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전 안에 있는 위패의 배열도. 가운데에 있는 문선왕(文宣王)은 공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성균관 홈페이지
대성전 안에는 제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교 성현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가장 안쪽에 안치된 위패는 '문선왕'이다. 문선왕은 바로 공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공자가 사후에 왕으로 책봉되었기 때문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의 왕은 황제 아래에 있는 제후의 신분을 갖고 있다. 기타 성인들의 위패에도 모두 책봉된 직책이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형식을 엄밀히 따지면, 이 제사는 유교 성현 공자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중국의 제후 '문선왕'에 대한 제사인 것이다. 위패에 쓰여 있는 문구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황제 아래에 놓여 있던 왕이 한국 수도 서울에서 제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옛 왕조들이 중국의 제후국도 아니었는데, 오늘날에 와서까지 한국 서울에서 중국의 제후에게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다. 조선시대의 국립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중국 제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중국에 종속되어 있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다.
성균관에서 유교 성현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 종교의 형식을 취한다는 것은 '유교 성현 공자에 대한 제사'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제후 문선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분명 종교적 영역을 넘은 것이며, 이는 한국을 중국의 제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공자에게 제사 지내면 됐지, 위패에 어떻게 쓰여 있는가가 무어 그리 중요한가?"라고 말할지도 모르다. 그러나 제사는 기본적으로 '형식'을 중시하는 의식이다. 그리고 유교는 더 더욱 형식을 중시하는 종교다. 그런 유교의 종교 의식이 형식적 측면에서 중국 제후에 대한 제사의 모양새를 취한다면, 그 누가 보더라도 유교 책임자들의 역사 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유교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고 싶다면, 그냥 공자에 대한 제사의 형식을 취하면 될 것이다. 절대로 중국 제후에 대한 제사의 형식을 취해서는 안될 것이다.
안 그래도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 마당에,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옛 조선의 국립교육기관에서 중국 제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면, 우리 스스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받아들이는 꼴이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서울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골로 방문하던 코스는 옛 중앙청 자리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을 지배하던 시절의 화려한 추억을 떠올리며 만족해 했다.
그런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서울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성균관 대성전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우리 중국에서도 사라진 의식이 이곳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신기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튼 성균관의 석전대제는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에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주화를 지향하는 21세기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동북아 3국이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당에, 한국 수도 한복판에서 우리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공자는 한국에서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제후 '문선왕'은 한국에서 절대로 수용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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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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