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 단속 없는 미국에 오고 싶다고?

'핑크빛'만은 아닌 미국 생활, 동경하는 아이들

등록 2006.04.28 12:34수정 2006.04.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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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지 마시오." 접근 금지 '폴리스 라인'
"들어가지 마시오." 접근 금지 '폴리스 라인'한나영
"선생님들의 협박으로 머리를 자르게 되었어. 그래서 샤기컷 했어. 미국은 두발자유라서 좋겠다. 부러워, 부러워. 나도 미국 가고 싶당. 거기 빈 방 없어?"


작은 딸의 싸이월드 방명록에 올라온 글이다. 친구들은 딸의 미국 생활을 부러워한다. 과연 그럴까.

"엄마, 큰일났어. 어떤 여자가 울고 있어. 스쿨버스 타는 '애벌런우즈' 바로 뒷집 말이야. 사람이 다쳤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끔찍한 사건이 난 것 같아. 지금 앰뷸런스랑 소방차가 와 있어. 경찰차도 와 있고."

벌건 대낮에 끔찍한 사건이라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사건을 설명한다.

"엄마, TV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노오란 '출입금지' 라인이 쳐 있고 여기저기 사람들도 나와 있어. 무슨 큰 일이 난 것 같아. 그리고 우리 학교 경찰관 밀러도 거기에 있어. 제이미가 밀러에게 무슨 사건이 났느냐고 물었더니 내일 아침 신문을 보래."

조용한 도시 해리슨버그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우리 동네 애벌런우즈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중학생인 작은 딸과 30분 시차를 두고 학교에서 돌아온 고등학생 큰 딸에 의해 상세히 보고(?)되었다.


작은 딸이 말하는 자기네 학교 경찰관 밀러는 중학교에 상주하는 경찰관이다. 이곳에서는 경찰관이 각급 학교로 파견이 되어 그곳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이번의 경우처럼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현장으로 달려와서 경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래서 딸아이와 친구는 자기 학교에서 낯이 익은 경찰관 밀러에게 인사를 한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었대?"
"잘 몰라. 하지만 뭔가 큰일이 난 게 틀림없어. 어떤 여자가 집 앞에서 계속 흐느끼며 울고 있거든. 그리고 다른 여자가 그 여자를 안고 위로해주고 있어. 엄마도 한 번 가봐."


마약과 총기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나라

사건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와 앰뷸런스.
사건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와 앰뷸런스.한나영
미국에 와서 처음 겪는 사건인지라 나는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가 보았다. 사건 현장에는 아이들이 말한 대로 경찰차 두 대와 앰뷸런스, 소방차가 총 출동해 있었다. 그리고 집 주변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폴리스라인'이 둘러쳐져 있었다.

현장을 구경하러 온 사람은 호기심 많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과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학생들도 구경을 나왔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느냐"고 서로에게 묻는 걸로 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궁금한 마음에 직접 경찰관에게 물어보려고 경찰차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경고! 경찰견 있음'이라는 문구가 부착된 경찰차 안에서 몸집이 호랑이(?) 만한 경찰견이 크게 짖는 바람에 그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결국 무슨 사건인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궁금증만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신문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기사는 발견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디든지 사람 사는 곳에는 사건·사고가 있기 마련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듯 마약과 총기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이곳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약이나 총기류와 관련된 수업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엄마, 체육시간에 자기 집에 총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는데 열 명 정도가 손을 들었어. 그리고 그 총이 집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세 명 정도 있었어."

작은 딸이 들려준 총기류와 관련된 중학교 수업은 조금은 섬뜩하고 생소하다. 하지만 미국 아이들은 총기류에 익숙한듯 자기 부모가 소유하고 있는 총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다.

큰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도 한국에서 받았던 수업과는 매우 다른 수업이 이루어진다. '헬스' 시간에 배운다는 '마약' 관련 수업이 바로 그것이다. 딸아이는 시험공부를 하면서 마약 지식을 테스트 하려고 하는데 마약의 '마'자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하겠는가.

하나도 모른다고 하니 딸아이는 철자도 복잡한 여러가지 마약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풀어놓는다. 마약의 종류와 효능, 마약의 증상과 부작용, 그리고 HIV와 에이즈, 에이즈 증상과 치료법 등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솔직히 관심도 없다.

밤길을 혼자 다녀도 겁 나지 않는 나라 '한국'

"경고, 경찰견 있음"
"경고, 경찰견 있음"한나영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전에 알고 지내던 한 미국인 여교수가 "어두운 밤길을 늦은 시간에 혼자 걸어다녀도 겁이 나지 않는 나라, 안전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했을 만큼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물론 우리나라도 끔찍한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고, 다른 범죄도 꾸준히 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에 비한다면 안전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딸아이의 친구들은 우리 애들을 많이 부러워한다. 우선은 한국에서처럼 강제 '머리 검사'도 없고, 교복이 아닌 옷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고, 밤늦게까지 남아야 되는 '야간자율학습'도 없고 여가활동을 즐길 만한 시간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생활이 반드시 핑크빛인 것만은 아닌 게 확실하다.

물 설고 낯선 이국 땅이 어찌 내 나라만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미국에 있는 동안 될 수 있으면 이곳의 좋은 점을 많이 보려고 한다. 특히 내 자신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형이고 교육자인 만큼 미국 교육에 대해 눈과 귀를 열고 많이 배우려고 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나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는 공자의 말을 새삼 기억하며 이곳 미국 생활의 경험이 내 삶의 새로운 스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미국을 배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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