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가 이상하게도 검치호 이야이 쪽으로 달려간 이유를 솟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도망치느라 순간적으로 던져버린 하얀 꽃다발을 다시 주워 모으기 위해서 수이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솟은 한동안 꽃을 줍는 수이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다가가 수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리가!
수이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솟의 손을 탁 쳐내어 버렸다. 솟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수이는 하얀 꽃 한 아름을 들고서는 솟을 흘겨보며 노란 꽃밭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솟은 수이가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주위를 휘휘 돌아보았다. 솟은 꽃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마침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수이가 찾아다니던 것과 같은 하얀 꽃이었다. 솟은 그것을 냉큼 꺾어서 손에 쥐었다.
솟은 수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만큼을 맴돌며 한편으로는 하얀 꽃을 찾아다녔다. 수이가 두 손 가득히 한 아름의 하얀 꽃을 손에 넣었을 때 솟은 겨우 서너 송이의 하얀 꽃을 손에 넣었을 뿐이었다. 솟이 수이의 모습을 곁눈으로 보느라 꽃을 모으는 데 완전히 신경을 쓸 수 없었던 탓이었다. 수이는 솟이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이를 무시하고서는 하얀 꽃을 안고 어디론가 향했다. 솟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그머니 수이의 뒤를 따라갔다.
해가 거의 넘어갈 때 까지 한참을 걸어가던 수이가 멈춰선 곳은 하얀 꽃이 잔뜩 모여 있는 작은 꽃밭이었다. 수이는 그곳에 놓여 있는 뾰족한 돌을 집어 돌을 후벼 파 뒤집고서는 하얀 꽃을 하나씩 정성스레 심었다. 수이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온 솟은 일부러 기척을 내어 수이의 주의를 끈 뒤 손에 쥔 꽃다발을 내밀었다. 수이는 꽃을 보더니 화를 내며 다시 꽃을 심는 데만 열중했다.
수이가 좋아하는 하얀 꽃을 가져왔는데도 냉대를 받은 솟은 슬쩍 화가 났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옮겨심기 위해 꽃 뿌리까지 정성껏 캐어온 수이의 하얀 꽃과는 달리 솟이 들고 있는 꽃은 줄기 가운데를 꺾어 가지고 온 것들이었다. 무안해진 솟은 한동안 수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꽃을 심고 있던 수이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 솟이 다른 곳으로 가는 모양새를 바라 본 후 다시 꽃을 심는데 열중했다.
잠시 후 솟은 끝이 넙적한 나무토막을 들고서 힘들게 땅을 파고 있는 수이에게로 왔다. 솟이 단단하게 마른 나무토막을 땅에 대고 힘을 주자 땅은 쉽게 파였다. 돌로 힘들게 땅을 파는 수이에게 주려고 구해온 것이었지만 수이는 슬쩍 웃음을 보이고서는 다시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아까의 신경질적인 태도와는 달리 누그러진 기미였다. 솟은 자신의 성의를 몰라주는 데에 조금은 낙담하며 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진 짐승가죽 사이로 무릎을 굽히고 있는 수이의 둔부가 솟의 눈에 조금씩 드러나 보였다. 슬그머니 엎드린 솟은 손에 든 나무토막으로 수이의 짐승 가죽을 들추었다. 깜짝 놀란 수이는 벌떡 일어서 화가 치밀어 오른 눈으로 솟을 내려다보았다. 솟은 자기가 안 그런 양 나무토막으로 땅을 두드리다가 이를 내밀었다. 나무토막을 받아든 수이는 이를 다른 쪽으로 던져 버린 후 계속 꽃을 심는데만 열중했다.
솟은 계속 수이를 지켜보다가 자신이 잘못 꺾은 꽃을 다시 들고 와서는 슬그머니 수이의 뒤로 갔다. 수이는 그런 솟이 신경 쓰였지만 애써 외면하다가 머리 쪽에 솟의 손가락이 슬쩍 닿자 다시 벌떡 일어섰다. 순간 솟은 수이의 손을 잡고 달음박질을 쳤고 수이는 소리를 지르며 솟의 손에 끌려갔다.
한참 뒤, 솟이 수이를 끌고 간 곳은 작은 동굴입구에 있는 맑은 샘물이었다. 솟은 그곳을 가리키며 수이의 얼굴을 보였다. 맑은 샘물에 머리에 하얀 꽃 한 송이가 꼽혀 있는 해맑은 수이의 모습이 비치었다. 어느 틈에 솟이 수이의 머리에 꽃을 꼽아둔 것이었다. 수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꽃이 샘물에 툭 떨어지며 맑게 비치던 풍경이 이지러졌다.
솟과 수이는 그렇게 첫 사랑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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