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에게 길을 묻다

[서평] 갈리아 전기

등록 2006.05.06 11:19수정 2006.05.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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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갈리아 전기' 표지

'갈리아 전기' 표지 ⓒ 범우사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혀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배울 점이 많다는 쪽부터 인생을 너무 패턴화시켜 오히려 비교육적이라는 쪽까지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한다. 위인전에 실린다는 것은 해당 인물에겐 분명 영광이겠지만 위인전은 그 사람을 특정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단점이 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거짓말로 판명되긴 했지만 조지 워싱턴 하면 어려서 나무를 도끼로 찍어 내린 얘기만 기억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조지 워싱턴의 인생은 한 줌도 안 되는 민병대를 이끌고 거대한 지배자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였던 게릴라 지도자의 삶이 보다 본질에 가깝고 배울 점도 거기에서 찾아야 될 텐데 말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우리에겐 줄리어스 시저라는 영어식 이름이 더 친숙하다. 그를 떠올려 본다면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시작으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지나 ‘브루투스 너 마저’로 매듭짓는 명언 제조기(?)가 아닐까. 흰 천으로 된 옷을 몸에 휘감고 머리엔 황제 관을 쓰고서 독재를 휘두르다가 암살당하는 늙은 정치가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본질은 그 이름도 유명한 로마군단을 이끌고 적을 물리치던 군인이다. 그는 로마군 최강 시절을 일궈낸 장본인이고 그 군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것도 모자라 서양사에 자기 스타일을 진하게 새겨 놓은 인물이다. 철저한 전술 훈련을 바탕으로 파괴적인 전투력을 선보였던 로마군 지휘자답게 냉정하고 분명한 지휘관이 바로 그 카이사르였다.

기원전 오십 몇 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어떻게 그리 쉽게 단정할 수 있냐고? 기원전 58년~51년까지 카이사르가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와 브리타니아(지금의 영국)를 정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카이사르가 출세하는 공간이자 로마군 영광의 시기인 이 전쟁에서 카이사르가 어떻게 전략 전술을 펼치고 어떤 명령을 내렸는가를 당시에 기록된 ‘갈리아 전기’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참 저자가 바로 카이사르 자신이다.

전쟁 문학의 고전이라고도 평가받는‘갈리아 전기’는 막상 읽어 보면 심심하고 건조하다. 자기가 이긴 전쟁이라 신나게 무용담을 펼칠 법도 한데 당시 전쟁 준비 과정에서부터 전쟁에서 내렸던 명령들과 그 결과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카이사르 스타일과 로마군 전투력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도강 작전을 벌이고 새로운 공성전 무기를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로마가 가진 문명과 기술에서 우위를 바탕에 깔고, 반복된 훈련으로 새로운 전술을 익히고,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부대를 움직여 나가면서 승리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범우사가 펴낸 ‘갈리아 전기’ 초판이 1990년에 나왔는데 올해 3판을 내면서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다양한 일러스트와 풍부한 각주가 더해졌고 무엇보다 로마군 편성과 운용에 대해 살펴본 자료들이 추가되었다. 당사자 카이사르가 직접 적어 내려간 생생한 증언에 후세 밀리터리 연구가들이 찾아낸 해석이 더해진 점이 인상적이다. 필자는‘갈리아 전기’ 초판도 갖고 있는데 초판이 역사서였다면 이번 개정판은 밀리터리 강화 버전이라 할까.

사족을 하나 달자면 ‘갈리아 전기’를 읽으면서 아저씨들 인생을 생각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IMF 이후 가중된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 아저씨들 뱃살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도 처음부터 잘 나간 것은 아니고 대략 한량 생활을 하다가 서른 넘긴 나이에 알렉산더 대왕 초상을 보고 저 양반은 젊어 세계를 정복했는데 내가 이리 살아야 하나 울컥 했다고 한다. 위기를 오히려 자극으로 삼아 나아가는 스피릿! 오늘날 대한민국 아저씨들이여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 아니겠나.


이 책을 보시면 좋을 분들

-'로마인 이야기'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당사자들이 직접 남긴 원전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분들.

-역사나 군사 분야 특히, 로마군단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중에서 범우사 새판본에 포함된 각주가 요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나이 들고 배도 나오고 회사에서 눈치 보이고 기타 등등 상태여서 나 죽지 않았다 불끈 하고 싶으신 분들.(주의, 책에는 불끈하는 내용은 없으나 한량이었던 카이사르가 이 시점부터 시작해서 황제가 되었다는 뜻에서...)

덧붙이는 글 | 월간 '플래툰'에도 송고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 '플래툰'에도 송고되었습니다.

갈리아전기 / 내전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박석일 옮김,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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