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19일 오후 현대직원들의 결사적인 경호를 받으며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성연재
검찰이 그랬다. "1조원 헌납과 수사는 별개"라고. 믿자. 검찰의 수사 기세가 예전과는 좀 다르다.
회사 돈을 횡령해 생활비로 쓴 두산 총수 일가 전원에 대해 검찰은 불구속 처리한 바 있다. 그 뒤 대법원장과 법무장관의 입에서 '재벌 봐주기 수사(판결)'를 지적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은 다르다. 기세가 만만치 않다. 단적인 예가 있다.
검찰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 부자가 1조 원대의 글로비스 주식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하자마자 평가절하했다. 그게 어떻게 1조원이냐는 반문이었다. 어제 종가를 기준으로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가치가 7887억 원에 불과했다는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정 회장 부자가 갖고 있는 글로비스의 지분은 60%, 설립자본금은 50억 원이다. 그러니까 정 회장 부자가 글로비스에 투자한 돈은 30억 원이란 얘기다.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다.
글로비스는 현대차의 차량 수송을 독점하는 업체다. 이 덕에 급속성장을 했고 한때 주가가 9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30억 원에 불과했던 주식 가치가 7887억 원으로 치솟은 힘도 현대차의 몰아주기에 있었다.
이는 뭘 뜻하는가? 한마디로 정리하면 현대차의 불법 행위 면피용으로 내놓겠다는 1조 원은 엄밀히 따져 정 회장 부자의 돈이 아니다. 주식 투자자의 돈이다. 주식 투자자, 즉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정 회장 부자의 면피 자금을 대겠다는 취지다.
사회공헌 1조원은 주식투자자의 돈
경영을 잘 해 회사 가치를 높인 것이니까 주식 가치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우길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이미 나왔다. 참여연대는 지난 6일, 재벌의 주식거래현황을 조사한 결과 '회사기회 편취' 사례가 가장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글로비스라고 발표했다. 회사의 알짜배기 유망분야를 총수 일가가 지배주주인 별도회사에 떼어내는 게 바로 '회사기회 편취'다. 물론 '회사기회 편취' 수법은 물량을 몰아주는 '지원성 거래'에 의해 완성된다.
글로비스의 급성장과 주식가치 상승은 경영을 잘해서라기보다 현대기아차의 몰아주기 덕분이다. 다시 말해 글로비스만 없었다면 현대기아차가 그만큼의 이익을 챙겼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 회장 부자는 주식 투자자의 호주머니를 털 뿐 아니라 현대기아차의 이익을 가로채 자신들의 면피 자금을 조달하는 셈이다.
기막힌 상술이다. 투자는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 회장 부자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 시선을 과거로 돌리자.
현대차는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에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내세워 산업은행에 로비를 벌였다. 현대차 계열사인 위아와 기아차 하청업체인 아주금속공업의 채무 2000억 원을 탕감해 달라는 로비였다. 현대차는 이 로비를 위해 김 전 대표에게 41억 원을 건넸고, 이 돈 중 15억 원 가량이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건네졌고 550억 원의 채무가 탕감됐다.
법원이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박상배·이성근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에 최종 판단은 좀 늦춰야겠지만 검찰 수사결과에 기대어 얘기한다면 현대차는 41억 원을 들여 550억 원을 절약했다. 12배 장사를 한 셈이다.
1조 헌납과 550억 채무 탕감의 공통점은?
비교해 보자. 1조 원 사회 헌납과 550억 채무 탕감엔 비슷한 점이 있다. 자기 돈 지출은 최소화하고 남의 돈 챙기기는 최대화했다. 1조 원 사회 헌납엔 30억, 550억 채무 탕감엔 41억 원의 자기 돈을 썼지만 이 과정에서 동원한 남의 돈은 최소 9400억 원(어제 종가 기준으로 정회장 부자 투자금 30억을 뺀 나머지 금액 7857억+채무 탕감에 따른 공적자금 550억)이다.
이 뿐이 아니다. 믿고 싶진 않지만 만에 하나, 검찰과 법원과 공정거래위가 1조 원 사회 헌납을 정상참작의 사유로 인정할 경우 과징금과 추징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비스 몰아주기에 대한 부당거래 과징금, 그리고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옛 기아차 계열사를 헐값에 편법 인수하고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를 벌여 얻은 이익에 대한 추징금은 계산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정상을 참작해 과징금과 추징금의 일부를 뚝 떼어내 버리면 정 회장 부자는 이익을 추가로 챙기게 된다.
경제성이란 이런 것이다. 단지 상거래에만 경제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한국의 대표 재벌 현대차의 정 회장 부자는 사법도 거래대상으로 놓고, 여기에 경제성의 원칙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반성과 사죄도 절약할 수 있다는 한국형 경제성의 원리가 얼마나 창조적이었는지 이제 외국 자본까지 따라하고 있다. 론스타가 한국민이 고마워 1000억 원을 내놓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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