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가' 아닌 '작가'이고 싶어요"

[인터뷰] <소설 목민심서>의 그녀, 황인경을 만나다

등록 2006.05.24 12:22수정 2006.05.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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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잠시(?)’ 쉬고 있었을 뿐, 작품 활동을 그만둔 것은 ‘절대’ 아니라며 웃는 황인경 작가.
10년 동안 ‘잠시(?)’ 쉬고 있었을 뿐, 작품 활동을 그만둔 것은 ‘절대’ 아니라며 웃는 황인경 작가.나영준
‘학자 정약용 VS 장군 고선지’

둘의 공통점은 무얼까?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조선의 대표적 문인이던 정약용과 고구려 유민으로 아득한 시절 당나라의 서역 정벌을 지휘했던 무인 고선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그렇다. 바로 한 여성작가에 의해 소설로 조명된 바 있는 인물들이다.


지난 1992년 출판돼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지금까지 3백 만권이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 <소설 목민심서>와 ‘전남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며, 지난 1996년 출판된 <돈황의 불빛>이 그것.

우연한 기회였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잊힌 첫사랑의 사진을 발견하듯, 서류를 찾다 책장 머리에 꽂힌 <돈황의 불빛>을 접하게 된 건. 다시 소설을 읽었고 책장을 덮었을 때 자연스럽게 황인경이라는 작가가 떠오르며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외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한 과정일 뿐”

궁금증을 풀기 위해 황 작가를 찾아간 곳은 책 먼지가 들썩이는 작업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말끔한 호텔의 사무실이었다. 1996년 <돈황의 불빛>을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한 황인경.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작가 말고도 호텔 웨딩컨설팅 사업부의 부사장, 오케스트라 감사, 교회 집사 등 여러 개의 직함이 생겼다.

웨딩컨설팅 사업부를 총괄하고,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신앙생활에 집중하며 외도를 해 온 그녀. 하지만 예비 신랑신부들의 사랑을 돕고, 음악을 접하고, 마음의 평안을 꿈꿔서일까? 50대 초반에 들어섰음에도 그녀의 모습은 <소설 목민심서>에 새겨진 14년 전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생기가 넘쳐났다.


<소설 목민심서>를 구상하고 집필한 기간이 7년, <돈황의 불빛>을 신문에 연재하고 출판하는데 2년이 걸렸으니 어찌 보면 황 작가에게 10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궁금했다. 혹 이제 작가라는 본업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

황 작가는 그 동안 ‘잠시’ 쉬고 있었을 뿐, 작품 활동을 그만둔 것은 ‘절대’ 아니라며 이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작품에 영향을 미칠 과정이라는 진단을 빼 놓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인데 조만간 집필에 들어갈 거예요. 민감한 내용이라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요.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쓰고 싶은 건 작가의 욕심 아닐 까요. 예비 신랑 신부들의 사랑을 돕는 일은 즐거워요(웃음). 음악도 그렇고요. 소설이나 음악이나 종교나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다는 점에선 한길을 간다고 할 수 있죠.”

글 쓴다는 것은 발가벗겨 진다는 것을 깨달은 어린 시절

문득 작가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그러자 그녀는 자못 심각하게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사생대회 때 무역업을 하시던 부모님이 일본으로 출장을 떠나시는 바람에 혼자 갔었어요. 그래서 서운한 마음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했는데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께서 잘 썼다며 제 글을 전교생 앞에서 읽으시는 거예요. 그 때 어찌나 부끄럽던지… 글을 쓰는 게 이렇게 ‘발가벗겨 지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죠.”

황 작가는 당시의 아련한 추억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 좋은 글을 한 번 써 보자’며 내민 갖은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스물한 살에 결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로 된 책을 한 번 써 보자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 나이 스물아홉이었죠.”

"오히려 닮지 않으려 책을 많이 읽는다"는 황인경 작가.
"오히려 닮지 않으려 책을 많이 읽는다"는 황인경 작가.나영준
이후 그녀는 다른 작가들이 쉽게 다루지 못했던 정약용과, 관련 자료조차 찾기 힘든 고선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어찌 보면 역사 소설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여성의 입장에서나 많은 작품을 쓰지 않은 작가의 입장에서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 하다.

“다산은 누구도 다루지 않았어요. 특히 그는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 미술, 천문학, 역학 등 다방면에 박식해서 대중적인 이야기로 풀 수 있겠다 싶었죠. 하지만 문인이다 보니 활동성이 좀 떨어지는 점이 있었죠. 그래서 찾은 게 고구려 유민이던 고선지 장군이에요. 자료가 별로 없어 애를 먹었죠.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것 같아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어요. 하지만 남성적인 모습을 부각시킨 점은 만족해요.”

그녀는 현재 서른한 살과 스물여덟 살인 아들 둘을 둔 어머니다. 작가, 부사장, 집사에 어머니와 아내에 이르는 다양한 역할 중 어느 직함에 가장 애착이 가느냐고 묻자 여전히 “황 작가라 불리는 게 제일 좋다”며 배시시 웃는다. 하지만 현재의 생활은 작가 활동을 하기에는 책 볼 시간도 없이 너무 바쁜 게 아닐까. 그녀는 “오히려 닮지 않으려고 많이 읽는다”며 문학에의 끈을 놓고 있지 않음을 밝혔다.

‘잡가’ 아닌 ‘작가’로 남고 싶었다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라는 황 작가는 이야기나 사건의 전개 보단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경향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작품이라는 게 시대를 반영하니까 한편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이 대세라고 해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틀을 깨고 껍질을 벗지 않겠나 싶어요. 작품의 추세가 맞고 안 맞고를 떠나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작품이라는 건 무언가 남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읽고 나서 우울하고 속상한 것 보단 희망을 주는 게 좋다고 개인적으로 믿습니다(웃음).”

황 작가는 옷도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래서 지금도 옷장을 보면 십 수 년 된 옷들이 많다고. 책 읽기도 글쓰기도 옷 입기도 자신의 생각대로 고수하는 모습에서 외모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인함이 전해졌다. 그렇지만 <소설 목민심서>가 소위 빅히트를 친 후, 아르바이트생이 밤새워 ‘인지’ 도장을 찍던 당시에도 그녀의 생각을 고수할 수 있었을까?

“청와대 부대변인을 맡아 달라, TV사회를 봐라, CF를 찍자, 대학 전임으로 와라, 잡지 머리말을 써 달라 등 정말 제안이 많았죠(웃음). 하지만 저는 그때 그때 그들의 기호에 맞게 쓰이는 ‘잡가’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저를 알고 싶다면 제 작품으로만 만족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저는 ‘작가’이고 싶거든요.”

그녀는 요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필을 사 놓았다고 한다. 또 다시 외도냐고 묻자, 글을 쓰기 위한 그림이라며 활짝 웃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룬다며 황 작가는 부드럽고 푸근한 표정을 보였다. .

그런 그녀가 구상하는 다른 이야기는 무엇일까? “죄송하다”며 입을 다무는 그녀의 모습이 다음 작품을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즐거운 궁금증이 될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 그때 기호에 맞게 쓰는 '잡가'가 아닌 작품으로 말하는 '작가'이고 싶다는 황인경 작가.
그때 그때 기호에 맞게 쓰는 '잡가'가 아닌 작품으로 말하는 '작가'이고 싶다는 황인경 작가.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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