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에겐 악몽이자 희망, 마제이큐

[해외리포트] 국민총생산 10% 거대기업... 7년째 매각작업 지지부진

등록 2006.05.02 14:07수정 2006.05.0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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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7년째 매각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마제이큐 정유회사.

7년째 매각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마제이큐 정유회사.


2년 전 의회에 의해 탄핵됐던 롤란다스 팍사스(Rolandas Paksas) 리투아니아 전 대통령이 최근 정치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탄핵 근거가 됐던 국가기밀누설 혐의에 대해 최고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팍사스 탄핵 사태 당시 한국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문제가 진행되던 중이어서 많은 이들이 리투라니아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당선 전, 팍사스의 정치적 성격을 결정적으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킨 것은 리투아니아 최대의 기업인 마제이큐 정유회사(Mazeikiu Nafta) 민영화와 관련한 행적이었다. 국무총리였던 팍사스는 "마제이큐의 경제적 손해를 정부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국을 흔들었다.

2001년 당시 리투아니아 정부는 변변한 공청회나 공개입찰도 거치지 않고 마제이큐 정유회사를 미국의 윌리엄스(Williams International)에 일방적으로 매각한 후 적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제이큐 정유는 발트3국 유일의 원유정유업체로서 하루에 24만 배럴의 원유를 취급하며 리투아니아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하는 대기업이다. 1964년 러시아의 원유를 정유해 발트해 지역에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돼 대형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리투아니아에게 있어 마제이큐 정유는 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원유 에너지 공급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회사는 2006년 4월 현재까지도 리투아니아 주요일간지의 주요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넘고 넘어야 할 산들

a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있는 팍사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 팍사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전투기 조종사로 일했다.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있는 팍사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 팍사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전투기 조종사로 일했다. ⓒ www.paksas.lt

마제이큐 정유 사태가 시작된 것은 리투아니아 정부가 마제이큐 주식의 3분의 1을 윌리엄스에 매각한 1999년 10월부터이다. 러시아의 루코일(LUKoil) 등 쟁쟁한 업체들을 제치고 미국 회사를 선정된 것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지라고 리투아니아 정부는 발표했다.


이는 석유가 한 방울 나지 않아 그래서 전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해야 하는 리투아니아가 넘어야 할 구불구불 아리랑 고개의 서막을 여는 것이었다.

첫번째 고개는 바로 여론이었다. 국민총생산의 10%가 되는 대기업을 쉽게 외국 기업에 팔아넘긴 것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국민들의 반대가 뜨거웠다. 게다가 이같은 인수는 뚜렷한 공청회나 공개적인 입찰을 거치지 않고 거의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두번째 고개은 원료공급 문제였다. 미국에 기회를 놓친 러시아가 흑해지역에서 마제이큐로 공급해오던 원유 제공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마제이큐의 정유양은 급격히 떨어졌다. 1999년 한 해만 적자가 5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1년에 1200만톤 원유를 가공하게 해주겠다던 윌리엄스의 약속은 그 절반 정도인 600만톤을 겨우 가공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결국 월리엄스는 러시아의 유코스(Yukos)에게 마제이큐의 지분 26.85%를 넘겨주었고, 2002년 9월 유코스가 지분의 절반 이상인 53.7%를 인수하면서 윌리엄스는 완전히 철수했다. 이로써 러시아로부터 안정적인 원유공급이 보장되고 매출이 크게 오르면서 마제이큐 정유의 앞길은 다시 장밋빛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믿었던 유코스마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고.

유코스가 그렇게 무너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2004년 후반기 유코스의 재정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터져나왔다. 그러던 와중에 10월 유코스의 회장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문서위조·세금횡령 등에 연루되고 유코스는 빚더미를 껴안아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마제이큐 정유는 또다른 투자자를 찾아야했다. 당시 리투아니아 정부는 유코스의 지분을 사들이고 정부가 갖고 있는 40%의 주식 중 20%를 얹어서 제3의 투자가에게 이를 매각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계획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더미같은 빚을 안고 있던 유코스가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10억 유로(약 1조 1200억원)라는 금액을 제시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8억7천만 유로 정도를 제시했으나 유코스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같은 금액은 현지 은행들과 외국은행의 콘소시엄을 통해서 모을 수 있는 최대금액이었고, 리투아니아 내 경제전문가들이 국가 경제에 중대할 영향을 미칠 것이라 분석할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적자가 생길 것은 물론 2007년으로 계획하고 있는 유로존 가입에도 큰 지장을 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정부는 유코스로부터 지분을 인수하고 곧바로 3자에게 매각하면 1999년부터 내려오는 국가의 빚을 청산할 정도의 이익이 생길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장애물의 뒤엔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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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발트3국의 유일한 정유회사라는 이유로 마제이큐에 대한 투자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러시아의 루코일과 미국의 3대 정유회사인 코노코필립스(ConocoPhilips)가 공동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영국과 러시아의 콘소시엄이나 카자흐스탄, 오스트리아, 폴란드의 회사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유코스의 자산관리와 관련된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2005년 11월 러시아 정부는 유코스 파산절차가 끝날 때까지 해외에 갖고 있는 지분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의 배경에서 심상치 않는 냄새가 났다. 마제이큐는 러시아의 유코스 본사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에 설립된 관련법인이 관리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가 아니라 네덜란드 법원이 결정할 문제였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는 네덜란드 법원에 마제이큐의 자산 매각을 억류하도록 요청했다.

마제이큐 인수를 담당하는 변호사들은 "유코일 지분의 제3자 인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막고, 크렘린과 연관된 대기업에 넘겨주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라는 평가를 서슴치 않았다.

이같은 심증을 굳힐 만한 일은 그 후로도 자주 나타났다. 러시아의 원유업체 트란스네프트(transneft)와의 공동작업으로 카자흐의 카즈무나이가즈(KazMunayGaz)와의 협의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트란스네프트가 돌연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해온 것이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지난 2월 네덜란드 법원은 유코스가 외국에 가지고 있는 비핵심 자본과 자회사의 매각을 금지하는 조치를 해제할 것이라는 발표가 났다.

그것은 마제이큐 문제의 해결에 목마른 이들의 목을 적셔줄 반가운 소식이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몇 년간 이어지던 마제이큐 인수건이 조만간 종지부를 찍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4월 13일 원료공급 문제로 협상의 뒷전으로 밀려있던 폴란드가 20억 유로라는 협상 이래 초유의 가격을 제시하면서 그 기대가 현실이 될 조짐도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복병이 생각지도 않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미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4월 15일 미국 뉴욕 파산법원이 유코스의 자산매각을 10일 동안 제한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마제이큐 인수와 유코스의 법정관리 문제가 미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 제재 명령은 러시아 법원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 뉴욕 법원에서 제재 권고가 내려질 수 있었던 것은 현재 마제이큐를 관리하고 있는 유코스의 최대 주주가 바로 미국 시민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마제이큐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몇 년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가운데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4월 말 리투아니아 정부는 마제이큐 인수문제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다시 국유화하겠다는 방침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마제이큐 문제는 소련 계획경제가 독립 후에도 국가경제에 얼마나 걸림돌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독립국가들이 소련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직도 얼마나 멀고 힘든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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