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차하는 고종.
조선 제26대 군주인 고종(高宗, 재위 1864~1907년)에 대한 종래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유약한 군주’였다.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아내인 명성황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에는 나라를 빼앗기고 만 무능한 군주로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종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1990년대 이후 상당 부분 탈색되고 있다. 고종을 유능한 군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정한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학자가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다. 고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거의 이 교수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고종에 대한 연구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 왔다.
역사문제연구소 발행 <역사비평> 1997년 여름호에 실린 ‘대한제국 100주년 좌담’에서 이태진 교수는 고종에 대한 종래의 이미지는 잘못 형성된 것이라면서, 그렇게 된 이유로 크게 2가지를 언급했다.
한 가지는 일본인들이 대한제국 강점(强占)을 합리화하기 위해 고종을 무능한 군주로 왜곡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우리 자신이 민족국가 멸망의 책임을 대한제국에 던지려는 의식이 강하게 발동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태진 교수 "고종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일제 식민사관 때문"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이태진 교수는 고종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이 교수가 형상화한 고종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19세기말 조선 근대화의 주체’라는 것이다.
이 교수에 의해 형성된 고종의 이미지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는 이러하다. ▲영·정조 시대의 민국 이념을 바탕으로 서구 정치사상을 수용한 인물 ▲대한제국 선포와 광무개혁 등으로 상징되듯이 19세기말의 근대화 개혁을 선도한 인물 ▲일제의 침략에 대항한 위대한 황제 등등.
이러한 이태진 교수의 학문적 노력은 일정 정도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자주적 역사관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나, 19세기말의 조선사회에서 자주적 근대화의 물줄기를 찾아내려 하는 것 등은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그와 동시에 이처럼 고종을 영웅시하는 학문적 접근에 대해서는 일정한 비판이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인 고종을 구국의 영웅으로 이미지화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무리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고종이 그렇게 잘했다면, 조선이 왜 멸망했겠는가?”라는 비판론을 개진하기도 한다.
고종은 특히 다음과 같은 2가지 측면에서 민족의 자주적 근대화를 저해한 인물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첫째, 고종은 내적 역량 강화보다 외교적 방법(소위 '이이제이')로 당대의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이러한 고종의 대외정책이 초래한 것은 갑신정변·청일전쟁·을미사변 등의 외환(外患)뿐이었다. 그는 황준헌(황쭌셴)의 <조선책략>을 역으로 응용하여 청나라·미국·러시아 등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로 인해 조선은 더욱 더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여 부국강병을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던 것이다. 본래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외세를 이용하는 방식은 강국이 아니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노선인 것이다.
고종, 갑오농민전쟁의 자주적 역량 짓밟아
둘째, 고종은 외세(일본군)의 힘을 빌려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전쟁)을 탄압함으로써 민중의 자주적 근대화 역량을 소멸시킨 인물이다. 당시 농민군의 파죽지세에서 알 수 있듯이 갑오농민군은 조선사회를 지배하는 데에 필요한 일정한 역량을 보유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주적 근대화의 역량을 일정 정도 보유하고 있음을 분명히 입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 내부의 역량을 무참하게 탄압한 인물이 바로 고종이었다. 그것도 외세의 힘을 빌려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외세의 힘을 빌려 내적 도전을 분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정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갑오농민전쟁 실패를 계기로 조선이 급속도로 쇠약해져서 결국에는 국권 상실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은, 이 농민전쟁을 잔혹하게 진압한 고종이 한국사의 자주적 발전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고종은 민족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외세의 힘을 빌리려 했고 또 민족 내부의 자체 역량을 무참하게 짓밟은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할 때에는 학문적으로 신중한 접근법이 구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한말의 한국사에서 자주적 근대화의 흐름을 파악해 내려면, 고종 같은 인물보다는 차라리 갑오농민전쟁의 주체들을 더욱 더 치밀하게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송고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