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통학로... "한솔이는 길을 건너다 그만"

재건축 공사로 통학로 폐쇄돼 잇따라 교통사고

등록 2006.04.18 20:16수정 2006.04.18 21:15
0
원고료로 응원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잠들 때나 깨어 일어날 때/ 차를 탈 때나 신호등 앞을 지날 때/ 공부할 때나 뛰어놀 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 버려두지 마시고 두 손으로 고이 품어주세요…."

a 서울 반포동 원촌중학교 학부모 30여명은 18일 오후 원촌중학교 구름다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들의 안전한 통학로 확보를 요구했다

서울 반포동 원촌중학교 학부모 30여명은 18일 오후 원촌중학교 구름다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들의 안전한 통학로 확보를 요구했다 ⓒ 민주노동당 서초구위원회

서울 반포동 원촌중학교 학부모들이 등교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이 학교 3학년 9반 이한솔 학생을 살려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한솔이가 사고를 당한 것은 7일 오전 8시 20분께. 반포 주공3단지 재건축 공사로 기존의 통학로가 폐쇄되고 시공업체가 임시로 설치한 구름다리를 이용하기 위해 삼호가든아파트 앞에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었다. 한솔이는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같은 학교 백수연 학생 등 3명이 비슷한 방법으로 반포동 사평로를 건너다 오토바이와 충돌해 치료를 받고 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백수연 학생은 "아파트 공사로 원래 있던 통학로가 없어지고 통학버스마저 2~3일 만에 끊겼으며 근처에 횡단보도나 육교조차 없다"며 "몇 백미터를 돌아가기보다 차도를 건너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육교나 횡단보도와 연결되는 안전한 통학로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5만8800평 규모의 반포 주공3단지 재건축 현장에는 2009년 3월말까지 아파트 44개동 3410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철거작업이 마무리되고 지금은 기초작업이 한창이다. 사고 직후 현장 주변엔 울타리가 설치됐고 구름다리는 폐쇄됐다.

대규모 공사장에 사방이 둘러싸인 원촌중학교는 현재 마치 작은 외딴 섬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유일한 통로였던 구름다리가 폐쇄된 뒤 학생들은 공사장 임시도로를 이용하여 학교에 다닌다. 구불구불한 공사로를 따라 가다보니 통학거리도 길어졌다. 현재 학생들의 등하교길 통학지도는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외딴 섬처럼 갇힌 학교... "황제테니스장으로 이전해달라"

a 5만8800평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벌어지면서 학교가 외딴섬이 되었다

5만8800평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벌어지면서 학교가 외딴섬이 되었다 ⓒ 민노당 서초구위원회

이와 관련 '원촌중학교 학습권 보장을 위한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원촌중학교 구름다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처의 횡단보도나 육교와 전혀 연계성이 없는 구름다리는 학생들이 사평로를 가로질러 건너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설계돼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며 건설사와 관할 구청의 사과를 요구했다.


학부모들은 이날 ▲공사 중단 ▲학교 임시 이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안전한 통학로 확보 ▲잇따른 교통사고 원인 진상조사 등을 요구했다.

또 "이 사건의 근본원인은 조합과 GS건설이 구름다리를 설치하면서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공사비 절감과 공사편의만을 위해 설계했기 때문"이라며 1단계로 ▲GS칼텍스 불매운동 ▲재건축사업시행인가처분 취소 및 학교접근로 찾기 소송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관계 부처에 탄원서도 제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신 학부모 비대위 위원장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와 안전을 위해 잠원동 황제테니스장 등 학교 소유 땅으로 학교를 이전하기를 바란다"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학생들이 마음놓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통학로라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관계자는 "학부모들과 수시로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안전한 통학로 마련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5. 5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