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여론조사야? 선거운동이지

"000후보 아세요?"... 노골적 홍보에 후보자 소개까지

등록 2006.04.21 10:23수정 2006.04.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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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여론조사 방법 중 일반 국민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방식은 전화ARS를 통한 조사방식. 그런데 일부 후보자들과 '무늬만 여론조사기관'이 공모해 후보자를 홍보하는 식의 여론조사가 늘고 있다. '여론의 측정도구'라는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한편 특정 후보를 교묘하게 홍보하는 식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것이다.

입후보 예정자와 짜고 '홍보' 여론조사 실시

선관위가 여론조사를 빙자한 사전선거운동행위(공직선거법 위반)로 고발한 사례도 여럿이다. 경기도 A시장선거 입후보 예정자 N씨, 경기도 K군수선거 입후보 예정자인 D씨, 경기도 S시 비례대표 시의원 입후보 예정자 B씨, 충남 A시장선거 입후보 예정자 L씨, 대전 Y구청장선거 입후보 예정자 P씨 등이 모두 불법 여론조사를 벌이다 적발됐다. 이중에는 여론조사기관 대표 3명과 현직 단체장 1명도 포함돼 있다.

a 여론조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올라온 선관위 홈페이지

여론조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올라온 선관위 홈페이지 ⓒ 선관위

이들이 자행한 여론조사 수법은 대부분 비슷하다. 지난 3월 경기도 A시장 선거 입후보 예정자인 N씨는 여론조사기관 대표 K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설문내용에는 N씨 혼자의 이름만 들어 있었다.

"A시장에 출마할 예정인 전 경기도의회 의원 N씨를 아시면 1번, 이름 정도 들어보았으면 2번, 모르면 3번을 눌러주십시오."
"A시장에 출마할 예정인 N씨가 △△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선 가능하면 1번, 당선이 어려우면 2번, 모르면 3번을 눌러주십시오."


정상적인 여론조사라면 복수의 후보들을 말한 다음 그 중 지지후보를 선택하게끔 돼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전화를 받고 여론조사에 응하는 사람은 N씨 이름만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사실상의 선거운동이다.

아예 후보자의 경력 등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상대 후보는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충남 A시장선거 입후보 예정자인 L씨는 지난 3월에 M여론조사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후 설문내용을 자신이 직접 여론조사기관 홈페이지에 입력했다.


설문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당 L씨는 청와대 출신의 대학교수로 올해 46세의 00지역 출신입니다. △△당 후보로 L씨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 1번 모르시면 2번을 눌러 주십시오."


더욱 노골적인 선거운동이다.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여론조사에 대해 선관위 홈페이지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다.

여론 조사는 같은 시간에 무작위 다수에게 행해져야 하는데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질문하면 신뢰할 수 있는 여론조사가 아니다. 여론 조사를 핑계로한 사전 선거운동은 아닌지 싶다. (강○○, 2006/03/10 13:29 작성)

부산의 여론조사기관인 다산리서치 강태문 대표이사는 "선거기간 여론조사가 여론을 측정하는 목적보다 홍보를 위한 기획성 여론조사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선거에 나설 예정인 후보자들이 아예 스스로 여론조사를 하거나 전문성이 크게 떨어지는 기관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최모씨(39세)는 "최근 하루 5통 정도의 여론조사 설문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는다"면서 "가만 들어보면 은근히 특정 후보 이름을 반복해 들려준다"고 말했다. 다른 유권자인 박모씨(24세) 역시 선거여론조사에 대해 "이름을 미리 알려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며 사전 선거운동 성격의 여론조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선관위 "유권자 신고 절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신고내용이나 정황이 구체적인 경우 조사에 착수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처리결과를 통지한다"며 유권자들의 신고가 사전선거운동 단속의 근거의 실마리 된다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정황이나 대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불법여론조사의 단속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라며 ▲녹음을 하거나 문구를 정확하게 기억해 신고하거나 ▲발신추적 기기에 뜨는 번호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제보를 당부했다.

선관위는 이후 비공개 감시단원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 과거 선거기획에 참여한 자의 움직임 집중 추적, 정보 수집을 추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한다.

a 여론조사를 빙자한 불법선거운동이 늘어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은 한 여론조사기관이 전화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는 장면으로 기사내용과는 연관이 없다.

여론조사를 빙자한 불법선거운동이 늘어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은 한 여론조사기관이 전화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는 장면으로 기사내용과는 연관이 없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선거기간이 되면 더욱 가열되는 여론조사, 지금처럼 마케팅의 하나로 전락한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표지판 역할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다산리서치 강태문 이사는 "여론조사기관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되어 있어 설립 자체에 엄격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 여론을 측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의도된 정치적 목적의 가짜여론조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이사는 "여론조사 결과는 현상의 반영으로 참고만 할 뿐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식의 신봉은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선관위 역시 유권해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상적 여론조사 평가 위한 참고사항

■ 조사 시기는 언제인가?

■ 어떤 조사방법을 썼는가?

■ 표본오차율은 얼마나 되는가?

■ 질문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 질문이 던져진 순서는 어떻게 배치되었는가?

■ 조사결과는 응답자 전체를 기준으로 산출된 것인가?

■ 같은 주제를 놓고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는 없는가?

■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은 어디인가?

■ 몇 명의 응답자가 조사에 참여했는가?

■ 이 응답자들은 어떻게 선택되었는가?

■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직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인가?

■ 조사비용을 댄 스폰서는 누구이며 왜 이런 여론조사를 실시했는가?

덧붙이는 글 | 박경애 기자는 5·31 지방선거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구성한 '<오마이뉴스> 지방선거 특별취재팀' 소속 시민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박경애 기자는 5·31 지방선거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구성한 '<오마이뉴스> 지방선거 특별취재팀' 소속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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