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생각은 꼭 가려서 접해야"

[인터뷰] 생명의 공존을 노래하는 가수 박창근씨

등록 2006.05.15 20:20수정 2006.05.15 20:20
0
원고료로 응원
a 가수 박창근씨

가수 박창근씨 ⓒ 김재호

앨버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피타고라스, 찰스 다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헷갈린다면 슈바이처, 마틴 루터 킹,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지 버나드 쇼, 스콧 니어링까지 합해서 공통점을 생각해 보자. 아직까지 모르겠다면 예수, 부처, 공자, 맹자, 노자, 장자, 간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애덤 스미스, 볼테르, 타고르, 에머슨, 소로우, 톨스토이를 떠올려 보자. 맞다. 이들은 모두 유명하다는 공통점과 함께 채식주의자였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요즘에는 채식이 웰빙의 바람을 타고 자신만의 건강을 위해서 행해지고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렇지 않다. 피터 싱어는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채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들은 생명에 대한 공존을 위해서 육식을 금한다. 제레미 리프킨 같은 경우는 지구 환경의 위험을 고발하며 육식의 종말을 권고한다.

생명존중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노래로 표현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가수가 있다. 바로 가수 박창근씨. 대구에서 오랫동안 거리의 공연을 통해 결식아동을 도와온 그는 "오늘도 그대는 남의 살을 몇 점이나 삼키셨나요?"라며 육식에 대해서 질타한다. 또한 "이 세상에 군대와 사람들의 재앙이 왜 있는지 알고 싶거든 깊은 밤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가여운 비명소리에 귀 기울여 보게"라며 중국고대문헌을 인용해 노래한다. 참 독특하다.

가수 박창근씨는 작년에 이와 같이 생명 공존을 부르짖는 노래들을 담은 두 번째 앨범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작년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회가 선정한 상반기 명반 13개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선정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는 "노래가 한 사람의 가장 진지한 사색의 결과이며 사회에 던지는 발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음반"이라면서 "삶의 진정성과 음악적 진정성이 함께 묻어난다"고 박창근씨의 2집을 평가했다.

박창근씨는 앨범 에필로그에서 "음식과 생각은 꼭 가려서 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로운 것에 노출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공존 자체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9년 'Anti Mythos'라는 제목으로 첫 독집음반을 내놓았고, 2002년 밴드 '가객'을 결성해 <아야(我也)>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선보인 적이 있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이 있던 박창근씨를 지난 9일 방송국 로비에서 만나 채식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봤다.


- 최근의 근황은?
"요즘엔 움켜잡고 있는 것을 놓는 연습을 합니다. 음악이란 것을 잘 모르면서도 늘 함께하게 되더라고요. 놀면서도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도 고민하죠. 그래서 늘 쫓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젠 놔 주려고 해요.

요가나 헬스도 합니다. 재미있어요. 그리고 종교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만화로 된 이슬람경전 <꾸란>과 법륜스님의 <금강경읽기> 등. 직업이 가수이다 보니 가끔씩 먼 거리를 여행 삼아 떠나는 공연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 9년 동안 진행해온 거리공연을 중단한 이유는?
"공연을 해오던 동대구역 광장의 공간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노숙자분들과 마찰도 있었습니다. 경찰도 어찌해주지 못하더라고요. 아마 다음번엔 대구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시작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 채식을 하게 된 계기는?
"아내가 어느 날 존 로빈스의 책을 가져왔어요. 원제가 <새로운 미국을 위한 식생활>이었어요. 쉽고 명쾌하게 쓰인 그 책을 보면서 많이 울고 웃고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쓴 책이란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 책을 보면서 본래의 자신을 좀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됐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아버지와 함께 복날에 개 한 마리를 잡아 쓰레기장 옆의 나무에 매달아 놓고 주둥이에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씌우고 마구 몽둥이로 패는 거예요. 동생과 저는 너무 불쌍해서 울었지만, '사내자식이 이런 걸로 감정이 약해지면 사회생활 못한다'며 억지로 그 놈을 끓여낸 국물을 먹게 했어요. 잘려진 주둥이가 입에 씌웠던 컵과 함께 옆 쓰레기더미에 버려져 있었는데, 저는 아직도 그 장면을 못 잊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모처럼 횟집에 가서도 저는 도저히 '야! 그 놈 참 싱싱하다!'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스스로의 몸이 난도질 당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놓지 못해 헐떡이는 광어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 "

- 채식을 하게 되면 무엇이 좋은가? 직접 채식을 하면서 몸의 변화를 느끼나?
"채식은 자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종(種)을 먹이로 삼는 기초적인 식습관입니다. 가장 지능이 높은 인간이 가장 밑바닥의 먹이사슬인 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요.

소나 돼지가 도살장에서 죽임을 당할 때 웃으면서 죽는 놈 있습니까? 눈을 부릅뜨고 발버둥치게 되지요. 한마디로 죽기 싫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죽인 동물을 먹는 게 과연 몸에 이로울까요? 동물은 영혼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 하는 요동치는 생선의 기가 먹는 사람 몸에 들어가 그 사람을 해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식사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조금이라도 덜 헤쳐서 덜 기분 나쁜 식사재료를 찾는 것이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기쁨이랄까요? 참고로 저는 항상 자고 일어나면 뻐근하던 뒤통수 통증이나 나른함, 무기력함들이 없어졌어요. 이게 채식 때문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고 봐요."

- 노래 가사를 보면, 인간의 폭력성이 육식에서 비롯한다고 하는데 그 근거나 이유는?
"제가 백날 떠드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네요. 그래서 몇 가지 책을 추천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존 로빈스의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음식혁명> 그리고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스콧니어링과 헬렌니어링의 책들을 보세요.

<육식의 종말>에서는 육식의 근원이었던 소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해 줍니다. 캐피탈(Capital) 즉 자본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케틀(Cattle, 소)이었듯이 육식문화가 어떻게 남성중심사상, 식민지화 개척사상 그리고 자본주의 중심사상에 영향을 주고 발전해 왔는지를 정말 명쾌하게 해석했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고 전문적인 이해를 요하는 부분이 많아 저는 아직도 아끼듯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읽고 있답니다.

모든 것은 학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예전에 그저 배고프고 먹을 것 없던 시절에는 늙고 병들어 죽을 때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소를 잡을 경우에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기가 이제는 어떻게 잡히고 있나요? 좀더 자극적이고 좀더 쾌락적으로, 좀더 잔인하고 좀더 특별하게 도살되고 있습니다."

a 열창하는 가수 박창근

열창하는 가수 박창근 ⓒ 박창근

- 채식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노래에서는 도살이나 사육된 동물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데 자연사한 동물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도 동물입니다. 배고프면 참지 못하고, 생명에 위험을 느낄 때에는 심지어 같은 사람을 잡아먹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공부하는 자식을 위해 집에서 길러온 닭 한 마리를 잡더라도 닭에게 미안해하며 '저 세상에 가서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큰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육식문화는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전 세계 음식문화를 주도 하고 있는 미국의 육식기업의 형태는 이미 미국 내에서도 많은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제 그러한 문화를 우리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돼지나 소이지만 풀을 뜯으며 한가로이 노니는 단 하루의 삶도 제공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장에 가둬지고 연한 살코기를 위해 평생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닭의 머리는 사실 '닭대가리'라고 놀림 받을 지능이 아닙니다. 상당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동물들을 수천 마리씩 좁은 우리에 가둬놓으니 그 괴로움에 못 이겨 모조리 미쳐서 서로 물고 뜯고 난리도 아닙니다. 분명 동물들은 우리와 같은 존재로서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하고 슬퍼합니다. 또한 기쁨을 느낄 줄도 압니다. 그들을 그렇게 학대하며 인간들이 인권을 과연 말할 수 있을까요?"

- 일상생활에서 채식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채식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엇부터 실천하면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가려먹는 것은 거의 철창 안의 양심수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사치'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유기농 매장을 이용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이겨나가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채식주의를 선택했느냐는 겁니다. 이에 따라 채식을 계속할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단지 채식이 몸에 좋아서, 또한 살 안 찌고 건강해지기 때문만이라면 오래가지 못하겠지요."

- 작은 텃밭을 가꾼다고 들었는데, 직접 생명을 가꾸면서 무엇을 느끼나?
"가끔 사람들에게 육식이 살생이면 채식도 살생 아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땅을 일구는 일을 흉내 정도 내보았지만 그 경험을 하면서 자연에서 얻어지는 식물들의 엄청난 가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어차피 먹어야 산다면 다시 땅을 살리고 일구고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동참하면서 먹고사는 것이 더 생산적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잘만 키워서 먹으면 이 식물들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시키고 더 많은 먹을거리를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피 눈물 흘리며 죽이지 말라고 통곡하는 동물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지요."

- 거리의 가수, 민중가수, 생명을 노래하는 가수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자신은 스스로 어떠한 가수라고 생각하나?
"봄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는 느낌입니다. 매연 풀풀 날리며 차를 몰고 공연하러 가면 생명과 환경을 노래하는 가수 박창근이라고 소개하고, 아무 생각 없이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다가 달려간 곳에서는 노동가수, 민중가수 박창근이라고 소개합니다.

저는 '반성하고 있는 가수 박창근'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제가 먼저 반성하고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죠. 이런 모습을 진솔하게 음악으로 하나씩 표현하고 싶어요. 육식문화 반대에 관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도 크게보면 더 넓은 가치와 다양한 내용을 지향하는 대중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육식의 종말을 노래하는 <이런 생각 한 번 어때요?> 같은 경우 채식가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반응이 좋습니다. 마음을 열고 들어주시기 때문이지요."

- 3집은 언제쯤 만날 수 있나? 3집은 어떤 내용으로 구상하고 있나?
"직접 2집을 만들었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좋은 벗을 만날 수 있다면 또 한 번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겁니다. 동반자를 구하려는데, 어디 착하고 채식을 하면서 기타 잘 치는 분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써놓은 노래는 많은데, 옷을 입혀 내는 작업에서는 늘 신중해집니다. 그래도 3집이 언젠가는 나올 겁니다. 주제는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이 사랑과 사람 그리고 생명 존재에 관한 것이 될 거예요. 그 가운데 제 '언어'를 찾는 게 관건입니다."

-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었다. 과학기술인들에게 한마디?
"산업화, 기술화가 중요하지만, 1차 산업의 뿌리를 튼튼히 하지 않은 채 그 위에 세워진 공장은 인류에게 결국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진보하는 과학적 사고에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환경에 대한 소중함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더딘 발전이 이루어지더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학발전을 이루어주십시오. 참고로 저는 차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매연 없이 움직이는 차를 싼 값에 살 수 있도록 얼른 보편화 시켜주세요! 감사합니다."

가수 박창근 씨는 노래를 무척이나 잘 부른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여자가 부른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목소리가 미성이다. 아울러 앨범의 전곡을 작곡하고 노랫말도 거의 스스로 지을 만큼 실력도 좋다. 앨범 프로듀싱도 스스로 했다. 그의 노래는 http://www.artmusician.com 에서 들을 수 있고, 앨범을 구입할 수도 있다. 한편, 박창근 씨의 EBS 공연 실황은 편집 작업을 거쳐 6월 초 안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인간 자신이 도살당한 동물의 무덤인데 어떻게 지구상에 이상적인 사회가 건설될 것인가? 나는 동물들의 친구다. 나는 나의 친구를 잡아먹지 않는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3. 3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4. 4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