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 겉그림.한길아트
그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인류에게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음악계의 거장이 있다. 볼품없고 화난 듯한 어두운 얼굴에 변덕스럽고 외골수적인 성격, 술주정뱅이 아버지라는 치명적인 암초, 가난과 질병, 끝내 완전히 상실해 버렸던 청력, 그리고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끝없는 의심으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다간 독일 남자.
굴곡 많았던 그의 인생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음악을 인류음악사에 뚜렷하게 새기고 간, 너무나 인간적인 독일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위대한' 음악가. 헝클어진 머리에 왠지 어둡고 우울한 인상을 주는 그의 초상화를 누구든지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베토벤에 관한 전기이다. 그의 인생은 가난과 질병, 신체적 장애와 소외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 일컬어지는 이성과의 사랑도 그에게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안 좋은 편이었으며, 그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결국 깊은 고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창조력에 관한 심리학의 권위자인 필리스 그리네이커가 주장했듯이, 천재적인 아이 혹은 잠재적 천재인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한 아이라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다른 점을 감지하여 고립되고, 그럼으로써 열등하다고 느끼는 아이이다."...
베토벤의 고립은 '성격' 탓만은 아니다
베토벤이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늘 고립된 상태에 있었던 것은 흔히 알려진 대로 그가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이든의 비난은 베토벤을 경악케 했다. 특히 제3번을 삼중주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지금도 최고로 즐겁고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하이든의 비평은 베토벤에게 나쁜 인상을 주었으며, 하이든이 자기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악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이든이 나중에 납득할 만하게 해명했는데도 베토벤은 그의 비난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그 비난을 하이든이 자기의 창조력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던 인물이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를 뛰어넘던 시점에서 발표한 작품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이상하고 파괴적인 것이었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대음악'이 주는 기괴한 느낌을 상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조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꿰뚫어보지 못했고, 그런 스승의 반응은 베토벤에게 분노와 열등감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만으로도 이미 동시대인들과의 갈등이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그의 고독의 원인이 있었다.
이 책의 매력은 저자가 베토벤이라는 인물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젖히고 그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그의 진정한 모습을 추적했다는 데에 있다. 저자는 현재 남아있는 여러 가지 증언집과 자료들, 베토벤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모두 뒤져가며 일일이 비교한 뒤 그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과학적이면서도 상상력 있는 자세로 접근한다. 그 결과 우리는 신화에서 빠져나온 인간 베토벤의 본모습과 만날 수 있다.
출세와 명예를 갈구했던 평범한 인간, 베토벤
나폴레옹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자 그에게 헌정하려던 교향곡을 찢어버렸다는 일화나 그가 후원자인 귀족들에게도 전혀 친절하지 않고 퉁명스럽고 괴팍했다는 일화 등은 모두 과장된 신화에 불과했다. 그는 나폴레옹이 순수한 혁명아가 아니라 권력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권력자임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그에게서 인정받기를, 그래서 베토벤 자신이 유럽의 유명한 음악가로 떠오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쪽에서는 반응이 전혀 없었고 베토벤은 몇 번씩 나폴레옹에게 호의를 표명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즉 베토벤은 스스로의 명성을 위해 나폴레옹에게 교향곡을 헌정하려 했던 것이지 나폴레옹을 이상적으로 높게 평가했다가 실망하여 헌정을 취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후원자인 귀족들에게 충분히 경의를 표했고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자신 스스로 귀족의 혈통임을(그것은 거짓이었다) 내세우고 다니기도 했다. 결국 그도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갈구했던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베토벤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고,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독자는 베토벤의 음악에 더욱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서게 된다.
작품은 결국 그 예술가의 인생의 반영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그의 일생을 접하고 나서 읽는 베토벤의 음악은 이전과는 또다른 색채를 가지고 다가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베토벤의 작품이 담긴 CD, 그리고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작품이 담긴 CD도 있으면 더욱 좋겠다. 기왕이면 운명이나 영웅교향곡처럼 어릴 때부터 흔히 들어온 작품이 좋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아무 생각 없이 흔하게 들어왔던 교향곡의 선율들이 그의 인생에 대한 상념과 섞여서 더욱 깊은 음색으로 다가올 것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1
메이너드 솔로몬 지음, 김병화 옮김,
한길아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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