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들판의 노고지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종다리 노래가 끊긴 벌판엔 '침묵의 봄'만 머물고 있었다.

등록 2006.04.26 15:16수정 2006.04.26 15:1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남구만)
'샛별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아이야 시절이 좋을 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이재)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조지훈 '마음의 태양'에서)



예로부터 시가(詩歌)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 종달새. 국어사전에 올라있는 표제어는 종다리이지만 노고지리란 예스러운 이름이 한층 정답다. 그 밖에도 '고천자(告天子)' '운작(雲雀)' 같은 운치 있는 이름이 더 있는 것으로 미루어 노고지리는 선조들로부터 남달리 깍듯한 예우(禮遇)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고지리는 전원생활의 평화스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부지런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농경사회의 첫째 덕목이 근면인 만큼 우리 선조들은 모두 '종달새족'으로 종달새를 좋아했음에 틀림없다.

곡우(穀雨) 아래 녘, 노고지리를 찾아 고향마을에 들렀다. 옛 어른들 얘기로는 청명 즈음에 노고지리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지금쯤 그 날렵한 명조(鳴鳥)가 불러주는 봄노래를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 하늘 높이 떠서 가물가물한 모습으로 맑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던 노고지리.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며 찾아간 길은 그러나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 많던 노고지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노고지리는 북위 30도 이북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널리 분포할 뿐만 아니라 백과사전의 설명대로 '전국의 강가 벌판, 경작지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인데 말이다. 봄 하늘에 퍼지던 그 청아한 노래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된 것인가?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왜 저리 놀려대누/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왜 저리 놀려대누/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정지용의 시 '종달새'에서)
'종달새, 종달새 /너 어디서 우느냐 /보오얀 봄 하늘에 /봐도 봐도 없건만 /비일 비일 종종종 비일 비일 종종종' (이원수의 시 '종달새'에서)



'지리 지리 지리리'...? '비일 비일 종종종'...? 노고지리는 어떻게 지저귈까?
노고지리 소리는 듣는 이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정도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조용히 눈을 감고 들으면 하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신비한 가락 같기도 하다, 경쾌하고 감미로워 연가(戀歌)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텃세권을 지키기 위한 수컷의 으름장(?)이라는 사실이 생뚱맞기는 하지만 말이다.

노고지리는 노래 솜씨뿐만 아니라 비행 솜씨 또한 출중하다. 수직비상과 수직하강에 능하다. 하늘 높이 떠있다 땅으로 내려올 땐 쏜살같이 민첩하다. 그리고 언제나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앉는다. 천적들을 따돌리기 위한 속임수이다. 그리곤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재빨리 종종걸음으로 집을 찾아간다. 우연히 눈에 띄기 전에는 노고지리의 둥지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고향 친구들은 노고지리가 안 보인지가 몇 해인지 모를 만큼 꽤 오래 됐다고 말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어릴 적 노고지리의 노래를 들으며 뛰놀던 들판으로 나갔다. 그제야 왜 노고지리들이 사라졌는지 알만 했다. 개울도, 들판도 옛 모습이 아니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벌판을 가로질러 북한강 상류로 흘러들던 앞개울은 힘센 불도저가 물길을 왜곡해 놓았고 뼝대와 다북쑥, 갈다리 등이 어울려 자라는 속에 노고지리들이 둥지를 틀던 들판은 북한에서는 누더기풀이라고 부른다는 귀화식물 돼지풀의 세상으로 변했는가 하면, 여기저기 흩날리는 비닐 나부랭이들은 싱그러워야할 봄의 들녘을 을씨년스런 분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어야 건강할 터인데 부질없는 인간의 손길이 자연에 깊은 병을 안겨 주었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딱하기는 강가 풀숲뿐만이 아니다. 노고지리의 또 다른 생활공간인 보리밭, 밀밭도 경작 기피로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돼간다. 깃들일 곳이 마땅치 않은 터에 농약 피해로 먹이 사정도 악화일로다.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멧종다리, 바위종다리 등 종다리과 4종류 중 특히 뿔종다리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어 환경부에 의해 2급 멸종위기동물로 지정된 실정이다.

산천이 의구(依舊)하지 않거늘 어찌 노고지리가 그대로 남아있어 주기를 기대할 것인가? 노고지리 노랫소리가 끊긴 들판엔 '침묵의 봄'만 머물다 갈 뿐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