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미술의 진수를 느끼려면 이 곳으로 오세요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관람기

등록 2006.04.21 18:13수정 2006.04.21 18:14
0
원고료로 응원
a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비천상 탁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비천상 탁본. ⓒ 정상혁

작년 말 새로 이사온 후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초기 무료입장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힘입어 굉장히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한편으로는 살짝 들뜬 기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국립'에 '중앙'까지 굉장한 수식어가 두 개나 들어갔으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리고 반만년 역사동안의 유물들을 갈무리했으니 그 수는 또 얼마겠습니까?


애초부터 다 돌아볼 생각은 없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는 전통미술을 중심으로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go.kr)를 이용해 사전조사도 조금 해봤습니다.

전에 있던 자리인 광화문보다 몇 배나 넓은 자리인 이곳 용산은 일제시대 때에는 일본군대가 다시 해방이후에는 미국군대가 주둔하던 자리입니다. 그런 곳에 이제 우리나라의 자존심인 역사유물들의 총집합소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자리한 것은 비록 늦긴 했지만 반가운 일입니다.

동쪽의 아차산과 서쪽의 덕양산, 남쪽으로는 관악산, 북쪽으로 북한산이 만나는 중심이 바로 박물관이 터를 잡은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전부를 다 돌아볼 생각 없이 온 걸음이라 매표소에서 표를 끊자마자 바로 2층 왼쪽을 따라 마련된 '미술관 I'로 향했습니다.

2층에 자리한 미술관 I은 서예실, 회화실, 불교회화실, 목칠공예실로 나누어져 있고 관람동선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미술관 II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II는 불교조각실→금속공예실→도자공예실로 이어집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우리나라 최대 범종에 그 제작과정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의 탁본입니다. 교과서 표지 그림으로 쓰이기도 한 비천상의 탁본 앞에 서서 눈을 감고 경주박물관의 종 모습과 언젠가 TV에서 들은 적이 있는 웅장한 울림도 머리 속으로 떠올려 봅니다.

그 때보다 과학기술이 더 발전되었다고 하지만 어째서 그런 울림을 재현해 내지 못할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정말 맞는 말인가 봅니다.


a 서예나 서화에 찍는 낙관의 종류에 대한 설명입니다.

서예나 서화에 찍는 낙관의 종류에 대한 설명입니다. ⓒ 정상혁

사실 서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서예실은 그리 깊은 수준의 관람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추사체하면 알아준다니 그 분이 쓴 글씨 앞에 한참을 서서 '저 글씨가 뭐 그리 대단한 건가?' 속으로 생각해보다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저같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한 설명이 눈에 띄는데 정작 작품보다 더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서예실을 지나 회화와 불교회화로 접어드니 이제 서예실을 지나며 들었던 주눅이 조금씩 풀려갑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당 한 가운데에 학이 두 마리 날아들었는데 사람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습니다. 범상치 않은 학인가 봅니다. 이런 걸 보고 풍류라고 하나요?

불교회화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제가 이제껏 본 그림 중 단연 최대였던 괘불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금세 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높은 것이 20미터쯤은 되는 크기일까요?

괘불은 야외법회를 위해 바깥에 거는 걸개그림으로 큰 사찰의 대웅전 뒤편이나 불단 뒤쪽에 크고 긴 상자 안에 담겨 있는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펼쳐진 형태로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a 마당에 학이 날아들어도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자기 일에만 열중입니다.

마당에 학이 날아들어도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자기 일에만 열중입니다. ⓒ 정상혁

불교회화실을 지나 목칠공예실에 이르니 또 반가운 설명이 나옵니다. 조개 껍데기로 만드는 나전장식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런 설명들은 유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이곳까지 오면 미술관 I의 관람이 모두 끝입니다. 한층 올라가면서 경천사 10층 석탑도 둘러보며 발 쉼을 하면서 복원완공된 경천사 10층 석탑을 감상합니다. 건물 안쪽에 탑을 배치할 생각을 하다니 참 대단하지요?

3층 '미술관 II'에 들어서니 불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을 쪼아 만들고 쇠를 부어 만든 불상이 많긴 많았나 봅니다. 박물관 어디가나 불상이 천지인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불교를 어지간히도 의지하였나 봅니다.

조명이 잘되어 있어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을 연신 셔터를 눌러대더군요.

백제의 미소라고 알려진 서산의 마애삼존불도 해의 위치에 따라 그 미소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곳 불상의 상호에서도 뭔가가 느껴지지 않나요? 왼쪽 부처님의 상호에 근엄함이 서려있다면 오른쪽은 마치 작은 입술을 가볍게 오므린 것이 마치 어린 아이 같기도 합니다.

a 조명 덕에 불상의 표정이 풍부해졌습니다.

조명 덕에 불상의 표정이 풍부해졌습니다. ⓒ 정상혁

하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입니다. 국보중의 국보이자 미술관 I, II를 통틀어 가장 자랑할만한 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을 특별히 마련된 별도의 관람실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내에서 플래시나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은 촬영은 허용되지만 이곳 특별 전시실에서는 사진촬영이 완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별도의 안내를 위한 직원까지 배치되어 있지요. 이곳의 유난히 어두운 조명 속에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보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책에서만 보았던 미륵반가사유상 앞에 섰습니다. 말없이 고요한 가운데 한참동안 서서 왼쪽에서 보고 오른쪽에서 보고 또 뒤에서 보고 하니 안내 직원이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는데 그 설명을 들으면 미륵반가사유상의 가치가 가슴에 좀 더 진하게 다가옵니다. 그냥 휙 하니 보고만 나오지 마시고 그 알 수 없는 신비한 미소를 느껴보세요.

여기까지 보고`나면 시간은 얼추 두 시간여가 지나갑니다. 앞으로 남은 곳은 금속공예와 도자기인데 금속공예에는 고등학교 국사시험에도 곧잘 등장하는 연가 7년명 금동여래 입상을 비롯한 각종 금속공예품과 고려시대의 백미인 고려청자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백자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짧으나마 미술관 I, II를 돌아다니며 느낀 것은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가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배려를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조명이었습니다. 전시된 유물에 집중할 수 있게 적절히 어두운 가운데 유물을 도드라지게 강조해주는 조명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a 보이는 그림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래 서있는 분의 키로 전체 크기를 짐작해보세요.

보이는 그림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래 서있는 분의 키로 전체 크기를 짐작해보세요. ⓒ 정상혁

그리고 중간 중간 배치되어 있는 쉴 수 있는 공간도 좋았습니다. 창문 너머로 멀리 서울타워와 남산이 보이기도 하고요. 유물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VCR을 보면서 다음에 감상해야할 또는 내가 빠뜨리고 간 유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외국인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물론 유료로 번역기 같은 기계를 빌려주기도 하지만 왠지 그걸로는 좀 부족한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누군가에게 우리 문화를 알려야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자신 있게 용산 국립중앙방물관을 향하게 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www.museum.go.kr

무작정 찾아기기 보다는 사전학습이나 관람동선을 생각해보고 가시면 좋습니다.
하루에 다 보기보다는 테마별로 나누어 여러번 가는 게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www.museum.go.kr

무작정 찾아기기 보다는 사전학습이나 관람동선을 생각해보고 가시면 좋습니다.
하루에 다 보기보다는 테마별로 나누어 여러번 가는 게 좋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