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피습 사건' 정치적 손익계산서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한나라당이 오버하면 안되는 이유

등록 2006.05.22 09:22수정 2006.05.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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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1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해 국회에서 긴급의총을 연뒤 국회 본청 계단에서 '정치테러규탄결의대회'를 가졌다.

21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해 국회에서 긴급의총을 연뒤 국회 본청 계단에서 '정치테러규탄결의대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대표가 부탁했다. 정치적으로 오버하지 말라고 했다. 한나라당을 향한 말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가속 기어를 넣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제1야당 대표의 생명을 노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정치테러"로 규정한 데 이어 여러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것들이다.

▲생활보호대상자인 지모 씨가 70만원대의 휴대전화를 구입한 점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발신번호가 26개인데 이중 두세 명과 집중적으로 통화한 점 ▲오세훈 후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유세 일정과 장소를 알아낸 점 등이다.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정치테러?

지씨가 사전에 유세일정과 장소를 파악한 뒤 문구용 칼을 구입한 점은 누가 보더라도 '계획적 테러'를 입증하는 정황이다. 이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조직적 테러' 부분이다. '조직'이 성립되려면 배후 또는 공모자가 나와야 한다. 한나라당은 그 근거로 휴대전화 구입비와 두세 명의 집중 통화자를 들고 있다. 하지만 너무 막연하다.

휴대전화를 '현찰 박치기'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다수가 휴대전화 통화료에 포함시켜 분할 납부한다. 생활보호대상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두세 명의 집중 통화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지씨에게도 사생활이 있는 한, 두세 명이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두세 명이 정치와 관련 있는 인물로 밝혀진 후에나 제기할 수 있는 의혹이다.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조직적 테러' 의혹의 근거는 약하다. 그래서 '정치 테러'라는 규정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이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인 건 분명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가진 테러'라고 보긴 이르다는 말이다.


정치적으로 최대 수혜 집단은 어디일까

a 20일 오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유세장에서 피습한 중년남성 2명이 조사받고 있는 서울 서대문경찰서앞에서 박근혜 대표 지지자들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일 오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유세장에서 피습한 중년남성 2명이 조사받고 있는 서울 서대문경찰서앞에서 박근혜 대표 지지자들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론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도록 하는 점이 있다. 왜 하필 박근혜 대표를 겨냥했는가 하는 점이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지씨는 1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는 진정을 관계기관에 여러 차례 냈지만 아무 대답이 없어 사회에 불만을 품고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여기서 의문점이 나온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으로) 풀려면 집권세력을 향하는 게 상례일텐데 왜 야당 대표를 겨냥했느냐는 점이다.

쉽게 떨칠 수 없는 의혹인 건 맞지만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지씨는 진정을 내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에도 여러 차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지씨의 '억울한' 옥살이의 개시 시점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다.

일각에서는 지씨의 범행현장에서 같이 붙잡힌 박모 씨가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인 점을 중시하고 있지만, 경찰 수사결과로는 전혀 별개의 인물이라고 한다.

이렇듯 의혹 제기의 근거와 반박의 근거가 모두 어렴풋한 정황에 기초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수사결과를 지켜보는 게 상례이고 상식이다. 목청을 돋우는 것은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늦지 않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 논조와 색깔을 떠나 모든 언론이 한결같이 내다보는 게 있다. 이번 사건으로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에 더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층 결집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부동층까지 한나라당에 쏠려 접전지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는 다른 정치 집단은 없다. 오히려 손실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 점은 한나라당의 '정치 테러' 주장을 되씹게 만드는 유력한 상황이자, '늦지 않다'고 충고하는 강력한 근거다.

한나라당이 지금 신경써야 할 점

한나라당이 지금 신경 써야 할 점은 두 개다. 하나는 박대표의 쾌유다. 이 점은 부연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다른 하나는 '정상 정치'에 대한 책임이다. 근거가 부족한 '정치 테러' 주장은 불필요한 의혹과 논란을 야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거판의 일탈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나타난다면 한국 정치에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 공정선거에 대한 불신이 일반화되면 선거는 갈등의 해소 창구가 아니라 정치 불안의 기폭제가 된다.

한나라당의 '정치 테러' 주장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였다면 이해 못할 바도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철저한 수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털끝만한 의혹'까지 제기한 것이라면 이제 지켜봐야 한다.

검찰과 경찰, 더 나아가 참여정부가 사건을 은폐·왜곡하기엔 국민의 관심도가 매우 크다. 지씨가 보호관찰대상자인데도 범행을 막지 못한 허점투성이 행정도 밝혀내지 않았는가? 한나라당은 국민의 '선구안'을 믿고 한 발 물러서서 '정치'를 살펴야 한다.

박 대표 피습 이후의 지방선거 판세에 한나라당이 동의한다면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자 몸조심' 차원을 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숙고할 상황도 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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