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공간 가로지르는 '식사의 풍경들'

[서평]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를 읽고

등록 2006.05.19 12:15수정 2006.05.1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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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신각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란 책은 식(食), 즉 먹는다는 것이 주제이다. 그러나 서가에 널려있는 그 흔한 미식에 대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미식을 향한 탐욕스런 욕망의 그늘을 조용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질타하고 있는 책이다. 너무나 뻔한 교훈조가 될 수도 있는 이 책이 호소력을 갖는 것은 저자의 '육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저자가 일년에 걸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러시아 등 십 수 개국을 직접 뛰어다니며 관찰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다양한 공간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의 먹는 행위를 관찰함으로써 삶과 사회와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참으로 신선하다.

저자는 음식을 통한 세계 여행을 통해 포식사회를 반성하면서 '기근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식문화가, 먹음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탐욕스러운 혀와 위를 채우기 위해 게걸스레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지구 저편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지구 환경 역시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살아보자고 먹고 있는데, 그 먹음의 체계가 생존의 토대를 붕괴시키고 있다 한다.

우리의 한 끼 식사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뿐만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 목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우리의 후세들의 굶주림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인간의 얼굴'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나지막한 호소는 절실하게 들려온다.

냉전 체제가 붕괴된 이후의 세계를 식의 현장을 통해 섬세하고 묘사하고, 그 의미를 성찰하는 저자의 작업은 지적 각성과 더불어 정서적 감동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해 왔던 식사의 풍경들을 비판적으로 회고하고 되새기게 해주었다.


[#풍경 ①] 우리들의 그 미각을 향한 탐욕스런 욕망 때문인지 서울 거리에도 다양한 국가의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서구의 음식점들도 많고, 일식와 중식 전문점도 널려 있다. 최근에는 태국이나 베트남, 터키, 인도 등의 음식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내가 여행했던 나라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을 서울에서 보게 되면 반갑기 그지없다. 세상 정말 좋아졌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음식점을 가면 뭔가 이상하다. '맛'이 다른 것이다. 보기에는 비슷한데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재료가 다르고, 요리 방법이 달라져서 그런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현지에서 그 음식을 먹을 때의 다양한 느낌들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살 겨운 풍경들과 현지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에 녹아있던 그 공간만의 특유한 분위기와 향기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음식은 그 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문화이자, 역사의 축적이며, 미적 감각을 구현한 예술이기도 하다. 풍부한 삶의 기억들과 풍성한 역사의 이야기들이 음식과 버무려서져 응축되고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 도시에서 향유하고 있는 다국적 음식은 그 모든 맥락들이 지워진 채 일회적 소비의 대상이 되고 만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인도의 탈리를 먹으면서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는 무관심하다. 또 한국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배타적-차별적 시선도 달라질 것이 없다. 한번은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와 유명한 베트남 레스토랑 체인점을 간 적이 있다. 그는 식당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에 꽤 당혹스러워 했다. '현지'의 '서민' 음식이 '서울'의 미각을 충족시키는 '고급' 음식으로 교묘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풍경 ②] 여행지에서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서울이라는 초현대적 도시 공간의 강박적 속도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음식일지언정 입 속 가득 고이는 우유의 진한 향기와 아삭거리는 야채와 과일의 싱싱함은 혀 끌을 오래오래 맴돌고는 한다.

'먹는다'라는 행위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가장 농밀한 수준의 교감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생산되는 산물들을 나의 몸으로 수용하고 소화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에로틱한 경험이 아닌가 라는 생각조차 들곤 한다. 자연물이 나의 밥통을 거쳐 피와 살이 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 여유로운 식사는 이 거대한 생물 시스템의 순환 메커니즘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이런 것을 포착할 수 있는, 혹은 감흥하고 교감할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을 속도가 지배하는 도시에서 경험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나 역시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끼니를 '해치우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찍 먹기, 혹은 급히 먹는 습관들과 패스트푸드의 인기는 그 자체로 인간들의 삶이 자연 환경과 얼마나 분리되고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현대의 음식 문화는 먹는 행위를 통한 자연과의 일체감을 철저하게 몰각시켜 버린 것이다.

[#풍경 ③] 우리는 함께 먹고, 음식을 나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공동체의 체험이고, 그래서 식당 혹은 식탁은 공존의 공간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각자가 너무나 바빠서 함께 식사할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또 같이 먹는다고 하더라도 공존하지 못한다. 분화되고,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공유하는 것 없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한 한국의 가정에서, 식사시간이 심심하지 않게 분쟁과 불화의 시간으로 변질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던 전통 시대의 식탁은 그야말로 화합의 공간이며, 연대와 계승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모와 자식들은 같은 음식을 떠먹으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입은 먹는 동시에 말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공유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식탁에서 입은 오로지 먹기만 할뿐이다. 개별화된 주체들이 어색하게 모여있는 현대 가족의 식탁의 풍경은 한국 사회의 20세기를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풍경 ④] 몇 해 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의 일이다. 기내에서 읽었던 한국의 모 신문에는 몸짱 열풍과 웰빙 신드롬, 오가닉 푸드의 인기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려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기분이었다. 배고픔으로 신음하는 공간에서 일부로 돈을 써가며 살을 빼는 공간으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먹거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차원의 요청이다. 내가 건넨 바나나를 허겁지겁 먹던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모습에, 한국인들이 버리고 있을 그 엄청난 양의 음식 쓰레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윤리적 파국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a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근처에 있는 평양 랭면 식당.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근처에 있는 평양 랭면 식당.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 이병한

앙코르와트 유적지 주변에 '평양랭면'이라는 식당이 있다. 북한에서 직접 관리하는 식당이다. 김일성 전 주석과 시아누크 전 대통령의 돈독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곳에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평양 출신 처녀들이 서빙을 하고 공연도 한다. 외모도 아름답다. 주로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은 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꽤 비싼 축에 드는 7달러 짜리 냉면을 먹고 노래와 공연을 즐긴다. 예쁜 북한 처녀들과 사진도 몇 장씩 찍어 가는 모습도 보였다.

'아름다운 평양 처녀들' 운운하는 큼직한 간판의 문구를 보면서, 또 전문적인 고등 교육을 받은 그녀들이 남한 아저씨들을 '오빠' 혹은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접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자존심 하나로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 온 북한은 그런 식으로 달러를 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위조 지폐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그 평양랭면 식당이 떠오른다. 물론 그 맛이 어땠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그들 네도 하루 빨리 '인간의 얼굴'을 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길 나지막이 바랄 뿐이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헴미 요 지음, 최성현 옮김,
삼신각,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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