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2회

불행의 징조

등록 2006.05.22 17:02수정 2006.05.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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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은 서둘러 나뭇가지와 마른 이파리들을 모아 불을 피웠다. 곧 피 냄새를 맡은 짐승들이 모여들 것이고 몽둥이와 돌로는 그런 짐승들을 막아 싸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불이 있다면 얘기는 달랐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그 어떤 짐승도 막아낼 수 있었다.

-하늘의 불이 우리를 도와주셨다.


사냥꾼들은 미리 쪼개어 놓은 날카로운 돌로 영양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불에 슬쩍 그슬린 후 먹기 시작했다. 내장을 먹어 치우는 것은 썩기 쉬운 부위를 미리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그 어떤 부위보다도 연하고 맛난 부위를 먼저 먹을 수 있다는 사냥꾼들만의 특권이기도 했다.

사냥꾼들이 오래간만에 근사한 만찬을 즐기고 있을 무렵, 솟과 수이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밝은 빛과 굉음을 보고서는 놀라워했다.

-아름답다.

수이는 그것을 보고 뭇 동물들처럼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밝은 빛은 이내 사그라졌고 솟은 수이와는 달리 불안감을 느꼈다.

-저곳은 동료들이 사냥하는 방향이다.


솟의 속마음은 당장 달려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몸은 수이를 더듬고 있었다. 수이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 솟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올려놓았다. 수이는 큰 짐승을 잡겠노라며 사냥을 하겠다고 힘들게 돌아다니는 남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뭄이 계속되어 과실은 말라비틀어지고 먹을 만한 벌레마저도 흔치 않았지만 수이는 네발 달린 짐승들을 불에 그슬려 뜯어 먹는 것이 다른 인간들이 찬미하듯 특별한 별미라고 여기진 않았다.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약간의 마실 물과 통통한 과실하나만 있으면 수이에게 낙원이 따로 없었다.

수이는 솟에게 맛있는 과실이 있는 곳을 아느냐고 의사를 표현했다. 솟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곳을 알고 있다면 진작 가서 과실을 따 먹었을 터였다. 수이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솟의 손을 밀어내었다. 솟은 잠시 당혹스러워 하다가 벌떡 일어나 수이의 손을 잡았다.


-아직 안 가본 곳이 있어. 날이 밝으면 한번 가 보자.

수이는 솟에게 지금 당장 가보자고 했지만 솟은 그럴 수 없었다. 해가 떨어져 주위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기에 이때 돌아다니다가는 어떤 짐승에게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솟은 겨우 수이를 달랜 후에 동굴 입구에 마련한 마른 풀 자리에 수이를 먼저 누이고서는 자신도 옆에 누웠다. 언제나 그랬듯이 밤하늘에는 별빛이 흐드러지게 빛나고 있었고 하늘 한 가운데는 맑은 젖줄 같은 은하수가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매일 밤 보는 풍광이었지만 사랑을 나눈 이와 나란히 누워 보는 밤하늘은 솟과 수이에게 여느 때와는 달라보였다.

솟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고서는 밝게 빛나는 별들을 따라 선을 이어갔다. 수이는 솟의 손가락을 눈동자로 따라가 보았다. 그 선이 모두 이어지자 수이는 빙그레 웃었다.

-토끼

솟은 자신이 엉성한 선 잇기를 알아본 수이에게 감탄하면서 이번에는 방향을 바꾸어 다르게 선을 이어 보였다.

-나무,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

솟이 손가락으로 이은 모양새는 대충 나무의 모양새를 따라 이은 것이었지만 수이는 그 모양새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탐스러운 과일이 영글어 있는 나무를 연상한 것이었다. 솟은 팔을 내렸다가 다시 올려 아주 섬세한 손가락놀림으로 천천히 선을 이었다. 이번에는 선도 복잡했고 별 사이를 이어나가는 것이 더디고 오래 걸렸다. 수이는 솟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솟의 선 잇기가 채 끝나지 않았지만 수이는 눈이 슬슬 감기며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수이

솟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솟은 별사이를 이어 수이를 그리려 했던 것이었다. 솟은 잠든 수이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솟의 눈에는 끊임없이 수이의 얼굴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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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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