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 여신은 흑인이었다!

[서평]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

등록 2006.05.20 17:18수정 2006.05.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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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식민지?'

<블랙 아테나> 겉그림.
<블랙 아테나> 겉그림.소나무
여기 황당한 주장이 있다. 그리스가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에 코웃음부터 치고 말 것이다. 신화가 가득 담긴 그리스는 서양을 넘어 세계인의 낭만이 머무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그곳이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블랙 아테나>에서 마틴 버낼은 그리스가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이 원래 이집트 여신인 '네이트 여신'이라며 '검은 아테나 여신'이어야 옳다고 말한다.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스의 고대 어휘에서는 이집트의 영향이 상당 부분 발견된다. 낯익은 이름 아이스킬로스의 극에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글에서도 이러한 내용은 발견되는데 그 수준이 놀랍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들이 그리스를 식민화했기에 그리스에 국가가 세워졌으며, 페니키아인들이 문자를 전해줌으로써 문화가 성립됐다고 고백한 것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블랙 아테나>에서 밝히는 자료들을 보면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작가들이나 역사가들이 식민지였다는 것을 기분이 상해서인지 삐딱하게 밝히더라도 결국엔 그 사실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에서 이집트를 왜곡·삭제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리스가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다면 왜 알려지지 않았는가? 마틴 버낼은 1820년대까지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 스스로 중세 르네상스가 이슬람의 영향이 있어 가능했듯이 그리스도 이집트와 페니키아가 있어 국가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음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18세기에 들어서며 유럽에서는 이집트에 대한 '적의'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유인즉 유럽에서 헬레니즘이 주목받기 때문이다. 헬레니즘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은 그리스다. 그런데 이집트가 존재한다면 그리스는 조연으로 밀리게 된다. 한창 자신만만하던 유럽이 이를 인정할 리가 없다. 그래서 유럽은 역사 속에서 이집트를 왜곡, 삭제하기 시작한다.


역사를 날조한다는 것이 상당히 황당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런 일은 무모할 정도로 빈번하게 시도됐다. 1984년 팔레스타인의 모든 사람이 최근에 이민 왔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담긴 조앤 피터스의 <먼 옛적부터>가 호평 속에 베스트셀러가 되며 역사를 날조하지 않았던가? 최근에도 이러할진대 그 시대에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작했는가? 뉴턴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집트 건립 연대를 끌어내렸다. 나라의 존재 시기를 바꿔버린 것이다!

더욱이 '나중 것이 더 낫다'는 '진보'라는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그리고 고전주의의 자리를 낭만주의가 꿰차고 또한 인종주의가 고조되면서 이집트에 대한 적의는 어느 때보다 불타오른다. 그 시절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낭만의 고향인 그리스를 흑인이 지배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했겠는가?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역사를 날조했다. 이집트를 '있는 그대로' 다루려는 학자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대세는 진보와 낭만주의, 그리고 인종주의가 결합한 '아리안모델'이었다. 결국엔 그것으로 유럽인 혹은 아리안 인종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블랙아테나>는 역사 바로 잡기 위한 '신호탄' 불과

그 사이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전해준 페니키아인들은 어떻게 됐는가? 그들의 처지 역시 이집트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20년대와 1930년대 페니키아인들에 대한 전설은 전무할 정도로 사라졌고 그리스어 이름과 단어가 셈어에서 기원했다는 주장 또한 완전히 부정된다. 동시에 그리스에 대한 페니키아인들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알파벳 또한 엉뚱한 방향으로 조작된다. 페니키아인들로부터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니라 중동에서 '가져왔다'는 식으로 날조된 것이다!

<블랙 아테나>는 세 번 놀라게 만든다. 주장 자체가 당연하게 여기던 패러다임을 전복시키는 '충격'적인 것이기에 놀라고, 수많은 자료가 그것을 뒷받침하기에 놀라며, 역사가 조작된 이유가 인종주의 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기에 놀라게 된다. 마틴 버낼이 폭로한 '집단범죄'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집트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수정 고대 모델이 19세기에 만들어진 '아리안 모델'을 대체하고 역사는 온건히, 그리고 건강하게 회복된다.

동시에 서양의 문명은 뿌리 채 흔들리게 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도 바꿔야 한다. 아테나 여신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것을 기점으로 믿고 있던 진리와 상식을 통째로 뒤집어야 한다. 인종주의 때문에 역사를 날조하는 만행까지 저지른 유럽인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을 반성하면서 말이다.

아직까지 마틴 버낼의 주장은 '진실'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논쟁중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역사를 조작했던 서양인들의 과거나 <블랙 아테나>에서 제시한 풍부하고도 논리적인 근거자료 등을 볼 때 손끝이 마틴 버낼에게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는 이제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제야 아리안모델의 계승자들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블랙아테나>는 계속해서, 그리고 추가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블랙 아테나>를 시작으로 그 현장에 동참해 보자. 다시 없을 역사계의 '빅뱅'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블랙 아테나 1 -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서양 고전 문명의 아프리카.아시아적 뿌리

마틴 버낼 지음, 오흥식 옮김,
소나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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