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중딩'을 알아?

중학생들이 쓴 소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어린 영혼들이 내민 손을 맞잡다"

등록 2006.05.11 17:32수정 2006.05.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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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에 쓴 중학생 소설 모음.
국어 시간에 쓴 중학생 소설 모음.아침이슬
<로그인 하시겠습니까?>란 재미있는 제목과 함께 '국어시간에 중학생이 쓴 소설 모음'이란 부제가 우선 마음을 끌었다. 아이들이 쓴 글을 통하여 사춘기에 접어든 내 아이의 마음을 엿보고 싶었다.

아이는 다행히도 순조로워 보인다. 내 아이처럼 나 역시 내 부모에게는 무난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사춘기의 질곡이 얼마나 깊었으며 황량했던가!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책과 남다른 관심을 주시는 선생님이 있었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한다고 늘 핀잔 듣는 내 아이에게는 무엇이 있고 누가 있을까?


겉으로는 순조로워 보이지만 나에게 내보이지 못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읽게 된 책 <로그인 하시겠습니까?>에는 중학교 2학년생, 청소년들의 고민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생생하고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 마음, 그 속에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어떤 고민, 어떤 생각으로 한 번씩 흔들리는 걸까?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현태는 자칭 '전학의 달인'이다. 2학년 1학기 현재, 세 번째 학교인 이곳에 전학 온지 이제 겨우 3개월인데, 며칠 후면 다시 전학을 가야한다. 유능한 건축가인 아빠가 건물을 짓는 동안 혼자만 잠시 지방에 계시면 좋을 텐데, 새로운 계약을 할 때마다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하였다. 이런 아빠 엄마에게는 돈이 전부이지, 전학을 한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불안하게 적응해야하는지를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자칭 전학의 달인이라고 하지만 전학은 늘 낯설고 두렵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아이들이 버티고 있었고, 그 아이들의 벽을 뚫고 겨우 친해질 만하면 다시 전학을 가야 했다.

이런 현태에게 친구의 의미는 '함께 있을 때만 비로소 친구일 수 있는 것'이고 아무리 친하게 지냈어도 전학과 함께 잊고, 잊혀지고 마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친구들에게 며칠 후면 전학을 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 후면 잊혀질 자신이고, 전학을 가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현태는 마음이 자꾸 쓰리고 서글프다. (전학의 달인)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라 이윤하!" 윤하는 언제부턴가 천장에 대고 부모님에게 해야 할 인사를 하고, 대답까지 스스로 한다. 몇 년 전에 엄마 아빠가 이혼할 때 서로 윤하를 맡을 수 없다고 옥신각신하였는데, 윤하에게는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


윤하는 집에 오면 늘 혼자다. 엄마와 함께 살지만 언제나 늦은 밤에 피곤에 지쳐 돌아오는 엄마. 어느 날 학교로 찾아온 아버지와 어색하면서도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윤하는 집에 돌아와 9년 전 가족사진을 일으켜 세운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사진. 9년도 더 된 아주 오래된 가족사진. 사진 속에는 9년 전 내가 있고 엄마가 있다. 오늘 마지막에 보여 준 것과 똑같은 미소를 띤 아빠도 있다. 그때 여섯 살짜리 나는 아빠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좋아 보이잖아. 행복해 보이잖아.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시간이 흐른 걸까.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완전히 늦지는 않았어. 언젠가는 저 사진의 모습처럼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그게 언제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언제라도 괜찮다. 와주기만 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어)

현태도 윤하도 부모들 때문에 외롭게 고민을 한다. 그런데 이들 두 주인공만이 아닌 또 다른 아이들도 부모 때문에 외로워하고 있었다.

소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의 또 다른 주인공 서린도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적막과 외로움에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다. 교복도 벗지 않고 새벽까지 할 때도 있어 학교생활은 엉망이다. 이처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모두 다르지만, 아이들의 고민은 가족의 부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가족의 따뜻한 눈길을 원하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부재중인 부모를 철없이 원망하기보다는 부모의 사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편의 소설을 써낸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건강한 우리의 청소년들이라고 대견스러워했다면 내가 너무 단순한 걸까?

어린 영혼들이 내민 손을 맞잡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는 신월중학교 2학년생들이 국어시간에 쓴 소설 10편을 글쓰기 지도를 하는 이상대 선생님이 모아 엮었다.

책에 수록된 10편의 단편은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글을 쓴 아이의 사실적인 고민과 해결이 함께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청소년의 마음을 헤아려 쓴 것보다 훨씬 사실적이며 생생하다.

아이들의 글이라서 어른들이 쓴 소설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구성이 세련되지 못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글을 통하여 바라보는 세상이 어설프기도 하지만, 아이들만의 특성이 맑고 순수하여 오히려 장점으로 와 닿는다.

중학생들이 쓴 소설이어서 얼핏 어설픈 내용이려니 싶었다. 다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선뜻 읽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고민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의 중학교 2학년을 떠올려 볼만큼, 한 편 한 편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고민들이 생생하고 치열했다. 중학교 2학년 그때 나는 어떤 고민들을 했던가!

덕분에 아이들에게 한결 가까워진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내 스스로 세대차를 만들어 아이들을 멀찍이 두고 내 주관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하고 의지하면서 손을 내밀고 있는데, 나는 미처 맞잡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 힘든 사춘기의 질곡을 헤쳐 나온 아픔을 깡그리 잊고 스스로 세대차를 만들어 편견의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마음을 진솔하게 만났고 한 걸음 다가선 듯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어떻게 다가서야 할까?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아이들의 마음에 접속하는 코드로 입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 특별한' 이 소설의 의미는?
[미니인터뷰] 김경은 아침이슬 편집장

이 책을 처음에 읽으려고 했던 이유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내 아이가 이미 지난해 사춘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스스로 '청소년들이 쓴 소설이 오죽하겠어? 괜한 시간 낭비 아닌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내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의 뜻을 거스르고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스포츠로 짧게 자르면 땅글땅글 여믄 밤처럼 똑똑하고 야무져 보이건만, 아이는 마당쇠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기껏 한다는 말이 "그럼 월요일에 ㅇㅇ랑 가서 정리하지 뭐!"

그리고 약속한 월요일이 이미 지나버렸다. 아무리 이야기를 하여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도대체 왜 머리를 기르고 싶어할까? 그까짓 머리쯤 기른다고 아이가 망가지지도 않는데 그냥 둬?'

그러나 자꾸 거슬렸다. 아이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렇게 바짝 끌어당겨 읽은 책이었다. 내 아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치게 되었다. 사춘기 자녀들을 둔 다른 부모들에게도 이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만의 세계에 감탄하거나 당황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전혀 거르지 않고 책을 펴낸 출판사의 의도가 궁금했다. 이 책의 담당 편집자인 김경은씨와 지난 10일 전화를 통하여 짧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전에도 이처럼 청소년들이 쓴 소설만을 엮은 책이 나온 적이 있었나.
"청소년이 쓴 시집이나 소설이 더러 나오기도 했지만 <로그인을 하시겠습니까?>처럼 한 학교의 학생들이 쓴 소설을 엮은 것은 없었다. 이 책을 엮은 신월중학교 이상대 선생님은 교조활동을 하면서 해직되었고, 다시 복직하여 아이들 글쓰기 교육을 하고 있는 분이다. 뒤에 적으신 엮은이의 말을 읽으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그만큼 학생들의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읽어 보면 알겠지만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아픈 상처와 고민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엮은이 이상대 선생님의 계획에 의해서 탄생한 것인가.
"엮은이 이상대 선생님은, 수행평가로 '당신들이 중딩을 알아?'라는 주제로 아이들에게 소설을 쓰게 하려고 한다며 경우에 따라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우리로서도 관심을 둔 것은 사실이다. 원고와 함께 이 선생님은 아이들을 책이 나오는 과정에 어느 정도 참여하게 하였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써 낸 아이들에게 글 쓰는 즐거움은 물론 책의 출판과정까지 경험하게 하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이런 선생님의 뜻에 따라 아이들은 책이 출판되는 동안 출판사를 방문하여 필자로서 참여했고, 책이 나오자 우리 출판사에서는 다른 필자들에게 해오던 절차대로 아이들에게 하였다. 일선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을 내는 것까지 맛보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세심한 애정을 쏟아준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책이다. 이렇게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 처음에는 중학생이 쓴 소설이니까 작품성은 별로 일 것이라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읽으면서 아이들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표현과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에 많이 놀라면서도 사실 부적절해 보이는 단어들도 있던데?
"읽다보면 어이없고 황당한 표현도 자주 있다. 처음에 원고를 받아 들고 읽어보면서 한참 웃었다. 아이들만의 순수한 세계가 재미있고 독특했지만, 한편으론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대로 실을까, 교정을 볼까 고민도 했지만 아이들이 쓰는 그대로를 싣는 것이 어른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장이 많이 어긋난 표현, 받아들이기 힘든 욕만 빼거나 교정해서 거의 그대로 실었다."

- 어른들만큼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작품성도 있는데, 이런 책을 낸다고 하니까 주변의 다른 출판사는 어떤 반응이었나. 책이 나오고 난 후 주변의 반응은?
"우선은 돈이 되겠냐고 우려도 있었고, 청소년이 쓴 소설이라고 하니까 언론에서도 그다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있다. 사실 책을 읽어보면 아이들만의 표현에 감탄할 때가 많다. 아이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인데, 언론에서 그다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소중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점을 하나 찍어줄 수 있음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이상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아이들과의 출판 에피소드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기사에 다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이 책은 아이들의 고민 때문에 마음이 아리지만 무척 건강한 책이다.) / 김현자

덧붙이는 글 | <로그인 하시겠습니까?>-국어 시간에 쓴 중학생 소설 모음

-이상대 엮음/신월중학교 김학준 외 지음/아침이슬 2006.4/9000원

덧붙이는 글 <로그인 하시겠습니까?>-국어 시간에 쓴 중학생 소설 모음

-이상대 엮음/신월중학교 김학준 외 지음/아침이슬 2006.4/9000원

로그인하시겠습니까? - 국어시간에 쓴 중학생 소설 모음

이상대 엮음,
아침이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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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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