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항상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등록 2006.04.18 15:36수정 2006.04.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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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머니

어머니 ⓒ 정연창

"어머니! 옛날이야기 한 번 하실라우?"
"뭔 옛날이야기 타령이냐?"


어제(17일) 마석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였습니다.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는 아들 말에 어머니는 내심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서 열 번도 넘게 들었지만 어머니의 힘들었던 과거지사를 듣는 게 내겐 언제부턴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듣고 또 들어 내용을 훤히 알고 있는 어머니의 삶이 내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기에, 어머니가 빠져드는 추억 한 켠에는 어렵고 힘들었던 내 유년도 '침침한' 회색빛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느 날 하굣길.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힘없이 걷고 있을 때 택시가 내 옆에 급히 섰습니다. 택시 문이 열리고 동네 아주머니가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얼른 타거라. 너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네? 저희 아버님이요!"
"그래! 빨리 타거라."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홉살이었습니다. 오랜 투병으로 집에 재산 한 푼 남기지 않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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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창

유난히 추웠던 겨울, 12월이었습니다. 그동안 진 빚을 다 갚고 쫓겨나듯 이사간 집은 강원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쓰러지기 직전의 폐가였습니다. 철이 들었던 형(13살)은 그냥 집에 들어갔지만 어린 나는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썼습니다.

"갈 곳도 없는데 속 썩이지 말고 들어가자."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며 잡아끄셨지만, 난 어머니 속을 한참 썩이고 나서야 집안에 들어갔습니다. 방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보리쌀 반 말이 우리 겨울나기 식량의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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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창

어머니는 다음날 옥수수를 구해다 엿을 만들었습니다. 한잠도 못 주무시고 밤새워 만든 엿을 머리에 이고 백운산을 넘어 동해시까지 걸어서 도착하면,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엿을 판 돈으로 생선을 사서 머리에 이고 걸었습니다. 탄광촌인 사북과 정선에서 생선을 다 팔고 나면 점심때를 한참 넘긴 시간이었답니다. 밥 한 술 못 드시고, 걷고 또 걸어 집에 도착하면 저녁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녹초가 된 몸으로 저녁을 지어 아이들을 먹인 뒤 다시 엿을 만들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어머니에게 혹독했던 그 겨울은 단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어머니, 한잠도 못 주무시고 높고 높은 산을 넘어 장사할 때 얼마나 힘드셨어요?"
"야~ 야, 어린 두 놈 굶겨 죽일까 생각하니 추위나 배고픈 거는 생각 나지 않고 너희 놈들 생각하며,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어머니는 서울에 사는 자식들(2남 2녀) 집을 한 바퀴 돌아보고 어머니가 살고 계신 마석으로 가시는 길입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형님이나 내가 함께 살자고 해도 어머니는 한사코 혼자 사시는 게 편하다고 거절하십니다. 그래서 고령임에도 혼자 생활하십니다.

자녀들은 한 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뵙고 있습니다. 휴일이 되면 가는 곳이 어머니집이 되었고, 휴가철이 되면 어머니집이 휴가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방학하면 방학 내내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어머니집이 되었고요.

새로 뚫린 구리-춘천 고속화 도로를 달려가는 차창으로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어머니, 제가 속 무지 썩였죠?"
"어릴 때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병약해서 너는 늘 걱정거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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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창

항상 덤벙대며 천방지축인 나는 쇠죽 끓이는 가마솥에 넘어져, 손을 덴 적이 있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엔 그 당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길도 사람이 걸어다니는 정도의 좁은 길이었기에 자동차 구경도 할 수 없었지요. 모든 일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외양간에서 소 거름을 봉지에 담아와 화상 입은 부위에 올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시원한 기운도 잠시뿐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고통을 호소하면 어머니는 다시 외양간으로 향하셨습니다. 밤새도록 한숨도 못 주무시고 간호하며 기도해 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 지금 소원이 뭐예요?"
"항상 위험한 운전하는 네가 늘 걱정이다. 네가 안전운전하고 교회 잘 다니는 게 소원이다."

어머니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의 막내(나)를 항상 걱정하십니다. 지금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하고 염려하십니다.

"어머니, 항상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괜찮다. 자주 오려고 애쓰지 마라."

자식이 힘들지 않을까부터 걱정하시는 어머니. 혼자 살겠다고 고집하시는 이유가 자녀들이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속마음에서라는 것도 잘 압니다.

'힘들고 모진 세월을 견뎌온 어머니…. 어머니 앞에, 나는 늘 죄인입니다.'

a 지난 여름 휴가때

지난 여름 휴가때 ⓒ 정연창

덧붙이는 글 | 힘든 시절을 살아온 세상에 모든 어머니가 고통으로 빚어낸 아픔이 있었기에 가족의 역사가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힘든 시절을 살아온 세상에 모든 어머니가 고통으로 빚어낸 아픔이 있었기에 가족의 역사가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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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름다운 사연도 많고 어렵고 힘든 이웃도 참, 많습니다. 아름다운 사연과 아푼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가감없이 전하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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