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방조제와 연결된 오솔길에서 본 신시도 포구김준
아름다운 포구 깊은금
신시도는 선유도의 군산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고군산군도의 24개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라 초기로 섬 주변 바다에 많은 청어를 잡기 위해 김씨 일가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전한다. 신라시대 때는 문창현(文昌縣)의 심리(深里)·신치(新峙)라 불렀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신시도라 했다. 이곳은 신라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과 한일합방 시기 유학자 간제 전우 선생이 머무르면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던 곳이다.
선유도 망주봉이 마주보이는 선착장 던져놓듯 일행을 내려놓은 여객선은 뭐가 급한지 바쁘게 선유도로 내뺀다. 선착장에서 신시도로 들어가는 길은 10여분 거리, 길가에 두 채의 멸막(멸치를 삶고 건조하는 작업장)이 철을 기다리고 있다. 선유도도 그렇지만 신시도에도 낭장망을 이용해 멸치와 까나리를 잡는 어민이 두어 집 있다. 낭장망은 조류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꽤 오래된 어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멸치를 잡기 위해서는 조류의 흐름이 좋아야 함은 물론 갓고기들이 많아야 한다. 30여 년 전에는 육지의 어촌마을에서도 많이 이용하던 어법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섬에 들어오거나 사람의 손이 덜 탄 어촌에 가야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작은 고개를 넘자 아늑한 선유도 포구와 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배를 타고 들어올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한눈에 아름다운 어촌이라는 느낌이다. 신시도 선착장은 '깊은 금' 안에 들어 있는 자연포구다. 산을 양쪽에 안고 깊게 만입된 곳에 아늑하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선착장 밑에는 신시도 이장 박병근(49)씨 부부가 흘린그물(자망)을 이용해 잡아온 생선들을 따고 있다. 숭어, 도다리, 서대, 게, 바다가재 등 지금 나오는 고기들을 전시하듯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특별한 사연이 있다. 10여 년 전 교회 봉사차 필리핀에 갔다 그 마을 시의원 집안의 일곱째 딸 아르세니아(36)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그 후 박씨의 열정적인 구애는 신부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르세니아를 신시도로 데리고 오는데 성공했다. 신시도로 시집온 아르세니아는 민박, 고기잡이, 남편의 이장일 등 생활에 적응을 넘어, 초등학교 학생들의 영어선생님으로 변신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이 모 방송국 <인간극장>에 소개되면서 한동안 이곳저곳의 인터뷰와 출연요청에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던 이장 부부의 손놀림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