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 이것이 라멘이다!

맛 작가의 잘 나가는 맛 집 이야기 (25)

등록 2006.04.13 10:04수정 2006.04.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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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확실히 중독성이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먹어줘야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라면은 인스턴트라면 이다.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은 맛이 있는데, 똑같은 라면을 내가 집에서 끓이면 맛이 없는 이유가, 화력의 차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여전히 나는 집에서건 밖에서건 일주일에 한 번은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라면은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봉지라면, 둘은 컵라면, 그리고 요즘에 나를 심오한 라면의 세계로 안내를 해주고 있는 일본 라면, 라멘이다.

라멘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과 부러운 점이 있다. 먼저 궁금한 점은 중국에서 라면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가 같았는데, 왜 우리는 인스턴트라면이 주류를 차지하고, 일본은 생라면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일까 하는 것이다.

부러운 것은 일본은 전국 각지에서 셀 수도 없는 라멘의 장인들이 자기만의 라멘을 만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라멘의 종류가 무수히 많다고 한다.

a <하카다 분코> 전경

<하카다 분코> 전경 ⓒ 김영주

내가 라멘을 만나게 된 것은 오래됐다면 오래됐지만 감동을 시킬 정도의 맛을 준 라멘은 많지 않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먹었는지 기억은 할 수 없지만 맨 처음 먹었던 라멘이 그랬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감동을 준 것으로 기억되는 라멘은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뒷골목에서 먹은 오로쫑 라멘이다.


그 후 대한민국 서울에서 일본 라멘을 판다는 몇 군데의 집에서 먹어보았으나 그 이상을 뛰어넘는 라멘을 만나지는 못 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 무렵인가, 서울에 이런 라멘을 파는 집이 있었구나 하는 감격하게 한, 다시 한번 라멘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는 집을 알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하카다 분코', 하카다 문고다.

이 가게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이랏샤이맛세!"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이외에도 가게 안의 소박한 풍경이 마치 일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은 준다.

메뉴는 간단했다. 라멘은 단 두 종류, 인라멘과 청라멘, 그리고 차슈덮밥 정도. 두 라멘이 어떻게 다른 거냐 물어보니 같은 라멘인데 인라멘은 좀 진한 국물이고 청라멘은 좀 덜 진하다고 했다. 필자는 주저 없이 진한 인라멘을 주문했고 후배는 청라멘을 먹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귀가 떨어지게 하는 우렁찬 일본어를 라이브로 듣게 된다. "2번 테이브루 인라멘 잇빠이, 센라멘 잇빠이~" 비슷한 소리였을 것이다.

a 느끼해도 맛있는 '인라멘'의 자태

느끼해도 맛있는 '인라멘'의 자태 ⓒ 김영주

잠시 후 나온 라멘은 나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렸다. 먼저 면발. 이게 무슨 라면의 면발인가, 소면 아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다음은 육수. 한 숟갈 마셔보니 느끼함도 이런 느끼함이 있을 수 없었다. 고명으로 올라있는 돼지고기(차슈)가 달랑 한 점이라는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후배 역시 나름대로 한 미각 한다는 친구였기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라멘을 먹기 시작했고, 나는 라멘은 국물 한 방울까지 먹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다 비우고 그릇 바닥에 써있는 '아리가토(감사합니다)'라는 글자는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오며 필자가 후배에게 했던 말은 "모 나쁘진 않은데 두 번 다시 올 집 같진 않네"였다. 그런데, 그 날을 시작으로 어느덧 그 집을 열 번 가까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무슨 '그 때 그 사람'도 아닌데 비가 오면 생각나기도 하고, 그저 보고 싶기만 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집의 상호인 '하카다 분코'는 어떤 뜻일까. 하카다는 일본 남단 큐슈 지방의 한 지명이다. 일본 전국에서 대표적인 라멘이 북쪽의 삿포로 라멘과 남쪽의 하카다 라멘이라고한다. 문고(文庫)는 뭐냐 물으니, 문학과 같은 맛이고 그렇게 널리 퍼져가기 바란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일본의 라멘은 육수의 종류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간장이 기본인 쇼유라멘, 일본 된장으로 육수를 낸 미소라멘, 그리고 돼지 뼈로 육수를 낸 돈코츠 라멘이 있는데 이 집 라멘은 이른바 돈코츠 라멘에 속한다.

주문을 하면 그릇을 뜨거운 물에 담가 위생처리와 동시에 최적의 온도에서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팔팔 끓고 있는 육수를 붓고, 면을 한 번에 2개씩 삶아내어 그릇에 담고 고명을 얹으면 손님에게 전달된다.

라멘 맛은 어떤가. 먼저 국물을 들이켜면 진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게 된다. 느끼해서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생마늘을 즉석에서 으깨어 넣으면 한결 먹기가 수월해진다. 면발을 젓가락으로 올려 입 안에 후루룩하고 넣으면 꼬들꼬들한 면발이 춤을 추듯 목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물론 이곳은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인지라 김치가 놓이는데, 상큼한 김치의 맛을 느끼려면 이 집의 라멘과 함께 먹으면 된다. 느끼한 맛과 김치의 맛이 조화를 이루어 입 안에서 새로운 맛을 탄생시킨다.

시내에 있는 유명한 일본 라멘의 맛에 길든 사람은 이 집의 라멘을 처음 먹으면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고 이 집 라멘의 맛에 길들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다른 곳의 라멘의 맛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필자 역시 그렇게 되었다.

이 집 라멘을 먹고 난 후로는 다른 곳의 일본 라멘은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하카다 분코의 라멘은 강렬하다.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으나, 딱 세 번만 가게 되면 그 다음은 가자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게 된다. 그 느끼하면서도 걸쭉한 육수와 부드럽게 감겨 목 안으로 들어가는 면발을 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일본말로만 대화를 하는 그곳의 분위기 역시 일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본토의 맛을 내는 일본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혹시 지금 당장 일본의 골목으로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홍대 극동방송 옆 골목 안에 수줍게 자리 잡고 있는 곳, '하카다 분코'로 달려가면 된다. 아, 일본 라멘을 파는 집답게 점심시간과 저녁 사이에 준비를 하는 시간이 있다. 꼭 확인하고 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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