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분교 '섬개구리'의 반란, 기억하십니까

[섬이야기34]신안군 안좌도

등록 2006.04.12 14:55수정 2006.04.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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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의 14개 읍면 중 체도의 면적으로만 본다면 안좌도를 덮을 섬은 없다. 이 섬은 191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창도의 '안'과 기좌도의 '좌'를 합하여 '안좌도'라 칭하였다. 목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섬은 신안의 다른 섬에 비해 편리한 뱃길을 갖추고 있고, 신안의 중앙에 위치해 다이아몬드제도(자은-암태-팔금-안좌-장산-신의-하의-도초-비금, 이들 섬을 연결하면 다이몬드의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의 섬들이 연결된다면 그 중심 역할을 할 것이다. 섬들의 연결만이 아니라 이미 목포와 연륙공사가 진행 중인 압해도와 암태도 사이의 연도공사의 타당성을 모색하고 있어 머지않아 자동차를 이용해 이들 섬들을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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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a 수화선생의 생가

수화선생의 생가 ⓒ 김준

안좌도의 중심은 16세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읍동마을이다. 이 마을은 특히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金煥基, 1913∼1974)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수화선생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후 1936년 귀국하여 몇 년 동안 고향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다 194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미술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수화선생이 새로운 창작활동을 기반으로 신사실파(新寫實派)를 형성한 것도 이 시기였다. 한국 추상화의 개척자로 꼽히는 수화선생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였다. 안좌도 읍동리에는 1910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한 북방식 'ㄱ'자형으로 만든 기와집인 생가(도지정 지방 기념물 제146호)가 잘 보전되어 있다.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논들도 대부분 묵혀있지만 구릉지의 밭들에는 어김없이 마늘이 심어져 있다. 안좌도의 주업은 미작 중심의 농업이지만 소득 면에서는 마늘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그리고 자라도를 중심으로 일부 어촌에서 김양식을 하고 있다. 특히 자라도의 김양식은 규모면에서 인근 섬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조류의 흐름이 좋고 파래가 섞인 무공해 김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육지 사람들은 색깔이 좋고 파래가 섞이지 않는 김을 선호하지만 자라도를 비롯해 신안군의 김은 약간의 파래가 섞여 있으며 이 김들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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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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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a 안좌면 한운리에서 본 사치도의 모습

안좌면 한운리에서 본 사치도의 모습 ⓒ 김준

사실 안좌면에서 체도인 안좌도보다 유명했던 섬은 부속도서인 사치도였다. 사치도에는 유일하게 모래밭이 있어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1970년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섬개구리'들의 반란의 꿈을 키웠던 곳도 이 작은 모래밭이었다. 한 부부교사에 의해 시작된 농구는 1970년대 초 전국소년체전에 전남대표로 뽑혀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기적을 낳았다. 당시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섬개구리'였다. 그 덕에 여러 학교에서는 농구부를 만들고 아이들이 농구를 하겠다고 나섰다 하니, 오늘날로 치면 그 명성이 야구선수 이승엽이나 축구선수 박지성을 능가했던 모양이다.

이 학교는 1952년 안좌초등학교 사치분교로 시작해 지난 2000년 최씨 형제 두 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당시 사치분교 아이들의 준우승 장면을 본 육영수 여사는 친히 격려해주고 TV, 농구공, 연필 노트 등을 선물로 전달했다고 전한다. 사치도 가는 길엔 제법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섬개구리들이 농구를 할 때만 해도 이곳은 모두 갯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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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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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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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사치도가 내려다보이는 서쪽 끝에는 방월리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초입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마을 앞 푸른 마늘밭 곳곳에 지석묘가 버티고 있고, 마을 바로 앞에 큰 우물이 버티고 있다. 돌담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이곳은 초가만 얻지 않았지 그대로 한 세대 전의 생활공간과 정취를 엿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에코빌리지'라고 해서 이러한 마을을 그대로 활용한다고 한다. 일상생활 그대로를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 '관광'이라는 것이다. 모든 섬을 관광지로 만들려고 온갖 그림을 그리고 건물을 짓는 우리의 '관광정책'이 꼭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연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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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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