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오늘을 보기 힘들 거라구요?"

거짓이 된 의사의 말... 그리고 동생의 두번째 생일

등록 2006.05.09 11:39수정 2006.05.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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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5일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갔습니다. 뒤 돌아볼 새도 없이 흘러간 지난 일 년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빨리 흘러간 시간이 고맙습니다.


2006년 4월 25일, 동생이 수술을 한 날로부터 일 년이 지났습니다. 2005년 4월 25일, 가슴 졸이며 보냈던 그 날이, 충격 속에서 한없이 무너져 내렸던 그 날이, 딱 일 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일 년 전 그 날은 동생의 수술날이었고, 일 년 후 그 날은 마침 동생의 검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골밀도 검사를 마치고, 의사 선생님을 뵙기 전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오늘이 너 수술한 지 딱 일 년째 되는 날이라고 한 번 말씀드려봐”라고.

동생은 몰랐지만, 아니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일 년 전 그날 의사선생님께선 동생이 2006년 4월 25일을 보기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더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였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오늘이 수술한 지 일 년 되는 날이라고 말씀드려보라고 했던 이유말입니다.

그 말의 뒷면에는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 일 년을 가득 채우고도 제 동생은 이렇게 두 발로 걸어 병원 검진을 왔습니다’라는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내과 치료는 왜 받죠?”라고 말씀하시는 의사선생님께서 일 년 전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이제 몇 개월에 한 번씩 만나는, 차트로만 병명을 알 수 있는 환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일 년 전 동생의 상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신들 뭐 대수겠습니까? 일 년 전 의사선생님의 말씀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닌 걸요. 진실은 동생이 더 이상 가발을 쓰지도 않으며, 벌써 두 달 전에 미장원에 가서 짧은 머리지만 퍼머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3월4일 태국여행을 나서는 동생
지난 3월4일 태국여행을 나서는 동생이갑순
진실은, 동생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먼 미래를 계획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속상해 하기도 하지만, 일본어를 공부하고 언제나 여행을 꿈꿉니다. 올 가을엔 프랑스에 가겠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네요.


저는 압니다. 동생은 올 가을에 꼭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올 것입니다. 보호자란 명목으로 저까지 파리를 구경할지도 모르겠네요.

진실은 또 있습니다. 동생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는 참 큰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스스로 설 수 있다는 걸 뜻하니까요. 그리고 또 4월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떨치기 힘든 새벽 잠을 이겨내며 부지런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2005년 4월 25일의 진실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그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진실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감히 내 입으로 말할 수도 없는 그 말을 그날 의사선생님은 진실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의사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말한다는 걸 압니다. 그게 자신들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든, 보호자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은, 사람의 생명은 누군가가 그렇게 쉽게 그 끝을 예고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이 신비이듯, 생명이 사그라지는 것 역시 신비일 뿐입니다. 의사가 예고한 햇수를 다 채우고도 살아 있다 해서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건 그냥 생명 자체가 가지는 신비가 아닐까요.

동생은 4월 25일이 자신의 두 번 째 생일이라고 말합니다. 동생의 두 번째 생일을 몇 번까지 셀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어떤 유명한 의사라도, 점쟁이라도 말입니다. 다만, 그 날이 계속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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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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