주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40년 전 어머니가 맡긴 세탁물을 찾아가며 삶의 희망을 갖게 되는 불효자, 명품 마니아인 '나가요' 아가씨, 괜찮은 무대 의상을 빌리고 싶은 가난한 연극배우, 멀쩡한 옷을 찢어 버리는 신세대 여학생 등이 등장한다. "때 묻은 세상 한구석에 때 빼고 배꼽 빼는 세탁소가 개업했다"는 카피처럼 시원한 웃음과 날카로운 풍자가 적절히 조화된 작품이다.

출연료 낮추고 관람료 내리니 유료 관객 느네

a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의 한 장면.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의 한 장면. ⓒ 극단 모시는 사람

개관 7개월에 접어드는 이 극장의 성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극장장 조준형씨는 "이곳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극장 문턱을 최대한 낮추었다"고 밝혔다. 그 첫 번째로 배우들이 출연료를 낮췄고 관람료도 내렸으며 고질적인 딜레마였던 초대권 비율도 줄였다. 그랬더니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유료 관객이 늘어났다.

이 모든 게 배우와 스태프 모두 극장 운영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앞으로 있을 전국 순회 공연과 해외 공연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은 소극장의 새로운 대안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이 위치한 곳은 전형적인 주택가로 근처에서 소극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소극장들은 지하철 혜화역 출구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으며 성균관대가 있는 명륜동 쪽으로는 '동숭무대'와 예술극장 '나무와 물' 정도가 있다. 그러나 이제 곧 연출가 이윤택의 게릴라극장이 이곳 명륜동 쪽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앞으로 이 일대가 대학로의 새로운 대안 공간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비누방울 같이 즐거운 연극, 배꼽 빼고 때도 빼는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극단 모시는 사람들
2003년 서울연극제 공식 초청작/제40회 동아 연극상 희곡상
2003년 연극협회 올해의 우수연극 선정/ 제22회 희곡작가협회 희곡문학 본상 수상
2006년 전국문예회관 지원공연 선정

기획제작 극단 모시는 사람들
협찬 (주)애경 퍼펙트, 박윤정 의상
작 김정숙
연출 권호성
무대감독 김호준
무대제작 토멘터
조명 구윤영
진행 최영심
출연 조준형, 선욱현, 윤상호, 오현석, 김현옥, 차명욱, 박지아, 채연정,추연주 (아역)최지원, 이경진, 오로라

공연장소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대학로)
공연일시 화-목 8시/ 금 3시, 8시/ 토, 일, 공휴일 3시, 6시
관람료 일반,대학생 1만원/초,중,고생 8천원/사랑티켓 참가작
교육문화상품권, 도서상품권, 에이스문화상품권 사용가능

예매처 티켓링크 www.ticketlink.co.kr/티켓파크www.ticketpark.com/사랑티켓 www.sati.or.kr/오티알 www.otr.co.kr/맥스무비 www.maxmovie.com
공연문의 오아시스세탁소 극장 02-3672-0888(http://oasis-setakso.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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