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자신의 강의 시간에 부모를 초대한 ○○대학 이모 교수. 부모들은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안윤학
"학창시절 말썽을 많이 피워 학교에 오신 적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는 내가 강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학교에 오셨다. 항상 아들을 믿어주신 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박수 부탁드린다. 여러분의 박수 친 횟수는 세어볼 것이다.(웃음)"
지난 4일 오후 서울 ○○대학. 30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평범한 강의실에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초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부모님 참관수업'이 진행된 것. 그렇다고 학부모가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이날 초대받은 부모는 교수가 된 아들이 강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대학 이아무개 교수(46·정치외교학)는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마련하고 싶었다. 73세인 아버지가 중풍에 척추수술까지 할 정도로 몸이 편찮으신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내가 하는 일을 보여드리자'는 소박하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 진심어린 어버이날 선물
이 교수는 이날 어머니(71)와 함께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직접 이끌고 강의실에 도착했다. 학생들에게 "내 부모님을 위해 친 박수 소리는 기억될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로 말문을 연 그는 이내 강의실 뒷편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부모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듯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더 열정적이고 진지했다. 이마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였다. 이씨는 강의을 마친 뒤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 이날 수업에 들인 남다른 정성을 밝혔다.
이 교수의 부모는 강의 내내 아들의 장한 모습에 입가의 맴도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버이날 선물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강의는 영어로 진행된다. 이날 주제는 미국 선거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우리가 배울 때보다 학생들 수준이 높고 태도 또한 진지하다, 예상밖으로 훌륭한 수업이었고 학생들이 잘 따라줘 고맙다"면서 강의를 본 소감을 밝혔다. 어머니도 "영어로 진행돼 수업내용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저 아들이 장할 뿐"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수업에 참석한 권석윤(25·학생)씨는 "요즘 부모님들은 자식들 취업문제를 적잖이 걱정하시는데, 이 교수처럼 내가 떳떳한 직장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대견해 할 것 같다"면서 "이번 강의가 이 교수 부모님께 감동적인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 이제야 실감"
○○대학 출신인 이 교수는 6년 반 동안 타 대학 시간 강사, 2년여 동안 모 대학 교수로 일하다 모교로 돌아와 처음 강의를 맡은 게 부모에게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까지 부모님께 많은 신세를 졌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내가 하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며 '부모님 참관수업'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씨의 학창시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학교로부터 '극단적인 처벌(?)'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그러나 그의 부모는 항상 "넌 잘 할 수 있어"라며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래저래 시간을 허비하다 가족의 힘으로 제자리를 찾게 됐다"면서 "여기까지 해온 게 모두 부모님 덕분"이라며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도 애들 키우면서 부모 역할을 하다보니, 부모님이 내게 주신 사랑만큼 아이들에게 못준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내가 현재 자식들에게 해주는 것만큼 부모님께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 많이 찾아뵙지도 못하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이말이 40대 중반에 접어든 이제 와서야 실감난다고 했다. 그는 "이젠 부모님이 그저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밖에 바라는 게 없다"며 어버이날을 맞는 심경을 토로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