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단을 통해 돌아본 우리문화의 근대사

정읍천 벚꽃축제 속 태백 서커스단

등록 2006.04.12 12:28수정 2006.04.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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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단을 통해 돌아본 우리의 근대사

지난 4월 1일 전북 정읍의 정읍천, 천변로 5km 지역 일원에 풍물시장이 들어섰다.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장 한 편엔 올해도 어김없이 서커스단이 자리 잡았다.

정읍천의 우회도로와 천변은 매년 4월초가 되면 좌, 우 5km 지역에 심어진 40년생 벚나무 1240여 그루가 순백의 벚꽃을 피워내며, 그 꽃들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a 태백 서커스단 등잔 발로 들기

태백 서커스단 등잔 발로 들기


a 손과 발 입으로 등잔들기

손과 발 입으로 등잔들기

예전에 태백 서커스단 천막 앞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침팬지와 말, 사자, 호랑이 등 일상에서 보기 드문 동문들이 있어, 최근처럼 확성기를 이용한 선전을 하지 않아도 구경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동물 대신 마이크를 들고 선전하는 초라해진 서커스단 홍보에 상춘객들의 표정도 시큰둥해진지 오래다.

서커스단 전성기 1960년대, 가족까지 합치면 250여명 이르러

지난 4월 7일, 최근 들어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서커스단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공연중인 태백 서커스단을 기자가 찾았다.

공연 첫 무대인 마술 쇼를 마치고 내려온 홍승호(63) 단장은 "보셔서 아시겠지만 요즈음 서커스단에서 예전 같은 향수와 활력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착잡한 첫마디를 던졌다.


a 탁자타기

탁자타기


a 탁자 여덟 개 타기

탁자 여덟 개 타기

홍 단장에 따르면 태백 서커스단 단원들은 단장을 비롯해 22명이며, 그중 한국 단원들은 8명이 전부다.

홍 단장이 회상하는 서커스단의 최전성기는 1960년대, 그 당시엔 단원들만 해도 150-180명에 이르렀으며 일꾼과 뒷바라지에 매달린 가족들까지 합하면 250여명에 육박하는 기업 수준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서커스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많았는데, 서커스 기술이 일찍부터 그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 일인 다역의 곡예사들이 많았다.

1980년대 곡예사들 건설현장으로 이동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서커스단의 세가 급격히 줄기 시작하면서 1990년을 기점으로 10여 년 동안 소득 없는 긴 유랑생활이 이어졌다. 이후 서커스단을 벗어나 자구책을 찾아가려는 단원들이 늘면서 서커스단은 곡예사들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a 머리로 사발받기

머리로 사발받기


a 머리로 사발 다섯 개 받기

머리로 사발 다섯 개 받기

1980년대 초 국내 건설 회사들이 곡예사들을 스카우트해 높은 건물 위를 줄 하나에 의지해 종횡무진 오가게 했던 시절, 다수의 곡예사들은 열악한 서커스단을 박차고 나가 대우가 좋았던 건설현장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겼다.

더불어 태백과 동춘 서커스단에 몸담고 있던 곡예사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입장은 비슷하지만 동춘 서커스단이 그래도 태백보다는 조금 나았다.

국내 서커스단의 모태 동춘 서커스단

여기서 국내 서커스단을 잠깐 정리하자면, 국내 서커스단은 동춘 서커스단과 태백 서커스단으로 나뉘며 태백 서커스단의 모태는 동춘 서커스단이다. 서커스단이 가장 흥했던 1960년대 동춘 서커스단이 전국순회 공연을 위해 별도의 서커스단 운영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서커스단을 2개로 나누어 관리했는데, 그 때 만들어진 신생 서커스단이 태백이다.

a 상포 돌리기

상포 돌리기


a 입으로 물고 상포 돌리기

입으로 물고 상포 돌리기

동춘 서커스단은 1925년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곡예사 박동춘씨가 일본 서커스단에서 빠져나와 국내 출신 곡예사 25명을 규합한 뒤, 자신의 이름자를 따 창단한 데서 기인한다.

현재 동춘 서커스단의 박세환 단장과 태백의 홍승호 단장은 한때 동춘 서커스단에서 호흡을 맞추던 곡예사 출신이다.

서커스단의 호응과 인지도가 하향곡선을 그리던 1990년대 초반, 태백과 동춘 2개 서커스단을 동시에 이끌던 동춘의 3대 박동수 단장이 작고했다. 이후 운영난에 허덕이던 동춘 서커스단 관리자들은 또 다른 관리 서커스단인 태백 서커스단을 해체하고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동춘 서커스단마저 극심한 경영난에 휩싸였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동춘 서커스단의 창단멤버 곡예사들이 뭉쳐 그나마 한국 곡예사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다.

이 무렵 한동안 서커스단을 떠나 방황하던 홍승호 단장이 과거 태백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단원들을 규합해 다시 태백 서커스단을 창단했다. 그렇게 홍 단장이 태백 서커스단을 이끌어 온 기간이 벌써 올해로 10년째다. 그러나 창단 10주년을 맞았지만 서커스단의 어려움은 1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홍 단장.

정부 무관심이 한국 서커스 몰락 가져와

국내에서 서커스단이 흥하던 시절엔 기술 이전이 내부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서커스단 곡예사들이 외부 기업에 흡수되고(건설 현장 등) 가족들마저 서커스단을 떠나고, 기술이전을 받을 2세들이 사라지면서 국내 서커스단의 기술력은 그 대가 끊어진다.

a 입으로만 몸을 지탱하고 상포 돌리기

입으로만 몸을 지탱하고 상포 돌리기

이에 반해 인근 중국을 비롯한 미국과 프랑스 등 외국 서커스단은 날로 성장하는 추세에 있다. 그런 배경에는 곡예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해당 국가들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홍 단장은 "외국의 경우 기존 곡예사들의 2세들과 일반 어린이들이 오디션을 통해 각각 나름의 훈련과정을 거쳐 일찍부터 곡예사로 성장하게 된다"며 "곡예사로 활동할 때나 곡예사를 은퇴한 뒤에도 국가가 연금을 지급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 외국 서커스단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계속 성장세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단장은 "이제 한국에 남은 곡예사들은 동춘과 태백을 합해 모두 10명 정도 남아 있지만 이들마저 나이가 들어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불과 몇 명뿐"이라고 전하며 "현재 부천문화예술센터에 서커스 전용극장을 지어지고 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향후 자구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효율성은 떨어지겠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방안을 생각 중에 있다"고 전하고 긴 한숨을 토했다. 이어 "지난 2004년부터 문화 소외지역의 서커스 공연을 위해 해당지역들의 장소 임대 비용지원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문화소외지역 문화활동들은 대부분 오페라, 연극, 무용 등 서커스보다 화려한 곳에 지원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a 태백 서커스단 홍승호 단장

태백 서커스단 홍승호 단장

그래도 "정부 지원을 받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하지 않나"라고 재차 질문하자, 홍 단장은 "서커스단이 정부지원을 받아서 공연을 계속 하면 상관없지만 자칫 무상 공연으로 비쳐졌을 경우, 다시 예전처럼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벌이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서커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

해방 전후 서민정서를 달래며, 전통문화의 인기를 대신했던 서커스단은 오늘날, 인터넷과 PC, 또 다른 볼거리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옳지 않다. 수많은 서양 예술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게다가 서커스는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며 많이 토속화된 상태다.

우리는 전통문화만이 우리 문화라는 결론을 성급히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들어왔던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온 문화라면 그 순기능을 살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서커스의 쇠락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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