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남편.한명라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저의 디지털카메라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카메라를 잃어버리거나 고장이 날지 모르니까 안 된다고 거절을 했더니, 아들이 남편에게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때 아들과 카메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불현듯 떠올랐던 여러 생각을 편지로 쓴 듯합니다.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아무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간, 한편으로는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남편의 편지였지만, 저는 그 편지 속에 숨어 있는 아들에 대한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소리없이 보여주는 크고 작은 관심에 감탄을 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5남 7녀, 열두 남매를 낳으신 엄마께서는 그 자식들 배곯지 않게 키우시고 남부럽지않게 가르치는 일에만 신경을 쓰시느라, 많은 자식들에게 일일히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니 하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형제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자랐습니다. 행여 길을 걷다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엄마가 아시고 걱정하실까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면서 자립심이 강한 아이들로 자랐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남편은 2녀 2남의 막내로 태어나서 시부모님의 자상하고 세심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라왔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지 않겠습니까만, 3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남달랐습니다.
오죽하면 두 아들인 시숙과 제 남편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감히 수영을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렇게 자랄 정도로 시어머님의 사랑은 깊고 애틋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몸에 아주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손수 된장이나 약을 발라 주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