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용돈' '무관심'... 학대받는 노인들

최근 복지부 노인학대 발표 뒤 한 노인보호시설 탐방

등록 2006.04.28 11:05수정 2006.04.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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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학대, 정부와 사회 무관심이 만든 문제

26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국 17개 노인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 건수를 공개했다. 총 건수는 2038건. 가해자는 아들이 50%, 며느리 20%, 딸 12%, 배우자 7%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동네 주민들에게 구걸해서 먹고사는 노모의 경로연금과 교통비를 통장으로 받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아들이 있는 등 충격적인 사례가 함께 발표됐다.

노인 학대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나 정부와 사회적 무관심 때문에 사실상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다가 최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서서히 노인 학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학대 유형... 방임, 언어와 금전적 학대

요즘 각 언론은 보건복지부 발표 뒤 '자식에게 학대받는 노인' 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그러나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 타 노인보호시설 등에서 병들어 고생하는 노인들도 큰 사회 문제다. 지난 4월 26일 춘천에 있는 한 노인보호시설에 찾아가 '노인 학대 및 폭력'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은 총 20명. 자식들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 힘들어하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시설 내 노인들 중 '자식들에게 학대 및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소수 노인들이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학대를 받았다고 응답한 노인은 5명이었다.

받았던 학대 유형을 분석해봤다. 방임(무관심)이 가장 많았으며, 언어적 학대, 금전적 학대가 뒤를 이었다. 장(70·여)모 할머니에게 방임 사례를 들었다. 그는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관심이 없었어. 아침이면 (가족들) 다 나가지, 저녁에 들어오면 지들 방에 들어가 할 일 하지. 말할 시간이 없는 거야. 만날 똑같은 날이지 뭐"라고 하시며 가족들의 무관심을 원망하는 듯한 마음을 내비쳤다.


정(64세·여)모 할머니와 김(68·남)모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호소했다. 정 할머니는 "(자식들이) 날 여기 데려다 놓은 지 2년이 넘는데 그 동안 3번도 안 온 것 같아"라고 하시며 자주 찾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김(68·남)모 할아버지는 "자식? 다 소용없어. 내가 그나마 재산이라도 갖고 있어야 자식도 붙어 있는 거지, 돈 없으면 다 소용없어!"라며 울화통을 터트렸다.

"동네 술자리도 눈치 보여 못 나가"

이(69·남)모 할아버지는 언어 학대를 토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표현을 피하던 이모 할아버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박(73·남)모 할아버지는 금전적인 학대를 받았다. 그는 "난 용돈 자체가 없었어. 용돈 얘기를 자식에게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용돈이야 자식들이 알아서 주는 거지 내가(부모입장) 먼저 자식에게 손 벌리겠나?"라며 군색한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이어 "그래서 여행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동네 사람(노인)들끼리 어울려 술 한 잔 하는 자리마저 눈치 보여 나가지 못했어"라며 금전적인 학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보건복지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법정 신고의무자들의 신고 비율은 전체 2039건 중 133건으로 7%에 불과하다. 학대를 받았을 때 법적 신고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노인들이 많았으며, 일부는 법정에서 진술을 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는 이유로 신고를 기피했다.

노인보호시설 관계자인 한(42·남)모씨에 따르면 이 곳에 수용된 노인들 대부분은 가족이 있다. 그는 "노인학대로 입소한 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으나 "입소 당시 대부분의 노인들이 가족들과 같이 찾아와 입소절차를 밟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학대로 인한 입소라고 사유를 밝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침 이날 한 방송국 8시 뉴스에선 "다 성장한 아들이 생활비가 떨어지자 친구들과 짠 후 자신이 납치되었다고 아버지에게 알려 돈을 뜯어내려 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 뉴스를 보자 한시바삐 노인 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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