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우리 아이, 함께 고쳐요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등록 2006.04.11 12:20수정 2006.04.1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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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실내화 빨아 왔는데 별 다섯 개 언제 주세요?"
"알림장 사인해 왔는데 동그라미 언제 주세요?"
"점심밥 다 먹었는데 별 다섯 개 주실 거죠?"
"색칠하기 싫은데 열심히 하면 별 다섯 개 주신댔죠?"
"받아쓰기 글씨 예쁘게 쓰면 200점 주신다고 하셨지요?"

"우와, 오늘은 고은이가 그림도 잘 그리고 엉덩이를 붙이고 색칠도 참 잘 네. 별 다섯 개 후보구나."
"아니, 우리 영민이가 오늘은 소리도 안 지르고 작은 목소리로 말도 곱게 해서 참 예쁘네."
"우리, 원빈이가 주먹질을 아주 잘 참아서 행복해."

우리 교실 아침 풍경, 공부 시간 모습, 점심시간의 단면이랍니다.

아침 8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들이 인사를 하고 책가방을 건 다음 말없이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모습들이 여간 대견하답니다. 서로 얘기하고 싶어서 내 눈치를 보는 편이지만 아침 독서 시간의 약속을 하나씩 지켜가는 모습이 참 예쁩니다.

포인트를 받으려고 책보다 먼저 가져와서 내 앞에 내놓고 자랑부터 하는 아이도 40분간 책을 읽는 게 먼저라는 걸 알고는 자리에 들어가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글자는 잘 몰라도 그림이라도 보면서 책의 내용을 어림짐작하면서, 아침 독서는 꼭 해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작은 몸부림이 안쓰럽지만 '산만한 아이'들에게 집중력과 인내심을 길러주려는 목적까지 챙기는 아침 시간입니다.

이제는 아침 40분 동안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 많아져서 참 다행이지요. 문제는 나에게 있습니다. 수업 준비나 공문 결재, 학교 일로 1분만 교실을 비워도 흐트러지는 교실 분위기이니 나도 아이들 곁에서 열 일을 뒤로 하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 곁에서 책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창 너머로 마량 앞바다가 보이는 2층 교실에서 새 소리, 음악 소리를 들으며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는 풍경은 그림 같지요.

나 자신부터 달라지자고 다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산만함을 고쳐주기 위해서는 어른인 나부터 본보기가 되어야 하니까요. 6학급이니 맡은 업무나 역할 분담으로 아침 시간을 이용하면 일처리가 훨씬 쉽겠지만 모든 일은 아이들이 하교한 후로 미루다 보니 진척이 잘 안 되어 학교에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주의력 결핍 아동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음식치료가 효과가 높다고 하니 학교급식 시간에 좀더 철저히 지도하기 위해 밥을 다 먹은 어린이에게는 평소보다 5배나 높은 포인트를 주기 시작했더니 더 잘 먹는답니다. 더불어서 밥 먹을 때 예의 바르게 먹는 사람, 흘리지 않고 먹는 사람, 너무 오래 먹으며 기다리게 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좋은 점수를 준다고 했더니 한결 좋아지고 있답니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토큰 강화의 방법으로 점수화하여 지도하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은 아니지만 저학년일수록 더 효과적이라는 교육심리학이나 상담치료 기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말보다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더 중시하는 어린 아이들이니 세심한 주의와 모범만이 전부랍니다. 바빠서 자기 포인트를 올려주지 않으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선생님, 나 영민이 밥 다 먹었는데 별 다섯 개 언제 올려줘요?"
"응, 다른 친구들 거랑 한꺼번에 올릴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응?"
"에이, 영민이 별 빨리 올려주세요."

오늘 하교 시간에는 그 영민이와 계단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오르내리기를 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나올 동안뿐이었지만 다른 날보다 별점을 덜 깎인 영민이를 칭찬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영민아, 오늘은 영민이가 진짜로 예뻤단다. 그림 그리기도 잘 하고 밥도 잘 먹고 공부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아서 정말 좋았어. 선생님이랑 시합할까?"

까만 눈 반짝이며 올려다보는 꼬마 친구랑 가위 바위 보를 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던 짧은 순간의 행복이 아직도 나를 미소짓게 합니다. 그 해맑은 표정이 늘 행복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고 돌아서니 늦게 나온 승현이가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눈치를 보니 또 고학년 형들을 건드리고 욕을 하다 혼이 난 모양입니다. 일부러 모른 체하고 다른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났더니 어느새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형들이 때렸다며 자기 잘못은 쏙 빼놓습니다. 할머니나 나에게도 거침없이 반말을 하는 아이이니 고학년 형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안 봐도 압니다. 승현이게 당한(?) 형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교문 앞까지 뒤쫓아와서 내게 일러댑니다.

승현이가 건드리더라도 절대로 손대지 말고 나에게 먼저 말하라고 약속을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학교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고집 부리는 승현이의 사과를 받아낸 고학년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승현이에게 충고하여 집으로 보내고 들어와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도서실의 책들을 정리하고 대청소를 하니 1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리고는 교실을 청소하니 다시 30분이 지나 몸에서는 땀조차 났습니다.

산만한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서는 방이나 교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가고 난 자리는 날마다 자잘한 쓰레기로 책상 밑이 어수선합니다. 크레파스로 뭉개진 교실 바닥을 닦고 청소기로 흡입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나면 잡무처리 시간조차 부족하지요. 그리고는 다시 특기적성지도 시간을 기다리는 문예반 아이들과 한 시간 공부 자료를 챙겼습니다.

산만한 아이들이 많아진 것은 부모들이 바쁜 것이 큰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바빠서 제대로 음식도 챙겨주지 못하니 인스턴트에 길들어져서 식습관이 행동까지 좌우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바쁘니 어질러진 물건을 챙기거나 아이들이 원하는 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하니 제 마음대로 생활하도록 버릇 들여진 탓은 아닐까요? 혼자 두는 시간이 많으니 같이 있는 동안에도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꾸중하고 가르칠 것마저도 뒤로 미루고 포기한 탓은 아닐까요?

좋은 책 대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게임에 빠진 아이들과 차분하게 대화를 하거나 놀아주지 못하는 바쁜 부모님 틈에서 아이들은 외로움 속에서 인간관계를 제대로 익히는 연습을 못한 채 사랑을 갈구하는 방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며 우울증까지 겪는다고 합니다. 치료하지 못하고 사춘기가 되거나 성년이 되면 욱하는 성질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니 부모와 선생님, 아이가 모두 함께 마음을 다해 고쳐주어야겠습니다.

아픔을 이겨낸 진주조개처럼, 매서운 한파를 이겨낸 매화의 향기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신과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인생의 언덕을 지혜롭게 넘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꽃들의 아우성으로 귀가 아픈 계절이지만 내게는 아이들의 아픈 모습이 나를 더 잡아끕니다.

'산만한 우리 아이 어떻게 가르칠까?'
'산만한 우리 아이 어떻게 가르칠까?'샘터
'사람꽃'만큼 아름다운 꽃이 어디 있으며 어린 아이보다 선한 모습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선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이 멍들고 지쳐서 힘들어하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부터 해방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라고 한 M.프루스트의 말처럼 아름다운 4월의 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보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가진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만든 한 권의 책이 나를 기쁘게 합니다.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주는 것은 바로 좋은 책의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움을 받고 있는, 주의력결핍 장애 아동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

덧붙이는 글 <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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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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