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금수산으로 다녀온 극기훈련

등록 2006.05.12 17:08수정 2006.05.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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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업무를 뒤로 미루고 금수산으로 극기훈련을 다녀왔다. 멀리 산 중턱으로 언듯언듯 보이는 연초록 잎새들이 상큼한 풍경을 자아내는 5월의 산하는 아름다웠다. 특히 멀리서 바라보는 청풍호와 잎새만큼이나 부드러운 바람은 일상의 시름을 덜고 새로운 생각으로 시작하리라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a 금수산 정산에서 바라본 모습 - 멀리 청풍호가 보입니다.

금수산 정산에서 바라본 모습 - 멀리 청풍호가 보입니다. ⓒ 김영래

충북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백운동 마을에서 산으로 향하면서 우리를 처음으로 맞은 것은 거대한 금수산의 계곡물이 모여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용담폭포다. 명경지수에 한기까지 서려 산행을 마치고 세족을 하면 피로가 말끔하게 다 풀리는 듯하다.


a 용담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 그 아래에 서면 온 몸이 어는 듯 합니다

용담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 그 아래에 서면 온 몸이 어는 듯 합니다 ⓒ 김영래

산 초입부터 새록새록 돋아나는 잎새들의 향기에 가슴이 초록으로 물들어 버리는 듯 했다. 계곡 주변으로 금낭화 군락지가 나타났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름다운 초롱같은 꽃망울이 바람에 투명한 소리를 낼 듯 수줍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a 계곡을 따라 수줍에 핀 금낭화 군락지가 펼쳐집니다.

계곡을 따라 수줍에 핀 금낭화 군락지가 펼쳐집니다. ⓒ 김영래

등산의 시작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평범했다. 산길이 평평하다는 것은 곧 시작될 등산이 가파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1천m가 넘는 산이 이렇게 쉽게 자신을 내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눈앞에 바짝 닥쳐온 만만치 않은 오르막이 한치의 쉼도 없이 몇 백m가 계속해서 다그쳐오는데 다리가 뻐근해져왔다. 이마에 쉼 없이 흐르는 땀방울이 극기훈련인 듯싶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한참을 오르고 숨이 턱까지 차 올 때쯤에서 쉼터가 나타났다. 배낭을 열어 물을 마시고, 땀을 훔치면서 올라오는 이에게 한마디씩 농을 던지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쉼터는 그야말로 잠깐이고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과 마지막 정상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암벽을 오르면서 어느 새 일상의 시름은 다 잊어 버렸다.

먼저 오른 이들이 먹는 김밥과 컵라면의 향기가 점심시간을 한 시간쯤 넘긴 등산의 허기를 더욱 부채질 했지만 정상에 서서 풍경을 내려다 봐야 허기가 먼저 채워질 듯했다. 늘 산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쉬운 산은 그 만큼의 높이만큼 세상을 보여주고 험하고 힘든 산은 또 그 만큼의 넓고 큰 세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산행만큼 공평한 일이 없는 듯하다.


많은 얼굴들이 함께 정상 표지석에 모여 사진을 찍는 맛이란 갈증에 마시는 물처럼 신나고 달콤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다.

a 힘든 산행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웃는 얼굴로 하나가 됩니다.

힘든 산행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웃는 얼굴로 하나가 됩니다. ⓒ 김영래

하산길은 오를 때 다져진 다리 근육이 풀리기가 무섭게 무릎이 아파왔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흩어져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걸음에 피곤이 좀 덜어지는 듯 평소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술술 풀어져 나오면서 웃음꽃이 핀다.


a 갈참나무 숲속의 고요함 처럼 일상의 시름은 다 지워졌습니다.

갈참나무 숲속의 고요함 처럼 일상의 시름은 다 지워졌습니다. ⓒ 김영래

마른 갈참나무 가지에서 연 잎이 돋아나는 숲속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엔 오를 때의 시름은 간곳이 없고 마치 고요한 물속처럼 몸이 깨끗해진다.

a 계곡의 물줄기는 소리가 더 시원하고 반갑습니다.

계곡의 물줄기는 소리가 더 시원하고 반갑습니다. ⓒ 김영래

한참을 내려오니 저 멀리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까지 깨끗하게 들리는 듯했다. 세상의 때를 하나도 담지 않아 감히 손을 담그면 물이 흐려질 듯한 곳에 살며시 손을 담그니 뼈 속까지 저려온다.

이 물이 흘러 아침에 보았던 용담폭포가 되고 청풍호가 될 것이다. 이마에 흐른 땀을 씻고 아픈 무릎을 쉬며 잠시 물가에 앉았다. 낙엽이 물가에 떨어져 있지만 더럽거나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기만하다. 그것이 인공이 하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 듯싶었다. 이끼는 그 찬물에서도 여전히 파랗고 싱싱하게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a 애기똥풀이 흐드러진 숲이 마을 어귀입니다.

애기똥풀이 흐드러진 숲이 마을 어귀입니다. ⓒ 김영래

마을 가까이로 내려갈수록 자연의 신비감은 덜해진다. 애기똥풀이 널려있는 마을 어귀 가까운 곳까지 하산해서 다시 올려다본 금수산은 정말 비단결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어느새 그 힘들었던 산행이 금새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낼 아침 책상에 앉으면 새로운 생각들이 연초록 잎새처럼 돋아나지 않을까. 그래서 미뤄뒀던 일들이 한 순간에 처리되고 새로운 일을 맞을 자리가 넉넉해지지 않을까. 일년에 한번 있는 극기훈련이지만 그 시간을 똑같은 일상을 지우고 새로운 생각으로 가득 채운다면 그것보다 더 값진 시간은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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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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