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동산에 사는 마술사 할아버지

일상 중 컴퓨터 하는 시간이 제일 좋다시는 할아버지

등록 2006.05.08 11:11수정 2015.11.02 15:1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무지개동산 전경

무지개동산 전경 ⓒ 박준규


전 날 내린 비로 하늘빛이 한결 투명해진 7일 아침, '어버이의 날'을 하루 앞두고 춘천에 위치해 있는 노인복지시설 무지개동산(www.rainbowhill.co.kr)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10개월 전에 한 인터넷 봉사카페(cafe.daum.net/ccddase)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곳입니다. 매월 찾아가는 곳이지만 이날은 의미가 달랐습니다.

 

무지개동산은 '1986년 창립되어 지금까지 불우한 노인과 노인질환 환자, 장애노인, 치매노인 등 어려움에 처한 노인들을 수용해 가족처럼 돌봐주는, 총 49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노인복지시설'입니다

 

이곳은 2층 건물로, 1층은 치매 및 일반 노인질환 환자, 장애노인이 생활하시고 2층에서는 중환자 노인분들을 수용하고 돌봐주는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무지개동산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설 뒤쪽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 중인데 완공되면 보다 많은 분들을 모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분은 무지개동산에서 생활하고 계신 장용환(65) 할아버지. 장할아버지는 한 '봉사카페'에서 회원으로 활동하실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며 긍정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이십니다. 카페 대화명으로는 '동산마술사'를 사용하고 계신 분이죠.

 

장할아버지는 '동산마술사'란 대화명을 "내가 (무지개)동산에 살고 있고 워낙 마술을 좋아하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어설프지만 연습해 놓은 내 마술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 나도 즐거워져서 이 대화명을 사용하게 됐네"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해서 이하 '동산마술사님'으로 쓰겠습니다).

 

남은 여생 홀로 살아도 후회 없어

 

동산마술사님은 11세 때 배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장애를 입으셨다고 합니다. 그 후 학교는 일반인 학교를 모두 졸업하고 춘천 '옥광산'이란 곳에서 옥을 가공하는 사업을 하셨습니다. 결혼생활은 순탄했지만, 사업이 어려워지고 아내가 아기를 낳다가 돌아가신 후 아이마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군요. 그러자 모든 일에 의욕을 읽고 방황을 하다, 2003년에 '무지개동산'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친인척으로는 출가한 여동생이 있으나, 동산마술사님은 여동생이 무지개동산으로 찾아오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구체적인 답변은 더 안 해도 되지?"라며 털털한 웃음을 보이셔서 더 자세한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동산마술사님은 덧붙여 "이곳(무지개동산)에서 남은 여생 혼자 편히 있다 가기로 생각하고 있네"라며 다시 환한 웃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컴퓨터 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

 

일반(시설생활) 노인분들의 생활공간보다 더욱 복잡해 보이는 동산마술사님의 침대엔 각종 서적이며 마술에 사용됐을 법한 잡동사니들이 침대 가득 흩어져 있습니다. 분명 정돈하신다고 해 놓으신 것 같은데 정돈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는지? 동산마술사님이 아침예배를 보러 가셨을 때 촬영한 것이라 이유를 묻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동산마술사님은 연세에 비해 컴퓨터 실력이 대단하셨습니다. 카페며 블로그, 무지개동산 홈페이지 관리까지 하실 정도로 컴퓨터와 인터넷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셔서 지식도 풍부한 분이셨습니다. "일상에서 컴퓨터 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라고 하실 정도로 신세대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같은 방에서 생활하시는 안모(65·남) 할아버지께 이런 동산마술사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봤더니 "응, 컴퓨터 아주 잘하지. 아는 것도 참 많은 양반이고, 뭐든 다 잘해"라고 하시며 조금은 부러운 듯한 눈빛이셨습니다.

 

서로 위하며 사는 게 인생

 

무지개동산은 카페 회원들뿐만 아니라 학교며 사회봉사 단체 등에서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가는 곳입니다. 동산마술사님께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주시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면 고맙지. 서로 위하며 사는 게 인생인데 봉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도 꼭 움츠릴 필요는 없는 거야. 당당히는 아니겠지만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그들과 마음 열고 같이 하면 더 좋은 거 아니겠나? 나는 사람들이 오는 게 좋아. 그래서 다녀간 사람들 명단을 적어 놓는 습관도 생겼다네."

 

시설 문제점은 잠시 딴 나라 얘기

 

생활하시며 시설(무지개동산)에서 겪은 불편한 점이나 문제점, 개선점, 인권문제는 없는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불편한 점은 특별히 없다고 하시더군요. 동산마술사님은 "관내 시설들 중 또는 나아가 전국 관련 시설들과 견주어도 무지개동산 시설문제는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밝히셨습니다.

 

그 다음,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질문에도 비슷한 답을 주셨습니다. "어느 시설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자잘한 문제점이야 있겠지만 그 정도의 사소한 문제점 없이 어찌 살겠는가? 또 문제점을 이해하는 지금으로서는 개선점도 말하기도 좀 이른 감이 있지 않을까 싶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권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밝게 웃으시며 이렇게 답해 주셨습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이곳은 시설이나 문제점·개선점에 있어 큰 불만이 없지. 그 말은 인권문제에서도 불만이 없기에 나온 말 아니겠는가?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네.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어느 노인에게 식사하셨냐고 인사치례로 물었는데 그 노인이 배고프다고 밥도 잘 안 준다고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대답을 했던 노인은 치매노인이어서 금방 식사를 하고도 밥 달라는 분이었지. 그걸 모르던 봉사자는 이 시설에서는 밥도 제때 안 주는 거 아니야? 라고 인권문제까지 운운할 수 있지 않았겠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 없다네. 특히 원장이 목사님이라 폭력이나 인권유린 같은 것에 정말 반대하는 분이라 이곳은 정말 나이 들고 병들었을 때 와 있어도 괜찮을 곳이라고 추천할 정도일세."

 

오늘 무지개동산에서 생활하시는 동산마술사님을 취재하면서 느낌 점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는 자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환경이 비록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책임자의 지혜와 배려, 그를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낀 하루였습니다.

 

2006.05.08 11:11ⓒ 2015 OhmyNews
#무지개동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날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