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그만두고 '생명평화순례단원' 된 딸

23일, 새날이가 외박을 나왔습니다

등록 2006.04.24 19:03수정 2006.04.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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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가 외박을 나왔다. 단 하루가 전부였다. 짐작했지만 얼굴은 새까맣게 타 있었고 약간 야윈 듯싶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참 건강해 보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되어 전북지역을 걷기 시작한 지 한 달하고 일주일 되는 날이다.


군산 앞 바다 내초리를 걷고 있다.
군산 앞 바다 내초리를 걷고 있다.전희식
어제(23일) 밤 집에서 자고 아쉬움도 없이 씩씩하게 떠나갔다. 이른 아침, 헤어짐의 아쉬움을 용돈 3만원에 담아 주었다. 학교 다닐 때 들어가던 등록금과 생활관비 생각하면 10배는 더 줘도 되는 액수다. 그걸 받고도 새날이는 거듭 감사해 했다. 이별 인사 몇 마디에 내 마음을 다 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시커먼 얼굴과 아무렇게나 걸친 옷가지들을 훑어보니 웃음이 픽 나왔다. 신발도 문제가 없다. 다리도 안 아프다. 잘 먹으니 걱정마라. 뭐 해 줄까 물어도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 뭐가 되려고 이제 열여덟 저 나이에 저 모양으로 돌아다닐까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부안 해창갯펄에서 열린 행사
부안 해창갯펄에서 열린 행사전희식
어제 잠자리에 누워서 오래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졸려 나 먼저 잠이 들었다. 새벽에 나는 두 번 깼다. 새날이가 나를 불러서였다.

"아빠, 이건 어떻게 풀어야 돼요?"하는 소리에 깼는데 이 녀석이 잠꼬대하는 소리였다. 볼을 한번 쓰다듬어 주자 다시 잠이 들었는데 얼마 안 지나서 또 '아빠!'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잠이 깬 내가 순간적으로 '왜?' 했더니 우물우물 하면서 돌아누워 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꿈은 뭔가 새날이가 나를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에 내가 새날이 이야기를 써 올리는 꿈이었든지 내 카메라가 새날이를 찍는 꿈이었을 것이다. 새날이가 극구 반대하는 것이 자기가 사진 찍는 것과 자기 얘기를 글로 쓰는 거다.


새날이는 순례단의 붙박이 사진사다. 순례일기도 담당하고 있다.
새날이는 순례단의 붙박이 사진사다. 순례일기도 담당하고 있다.전희식
잠자리에 들 때 나는 탁발순례단의 소소한 일화들을 듣고 싶었고 그걸 물었었다. 새날이는 매일매일 순례단 누리집에 순례일지를 쓰고 있으므로 그걸 보라고 했다. 이미 다 읽고서도 채워지지 않는 아이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자식의 관심은 딴 데 가 있었다.

왜 이승만이는 독립운동을 했으면서도 친일분자들을 중용했냐고 내게 물었다. 새날이가 들고 있는 책을 흘낏 보니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었다. 저 책 어디에서 이승만이를 떠올렸을까 궁금했다.


장황한 내 설명이 지루했을까. 두 번째 질문을 했다. 프랑스혁명 때 빠리꼼뮨이 만들어졌는데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1,2차에 걸친 프랑스혁명을 신이 나서 설명했다. 최초고용계약제 입법이 프랑스 학생들과 노동자들에 의해 저지된 것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맞이한 첫 좌절이라고 덧붙였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순례에 참여했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순례에 참여했었다.전희식
아침에 집을 떠나면서 서고에 올라갔던 새날이는 홍세화 선생의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를 빼 들고 내려왔다. 순례 중에 읽겠단다. 마침 5월23일에 홍세화 선생과 함께 파리기행을 떠나는데 따른 사전공부인 모양이다. 한겨레신문 큰 지킴이 활동을 열심히 했더니 내가 파리기행에 선발되었다는 연락이 왔기에 딸을 대신 보낸다고 허락을 얻어 새날이를 프랑스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용돈 3만원보다 파리에 가게 된 것이 더 감사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농어민신문> 5월초에 실리는 글.

새날이는 올 2월 다니던 풀무학교를 자퇴하고 가정학교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농어민신문> 5월초에 실리는 글.

새날이는 올 2월 다니던 풀무학교를 자퇴하고 가정학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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