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출국 5개월 만에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귀국하는 모습. 며칠 뒤 삼성그룹측은 대국민 사과 회견을 하며 8000억 사회 환원 뜻을 밝혔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삼성의 계산법이 묘하다. 장부부터 들여다보자.
삼성은 어제(22일) 이건희 회장 일가가 3500억원을 사회에 헌납했다고 발표했다. 기존에 이건희 장학재단에 기부한 4500억원까지 합쳐 당초의 8000억원 사회 헌납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내역은 이렇다. 이건희 회장이 두 딸인 부진씨와 서현씨의 헌납액 500억원을 삼성전자 주식 7만9000주로 대납했고, 아들 재용씨가 800억원을 삼성전자 주식 12만1000주로 헌납했다고 한다. 또 지난해 사망한 막내딸 윤형씨가 갖고 있던 삼성SDS 주식 257만주와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주, 그리고 삼성애버랜드 주식 20만9000주를 내놨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형씨 몫으로만 2200억원을 헌납했다는 얘기다.
계산해 보자. 삼성SDS와 삼성네트웍스의 장외거래가격(두 회사 모두 비상장사다)은 각각 2만5000원과 3300원, 도합 755억원 쯤 된다. 따라서 윤형씨 몫의 삼성애버랜드 주식 20만9000주의 가치는 1500억원 가량으로, 주당 70만원에 계산한 셈이다.
이상한 삼성식 '추정 이득' 계산법
여기서 계산이 복잡해진다. 이건희 회장의 네 자녀가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통해 취득한 삼성애버랜드 주식은 125만4000여주, 이중 윤형씨 몫 20만9000주를 제하면 104만5000여주가 된다. 대략 5배의 주식을 윤형씨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자녀가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세 자녀가 헌납했어야 하는 돈은 7500억원이어야 한다. 삼성이 8000억원 사회 헌납을 발표하면서 이건희 회장 자녀의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따른 '추정 이득'을 토해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300억원만 내놨다. 어떻게 된 일인가?
포인트는 '추정 이득'의 개념이다. 96년 당시 삼성애버랜드 전환사채 가격은 주당 7700원, 하지만 참여연대와 검찰은 이 발행가격은 턱없이 낮은 액수라며 적정가액을 각각 8만원과 8만5000원으로 제시한 바 있다. 삼성이 밝힌 추정 이득은 적정가액에서 발행가격을 제한 차액을 일컫는다. 적정가액을 어떻게 산출했는지는 모르지만 1300억원은 바로 이런 계산법에 근거해서 나왔다.
이런 계산법에 따르면 현 시가인 주당 70만원에서 '추정 이득'을 뺀 나머지 금액은 '정상 이득'이 된다.
희한하다. 불법적인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 천문학적인 이득을 챙긴 다음에 정상 이득은 취하고 추정 이득만 제하겠다는 계산법은 도대체 어떤 회계 원리에 입각한 걸까? 그런 식의 계산법은, 일단 일을 저질러 정상 이득을 챙긴 뒤에 문제가 발생하면 추정 이득만 토해내면 된다는 말 아닌가? 참 쉬운 셈법이다.
이런 식의 계산법이라면 1300억원을 '헌납금'이라고 보긴 어렵다. 차라리 '면피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래도 접자. 8000억원 사회 헌납 발표 때도 논란이 됐지만 밀어붙인 삼성이다. 하지만 이 건 다르다. 앞으로 중요 사안으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주목되는 이건희 장학재단
이건희 회장 일가가 내놓은 주식을 받는 곳은 이건희 장학재단이다. 윤형씨 몫의 삼성애버랜드 주식 절반이 교육부로 갔으니까 대략 2800억원 어치의 주식을 이건희 장학재단이 갖게 됐다. 이건희 장학재단이 삼성의 주요 주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건희 장학재단은 이 주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에 내다팔아 현금화한 뒤에 교육사업 종자돈으로 쓰는 게 맞는 것 같지만 현실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주식을 내다판다고 해서 살 사람이 선뜻 나설 것 같지 않다.
삼성전자 주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비상장사 주식들이다. 따라서 이건희 회장 일가와 계열사들이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기에 경영 참여를 바랄 순 없다.
배당이득을 바라고 주식을 살 수도 있지만 규모가 너무 크다. 기업이 아니고선 투자가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배당이득이 소소하다.
있기는 있다. 바로 삼성 계열사가 이건희 장학재단으로부터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이다. 경계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상황이 이렇게 연출되면 삼성의 사회 헌납은 계열사 지분 챙기기 편법으로 둔갑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삼성이 이런 무리수를 둘 것 같지는 않다.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까지 구성하겠다고 한 삼성이다. 사회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떨까? 이건희 장학재단이 삼성 주식을 그대로 보유한 채 배당 이득 등을 교육사업 재원으로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건희 장학재단은 삼성의 계열재단이다. 주요 주주로서 삼성 계열사의 의사결정과정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형식상 주식 소유주체는 분리됐지만 내용상 주주권 행사주체가 긴밀히 연관될 수도 있다. 이게 문제다.
해법은 이건희 장학재단을 명실상부하게 삼성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방법은 재단 이사회를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 헌납, 주식 명의 이전으로 끝나선 안된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정부의 판단과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정부가 나설 여지는 없다. 정부가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특정 재단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순 없는 일이다.
결국 '사회'가 나서 이건희 장학재단의 중립화를 촉구할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말처럼 여의치가 않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대표성과 결정권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공론이 제기돼야 한다. 넉 달을 끌어온 사안이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헌납은 주식이 형식상 주소 이전하는 꼴로 치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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