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는 축구대표팀 선수들.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치인들이 하는 것을 보니까 맨날 싸우기만 하고, 내 삶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 게다가 선거라고는 하지만 맨날 텔레비전에서 보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것도 아니고, 뽑아야 하는 사람이 넷이나 된다고 하니 누굴 뽑는 선거인지도 헷갈리기도 할 거야.
반면에 월드컵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괜히 흥분되잖아. 세계 유명 선수들의 경기도 즐길 수 있고,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라도 한다면 그 짜릿한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
그러니 선거보다는 월드컵 경기에 관심이 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 언론에서는 월드컵 때문에 선거가 외면당한다고 하지만, 축구팬 입장에서는 선거 때문에 월드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게 더 불만일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일구야. 지방자치선가가 그렇게 우습게 볼 것만은 아니야. 너나 형 같은 서민에게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보다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의 활동이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아 주민생활과 복지, 환경에 관련된 일을 주로 맡아서 처리하지. 지방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과 공공시설의 사용료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걷는 거야. 도서관이나 박물관처럼 편의시설을 짓는 것도 지방정부가 결정해. 각종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는 지방정부의 결정에 따라 일구네 집 옆 공터에 화장장이 들어 설 수도, 체육공원이 들어 설 수도 있어.
지방선거제도가 복잡하다고 말들 많이 하지만 피파(FIFA)에서 매번 새로 고치는 축구 규칙보다는 간단해.
이번 지방선거는 6개 선거(1차로 기초단체장·지역구기초의원·비례대표기초의원, 2차로 광역단체장·지역구광역의원·비례대표광역의원 선거)를 실시해 6명을 선출하는 바람에 후보자가 많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 숫자보다 많지는 않잖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후보자별 경력이나 공약도 검색해 볼 수 있고, 요즘은 병역, 납세, 전과 등 후보자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볼 수 있어. 꼭 인터넷 검색이 아니더라도 집 근처에 붙어있는 벽보만 찬찬히 봐도 선택에 도움이 될 거야.
지난 선거까지만 해도 만 19살의 청년들은 술을 먹어도 되고, 성인 영화도 볼 수 있었는데 투표할 권리만 주어지지 않았어. 이번에 19살로 선거연령이 낮아지면서 비로소 일구 너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지. 선거연령을 한 살 낮추기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어. 그 노력을 기억할 것까진 없지만, 네게 주어진 선거권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를 한다고 해서 월드컵이나 축구국가 대표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아. 오히려 국가대표 선수들은 독일로 가기 전에 부재자 투표제도를 이용해 투표에 참여했어. 독도에서도 투표하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의 등에 업혀 나오면서까지 투표에 참여하는데 네가 빠지면 되겠니?
선거제도를 바꾸거나, 월드컵 개최 주기를 바꾸지 않는 한 아주 오랫동안 월드컵과 지방선거는 같은 해, 같은 시기에 함께 열리게 될 거야. 아무래도 지방선거가 월드컵의 열기를 누르기는 힘들지 않겠어? 그렇다고 지금처럼 지방선거를 외면하거나 거부한다면 우린 민주주의 역사의 큰 성과물 하나를 버리는 꼴이 되는 거야.
내 손으로 시장도 정하고, 도시사도 정할 수 있다는 게 신나지 않니? 조금만 더 관심을 갖자. 그리고 투표도 하자. 지방선거를 월드컵과 함께 4년마다 돌아오는 또 하나의 축제로 만들어보는 거야. 일구 네가 나서면 가능한 일이야.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니?
덧붙이는 글 | '일구'는 올 해 첫 선거권을 가지게 된 열아홉 청년 모두를 '19'라는 숫자를 응용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 기사는 KBS2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현대생활백수'의 유행어를 빌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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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야, 형이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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