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잔소리에 인생을 확 바꾼 아이들

학교가 싫은 아이들, 어떻게 할까?

등록 2006.04.15 18:05수정 2006.04.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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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00. 어, 어디 있어?"
"선생님, 저 여기요."
"어, 오늘은 앞에 앉았네."
"선생님, 저도 앞에 앉았어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는 수업시간. 학기 초에는 번호순으로 이름을 부르며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눈을 맞추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앉은 자리가 들쑥날쑥해져 내 눈길도 덩달아 앞뒤좌우로 헤맬 수밖에 없었다. 눈이 나쁜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바꿔 주었다고 말은 하지만 뒤로 자리를 옮긴 아이들의 수업태도를 보면 그것이 진짜 이유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강제로 자리를 옮기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강압적인 태도로 인한 부작용도 문제지만, 교사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학생의 말을 무조건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들쑥날쑥한 자리에 따라 눈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이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 두 아이가 본래의 앞자리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웬일이야? 선생님 얘기 듣고 인생을 확 바꾼 거야?"
"예? 예."
"저도요, 선생님!"
"요것들 이뻐 죽겄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싶었다. 수업시간에 늘 딴 짓만 하던 두 아이가 제 스스로 앞자리로 돌아온 것도 놀랄 일이거니와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두 아이의 눈동자가 마치 시냇가에 뒹구는 물먹은 조약돌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아이는 며칠 전 이런 낙서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심심하다. 항상 난 심심해. 그냥 학교 다니기 싫어. 졸라 잼 없어. 아 그냥 대충 살자. 피씨방 가고 싶다. 심심하다. 아, 학교 다니기 싫다. 선생님, 맨날 공부만 하지 말아요. 재미 없어요. 학교 올 맛이 안나요.'

그날 우리는 진도를 조금 일찍 끝내고 '봄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얀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고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종이에 담아보라고 했다. 낙서를 해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지만 그 속에 자신의 진실이 담겨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낙서처럼 휘갈긴 몇 줄의 글이 그 아이의 진실인 셈이었다.


학교에 올 맛 안 나는 것이 학생 잘못일까, 교사의 잘못일까? 어차피 정답을 바랄 수 없는 물음이지만 그래도 내 수업을 반성해 볼 필요는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수업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대다수 학생들이 수업에 대해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글을 많이 써준 탓이기도 했다.

'선생님, 저는 이 학교에 와서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중학교 때부터 영어시간엔 관심도 없었고 뭘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몰랐어요. 그런 걱정을 고등학교에 와서 더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참 재미있고 쉽게 가르쳐주셔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느낌이 왔습니다. 앗, 저분은 웃음을 가진 분이시다라고 말이죠. 선생님이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말씀 하실 때 믿기지 않았지만 영어 시간이 되고 선생님이랑 수업을 할 때 제 자신 저절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 가지라도 하게 돼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그렇다면 왜 이 아이는 수업시간에 심심한 것일까? 물론 그 이유야 뻔하다. 공부에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수업을 해도 공부는 공부인 것이다. 공부는 원래가 재미없는 것이 아닌가. 재미가 없어도 장래를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철이 없고 당장은 노는 것이 좋은 것이다.

문제는 노는 것이 금지 되어 있는 수업시간이다. 놀 수 없으니 심심할 수밖에 없다. 심심하지 않으려고 딴 짓을 하다가 들키면 혼이 나든지 잔소리를 들어야하지만 그것이 한 시간 내내 심심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 교사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다시 딴 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교사인 나로서는 섭섭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아이가 매일 같이 치러야하는 심심함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봄수업을 하고 난 며칠 뒤, 나는 그 아이를 자리에서 불러 세웠다. 물론 그날도 키득키득 웃어가며 옆 아이에게 말을 걸다가 내게 걸린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아이의 자리로 걸어가 잠시 멈춰 서 있다가 그의 손을 잡고 전체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수업시간에 떠들고 잡담하는 거 이해할 수 있어요.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그러는 건데 그것이 아주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수업태도를 고쳤으면 좋겠어요.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자리에 앉아 있으려면 얼마나 심심하고 짜증나겠어요. (이 대목에서 아이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지금 여러분이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여러분이 어떤 노력을 해서 그에 대한 보람 같은 것을 느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공부를 통해서 이런 보람을 느껴본 사람은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도 하루에 적어도 다섯 시간은 책을 보든지 공부를 하는데 그 시간만큼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도 없어요. 여러분도 한 번 그런 재미와 보람을 느껴보세요. 이제부터라도 여러분의 인생을 확 한 번 바꿔 보세요."

이런 말에 아이들이 혹하고 돌아온다면 얼마나 교사생활이 편하고 좋을까? 사실 이런 말은 학생들에게 또 한 번의 잔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해서 아이의 손을 꼭 쥐고는 있었지만 다음 날 그 아이의 태도가 달라져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코밑이 시컴시컴한 남자 아이들이라고 해도 얼마나 귀엽고 예뻐 보였겠는가. 그날 나는 수업을 하면서 두 번 세 번 두 아이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두 아이는 무엇보다도 교사인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자신의 삶을 바꿔 볼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뻔한 잔소리에 '인생'을 확 바꿀 생각을 했겠는가 말이다. 물론 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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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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