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속도를 맹신하는 발걸음 멈추게 하라

[서평] 장성익의 〈대한민국을 멈춰라〉를 읽고서

등록 2006.05.18 16:55수정 2006.05.1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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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환경과생명
"이 작은 땅덩어리를 놓고 국민의 상위 1%가 전 국토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위 10%의 국민들이 74%의 땅을 가지고 투기 놀음을 벌이고 있는 곳, 신용 불량자 수가 300만 명이 넘고, 단전·단수 가구 수가 100만에 이르고, 이른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빈곤층이 무려 700만 명에 달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는 장성익의 〈대한민국을 멈춰라〉(환경과 생명·2006)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어떤 현실 속에 처해 있는지, 그 현주소를 밝혀주고 있다.


갈수록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고, 부동산 투기도 극심해지고 있고, 일자리는 바늘구멍처럼 찾기 힘들고, 자녀들의 학원비는 태산처럼 치솟고 있다. 그런데도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 멋진 '땅덩어리 제품'만을 쏟아내는데 혈안이 돼 있다. 오로지 효율과 속도를 맹신으로 삼고 있는데도, 그 일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그것을 멈추게 하기는커녕 박수를 보내며 열광하고 있다.

집 안에 돈이 돌고, 나라 경제가 살아난다면 그만큼 옳든 그르든 따지지 않고 뭐든지 집어삼킬 듯한 모습이다. 먼 앞날을 염두에 두고 염려하고 고민하기보다는 코앞에 닥쳐있는 이익만을 보고서 큰 아가리를 벌리는 꼴이다. 자연 생태계와 환경오염 등의 공동선 같은 것은 큰 개발의 이익 앞에 한참이나 뒷전에 둘 뿐이다.

최근에 그러한 일들을 분명하게 지켜본 게 있다. 인간과 생명의 행복에 이바지한다는 과학기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했던 '황우석 사태'가 그것이다. 그는 마치 생명공학이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표몰이'를 했고, 국민들을 열광케 하는 '애국주의'를 선동했으며, 그것만 성공한다면 나라살림까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듯 '허황된 환상'까지 심어 줬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청계천 복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생태·역사·문화의 복원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반대로 생각하면 그것은 복원을 사칭한 또 다른 '개발'과 '파괴'일 뿐이다. 아무리 자연과 생태의 이미지를 덕지덕지 덧칠한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그것은 틀면 나오고 잠그면 멈출 수밖에 없는 '인위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성익은 그 두 가지 사건의 본질적인 닮은꼴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과정과 절차를 깔보고 속도와 효율에 매몰된 '결과지상주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고 비판적 성찰과 합리적인 의사 소통을 질식시키는 광란의 '집단 패거리주의', 국가와 민족의 거창한 깃발만 휘날리면 사족을 못쓰고 다른 모든 것은 그 깃발 아래서 숨을 죽여야 하는 저열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끝도 없이 돈과 물질의 바벨탑만을 쌓아 올리는 데 여념이 없는 파괴적이고도 야만적인 '경제 지상주의'가 청계천 복원과 황우석 사태의 본질적 배경을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급속한 산업화·근대화와 폭압적인 개발 독재 하의 고도 성장을 겪어온 우리 현대사 속에서 괴물처럼 자라난 독버섯들이 아닌가."(46쪽)

그런데 그런 일들은 과학기술과 개발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만능 신으로 간주하면 할수록 앞으로도 다른 형태로 멈춤 없이 연이어 일어날 것이 뻔하다. 그것들이 인간의 지고선이나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다는 돈과 명예를 부추기는 사회악과 곧잘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사회는 경제성장과 개발을 주축으로 한 근대화 사업에 매진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때문에 신음하게 된 병통도 작지 않았다. 이른바 자연환경의 무차별적인 파괴가 그것이요, 군사문화의 부정부패 창궐이 그것이요,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심화가 그것이요, 인간적 존엄성과 공동체적 가치의 훼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대형사고의 빈발 등이 그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암적인 고통을 가져다주는 그야말로 큰 사회악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과 이에 기초한 근본적인 거듭남 없이 낡아빠진 옛 방식 그대로만을 답습한다면, 우리사회는 그야말로 암적인 병폐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소득 2만 달러론'을 내세우며,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 폐기장 부지 선정,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사업, 경인운하 사업 등 시대착오적인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실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하면 우리사회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을지, 그는 두 가지 차원의 큰 틀로 그 대안으로 밝혀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은 '환경책'을 만드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성 상실과 생명 파괴가 난무하는 이 위태로운 시대에 사람다운 삶을 위한 고민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진지한 책을 만들자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다른 세상'을 향한 상상력과 희망, 새로운 삶의 감수성과 지혜, 그 대안적인 내일을 열기 위한 모색과 해법을 책에 담아내기를 바라고 있다.

또 다른 것으로는 새로운 대안 정치 가운데 하나인 '녹색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른바 새롭게 꽃필 생태주의와 사회적 책임, 풀뿌리 민주주의와 비폭력 등의 의미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정치를 일컫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가족을 공동체로 보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 생태계를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보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네트워크를 엮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심해야 할 것이 없는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자칫 환경운동과 환경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환경귀족'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때깔 나는' 자리만 찾아다닌다든가, 행사장 다니면서 축사하고 시상식하고 사진 찍고 악수 나누는 일에 몰두한다든가, 환경 운동의 커진 영향력과 높아진 지명도를 기업의 후원이나 정부의 예산 지원을 확보하는 데 사용한다든가, 현장의 풀뿌리 대중보다는 정치인·고위 관료·기업체 간부·기자 등 '힘깨나 쓰고 권력 깨나 있는 자들'을 상대하는 데 더 익숙해진다든가,…이른바 사회 지도층 명망가들과 어울려 '사교 클럽' 비슷한 것을 운영한다든가 따위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291쪽)

우리나라는 이미 자본과 시장의 독재 하에 물신주의와 이기주의가 범람하고 있다. 어떠한 멈춤도 없이 오로지 효율과 속도를 맹신으로 섬기고 있다. 자칫 그것들과 함께 사는 한 우리사회는 지리멸렬해질지도 모른다. 정말로 인간적·사회적·생태적 위기를 돌파할 '위대한 전환'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급격히 망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효율과 속도를 맹신으로 여기는 과학기술과 개발주의, 경제 지상주의와 같은 발걸음들을 멈추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을 인간의 머리꼭대기에 올라서게 할게 아니라 인간의 발 아래에 두고서 인간적·사회적·생태적인 통제를 받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 때에만 우리사회의 앞날이 밝고 건강하며, 진정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그 이정표를 바르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멈춰라 - 녹색의 이름으로, 녹색의 세상으로!, 생태환경비평 모음집

장성익 지음,
환경과생명,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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