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요즘은 선생님을 보면 안 까부니?"

'낯설게 하기'의 화술

등록 2006.05.11 09:42수정 2006.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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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한 아이를 불러냈다. 두어 번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불려나온 그 아이를, 나는 야단치지 않고 곧바로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것이 이상했는지 아이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들어가. 들어가면서 반성하라고 나오게 한 거야."

내가 생각해도 싱겁기 짝이 없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가 휴대폰을 다시 만지작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업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왜 그랬을까? 좀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 모습이 아이에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때 내가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넌 어떻게 된 애가 수업시간에 늘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냐? 네 부모님이 보시면 얼마나 한심하겠니? 꼴도 보기 싫어. 들어가!"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런 말은 하나마나다. 수업시간에 자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라면 이런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터. 그러니 교사에게서 한 번 더 짜증 섞인 말을 들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학생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법, '낯설게 하기'

'낯설게 하기'란 문학용어가 있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들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려는 일종의 창작기법이다. 시인들은 어떤 대상을 좀 더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흔히 비유를 사용한다. '꽃 같은 여인'이 그 한 예이다. 여기서 꽃은 원관념인 여인을 묘사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관념, 즉 비유인 셈인데 그들은 이런 상투적이고 진부한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뻔하고 낯이 익어 시적 긴장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이지만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을 그냥 두지는 않는다. 물론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렇다고 "너를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었노라!"는 식의 진부한 사랑타령만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 '낯설게 하기'의 화술이 필요하다.

"요즘 민주하고 선생님하고 사이가 참 좋지? 그런데 누가 노력해서 우리 사이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거야? 민주야, 선생님이야?"
"선생님이오."
"그럼, 앞으로는 민주가 노력해 봐."
"알았어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뒤 얼마 안 되어 그 아이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나를 보자 반가운 기색도 없이 건성으로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왜 요즘은 선생님을 보면 안 까부니?"
"선생님이 까불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앞으로는 까불어."
"왜요?"
"넌 까불어야 예쁘거든. 대신, 수업시간에는 조금만 까불고. 알았지?"
"알았어요, 선생님!"
아이의 얼굴에서 금세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며칠 후면 1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난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연과 친하지 않고 삶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인데 물론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도 생각의 허를 찌르는 화술이 필요하다. 소풍 전날 아이들에게 해준 말이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지요? 언젠가 누가 야외수업을 한 번 하자고 한 것 같은데 내일은 하루 종일 야외수업을 합니다. 한 시간만 야외수업을 해도 좋은데 하루 종일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내일은 친구들과 온종일 잡담해도 좋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번 소풍의 목적은 자연과 친해지기입니다. 자연 속에서 행복하기 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소풍 끝나고 재미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여러분 책임입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 한마디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아이들을 향한 마음의 소리를 늘 새롭게 갈고 닦지 않으랴?

덧붙이는 글 | 경향신문 <교단일기>에 기고한 글을 조금 보탰습니다.

덧붙이는 글 경향신문 <교단일기>에 기고한 글을 조금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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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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