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위기는 마을의 위기

[시골마을 이야기] 마음이 쉬어가는 지리산 산속마을 영암촌

등록 2006.05.15 16:26수정 2006.05.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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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어가는 지리산 산속마을 영암촌
마음이 쉬어가는 지리산 산속마을 영암촌조태용
반달곰이 산다는 지리산 문수사 가는 길에 가다 보면 영암촌이라는 작은 산간 마을이 있다. 문수사를 가는 사람들이 어찌 저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하고 가끔씩 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백두대간은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거쳐 성삼재를 지나 만복대 정령치로 이어져 북으로 가고 노고단에서 섬진강 쪽으로 뻗은 줄기 중 왕시루봉 있고, 이 왕시루봉 밑에 영암촌이 있다.

영암촌이라는 이름은 동학혁명 때 영암사람이 관군을 눈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이 마을은 이제 100년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마을은 12가구가 살고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구례군 토지면 중대마을이다.

사람도 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람도 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조태용
영암촌은 가파른 절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통 산간 마을이라고 해도 완만한 산비탈에 마을이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마을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까지 큰 물난리나 산사태 한 번 없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주 소득원은 토종벌과 밤나무다. 하지만 다랭이논이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쌀은 충분하게 수확한다고 한다.

초가의 지붕은 갈대로 엮어 놓았는데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최근에 갈대를 엮어 올린 것으로 보였다.
초가의 지붕은 갈대로 엮어 놓았는데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최근에 갈대를 엮어 올린 것으로 보였다.조태용
마을에 아직도 초가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람이 직접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초가가 남아 있는 곳은 극히 보기 드물다. 아직까지 구례에서 초가를 본 적이 없다.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초가를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빈 초가에 들어가 봤다. 오래 전에 쓰다가 버린 풍로가 보였다. 풍로 옆에는 녹슨 호롱불도 있었다. 초가의 지붕은 갈대로 엮어 놓았는데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최근에 갈대를 엮어 올린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집을 버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초가 마당에는 벌통이 놓여 있었다. 이 초가는 사람은 살지 않고 벌만 살고 있었다.


올해 벼 농사를 준비했는지 이미 써레질까지 말끔하게 끝낸 공중 논이 보인다.
올해 벼 농사를 준비했는지 이미 써레질까지 말끔하게 끝낸 공중 논이 보인다.조태용
이 높은 산중에서 벼가 자란다

올해 벼농사를 준비했는지 이미 써레질까지 말끔하게 끝낸 공중 논이 보인다. 모판에는 가지런히 모가 자라고 있었다. 논에는 올챙이가 바글거렸다. 크게 봐줘도 50평도 되기 어려울 것 같은 작은 논이지만 이 마을에서는 제법 큰 논이다. 세계화, WTO, 한미 FTA 이런 것들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작은 논이다. 경제논리로는 이런 작은 논에 농사를 짓는 것은 돈도 안 되는 불필요한 노동으로 보일 것이다.


트랙터가 들어가서 한 번 지나기도 어려운 논이기 때문에 규모화도 기계화도 여기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땅이 작으니 경지정리도 하지 못한다. 2만달러 시대를 떠드는 나라에도 여전히 이런 작은 땅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세계화나 WTO, 한미 FTA에 대해 역행하며 살고 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몰아치는 지금 산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는 이들은 세계화의 게릴라라 할 수 있다.

"힘들지만 그래도 내 땅이고 농사지으면 농사는 잘 돼 여기는 물도 많아서 농사짓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 산사태도 물난리도 없다"고 마을 주민은 말한다.

영암촌에는 돌을 쌓아서 만든 이런 계단 논들이 많이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곳이 더 많다고 한다. 마을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1961년에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구례 간전마을에서 살았는데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어서 가족 전체가 이 마을에 들어와 간전에 있던 집과 땅을 팔아 이 동네에 땅을 샀다고 한다.

이 다랭이논에서 농사지어 아이들 모두 교육시키고 지금도 먹고 살고 있으니 이 땅이 고맙다고 한다.
이 다랭이논에서 농사지어 아이들 모두 교육시키고 지금도 먹고 살고 있으니 이 땅이 고맙다고 한다.조태용
모두 삿갓만한 작은 논이다. 땅이 작아 농사짓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이 땅에서 농사지어 아이들 모두 교육시키고 지금도 먹고 살고 있으니 이 땅이 고맙다고 한다. 올해도 여전히 벼를 심고 키울 것이라 한다.

이 마을에는 현재 12가구다. 마을은 모두 노인들뿐이라 이 마을을 유지하고 있을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한때 25가구가 살았다는 이 마을은 초등학교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폐교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에 신축 건물은 외지 사람들의 별장뿐이라고 한다.

농업의 위기는 마을의 위기

영암촌을 떠나면서 마을에 위기에 대해 생각해 봤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시골 마을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마을은 일정한 땅을 근거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공동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을 공유하는 터전이다. 영암촌엔 아이들이 없고, 청년이 없고, 중년이 없다. 단지 노년만이 존재한다. 마을의 문화는 이전되지 않고 단절되고 사라지고 있다.

콘크리트 다리 이전에 있었다던 밤나무 다리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여순 반란 사건 때 마을 회관에서 중 좌익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한 아재 이야기'와 그날 밤 토지 초등학교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이주시키고, 마을 전체를 불태우던 날 밤, 타는 마을의 연기를 보고 울던 서럽던 이야기도 사라질 것이다.

농업의 위기는 마을의 위기다. 토지와 농업을 근거로 살던 많은 마을들이 농업의 붕괴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이 산간 마을의 일상도 언뜻 보면 세계화, WTO, 한미 FTA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농민 중 누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농업의 미래가 어둡기에 마을엔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고 젊은 사람이 없기에 학교는 폐교 되었고 집은 비어가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이 이 산간 마을까지 텅 빈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거래가 세상을 바꿉니다. 참거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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