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MBC 드라마 <주몽>의 시청자 게시판이 연일 뜨겁다. 재미있다는 칭찬도 있고, 자랑스런 고구려사를 왜곡했다는 비판도 있다.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은 흔하지만, <주몽>처럼 연일 역사논쟁으로 게시판이 달아오른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고대사
아테네의 고고학 박물관에 갔을 때 그저 부럽기만 했다. 고대 유물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였다. B.C. 몇 천 년 전 유물들인데도 너무 많아 자리 하나 차지 못하고 무더기로 쌓여 있다. 고대 그리스의 기록도 이에 못지않게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고대사는 화가 날 정도로 기록이 적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중국 사서의 <동이전> 발췌한 것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국사 교과서 초기 국가편(부여, 옥저, 동예 등의 국가들)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사실상 베끼다시피 서술했다.
학부 시절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대사는 천재가 연구하고, 중세사는 보통사람이 연구하고, 근대사는 체력으로 연구합니다. 고대는 사료가 적어 상상력을 많이 발휘해야 하니 천재가 연구해야 하고, 중세는 양이 적당해서 저 같은 보통 사람이 연구하기 좋지요. 근대사는 자료가 많아 누가 많이 보느냐 싸움이니 체력으로 한다고 합니다."
고대사는, 군데군데 구멍이 난 곳에 무엇이 써있었는지 복원해야 하는, 낡고 벌레 먹은 고문서와 같다. 구멍난 부분을 바르게 복원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주몽>의 작가도 인터뷰에서 상상력을 많이 발휘하겠다고 밝혔다. 사극 <주몽>은 순전히 거짓말이 아니냐, 역사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오히려 역사 왜곡에 나서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극이 역사 연구에 영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역사가에게는 사실만 써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작가에게는 그런 제약 없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럴 듯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되어 새로운 역사 이론이 나올 수도 있다.
사료의 문제
게시판에는 작가가 기본적 역사 공부도 하지 않고, 식민 사학이 주장한 잘못된 학설대로 드라마를 썼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시청자가 한 학자의 견해만 읽고 그 반론은 읽어보지 않아서이다.
자료가 적은 고대사이다 보니 학자들은 궁리를 거듭해 많은 학설을 내놓았고, 상당수가 갑론을박 중이다. 아마도 정설, 통설이 가장 적은 시대가 고대사가 아닐까 싶다. 어떤 학설을 명쾌하게 부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환단고기, 태백일사, 규원사화 등이 고대사 사료인데, 식민사학에 오염된 강단 사학계가 이들을 부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신뢰도가 높은 사서(예를 들자면, 사마천의 <사기> 등)도 꼼꼼히 사료 비판을 해서(<사기>의 한의 고조선 정벌 기록의 경우 중국인의 시각으로 쓴 것이니 중도적 시각에서 다시 비판적으로 검토, 이용해야 한다) 이용해야 하는데, 진위 논쟁이 있는 책을 믿고 싶다고 무조건 이용할 수는 없다.
이는 일본이 논란이 많은 역사 기록(<일본서기>는 일본 고대사 연구의 기본적 사서이지만, 6세기 이전 기록은 전설로 보는 학자가 많다)을 근거로 독도, 임나일본부의 역사를 왜곡한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도 똑같은 짓을 하는 격이다. 환단고기 등이 신뢰할 수 있다고 밝혀지면 사료로 쓸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주몽>의 드라마적 설정과 역사 왜곡 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