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 '협력'인가 '저항'인가?

[서평] 김재용의 <협력과 저항>을 읽고

등록 2006.05.23 10:43수정 2006.05.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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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시 작가들의 친일 문제는 한국 문학계의 오랜 과제 중 하나이다. 결코 새롭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김재용의 <협력과 저항>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친일문학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 당대의 현실 혹은 작가들의 내면 의식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일본'이란 무엇이었는가를 먼저 떠올려보자. 다른 어떤 문제보다 식민지-피식민지라는 양립된 정치적 틀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식민지 체제에 안주하거나 혹은 소박한 민족감정에 사로잡혀 친일을 행했던 인물들을 비판하기만 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협력과 저항> 겉표지
<협력과 저항> 겉표지소명출판
<협력과 저항>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일제 강점 말기의 우리 문학계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친일 협력이 외부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이뤄졌다는 전제 아래 논의를 진행한다.

친일협력을 둘러싼 두 가지 선택의 배경은 1938년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 장악과 근대 서구의 몰락이라는 것.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친일 작가들의 사례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분석의 첫 단계는 소박한 민족감정을 토대로 한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자는 것이다.

"친일문학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모색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적 연구의 문제점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다.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외재적으로 접근하지 않음으로써 식민주의와 이에 대한 협력의 내부를 드러내고 이를 통하여 앞으로 이처럼 억압적 논리가 더 이상 해방의 탈을 쓰고 행세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42쪽)

민족주의적 연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친일문학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모색한다. 내재적 비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실증적 태도' 때문이다. 친일 문학에 대한 이전의 저술들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그 원인으로 삼았다면 이 책에서는 그 직접적인 원인을 작가들의 자발성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저자는 친일 작가들의 자발성의 근원을 첨예했던 당대 현실에서 찾고 있다. 그 결과 당대의 현실을 현재의 시각이 아닌 당대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친일 작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양극화됐던 당대의 문학계에 대해, 특히 '절필과 침묵', '우회적 글쓰기', '최후의 선택으로서의 망명' 등으로 나눠진 저항 문학인들의 행보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외적인 조건에서 친일의 논리를 찾았던 기존 시각과 다르게 '내적 논리'에서 친일의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저자는 내적 논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민족주의적 입장이다. 해방 후 남한에서 잠복되어 있다가 4․19 이후 수면으로 부상한 민족주의적 친일문학 비판은 친일문학을 외부로부터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일제 말에 일본 제국주의가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여 작가들을 위협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타협한 것이 바로 친일문학이라는 것이다. 작가들은 '민족의 혼' 혹은 '민족의 얼'을 그 동안 가지고 있다가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폭력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굴복하였다고 묘사한다." (38쪽)

친일문학 비판 논리 중 가장 낡은 입장이 바로 민족주의적 입장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당대 작가들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인식은 '근대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저자가 김기림에 대해 논의하면서 "근대의 위기를 정확하게 읽어내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김기림의 이러한 태도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인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밝힌 대목도(208쪽) 바로 '근대'와 '민족주의'의 상관성을 지적한 부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근대사'를 다시 고찰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근대'는 서양의 '자생적 근대'나 일본의 '적극적 수용'의 근대와는 양상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자생적 근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거치며 근대화가 이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민족주의'와 '근대'의 상관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과연 근대 극복은 가능한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재용의 <협력과 저항>은 '협력'과 '저항'으로 양극화된 문학계를 비교적 세밀하게 구분해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저자의 논리가 오늘날 풍미하는 '탈식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우리 같은 국가들에게 탈식민주의 논리를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탈식민주의가 서구 중심적인 사유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만 이것은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국가'는 상대적으로 실체가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국가'가 부재한 일제 강점기에 '국가'의 대체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민족'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민족'과 '국가'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음이 느껴질 것이다.

협력과 저항 - 일제말 사회와 문학

김재용 지음,
소명출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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