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는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한옥에 이사와서의 풍경①] - 빛나는 창들

등록 2006.05.26 20:21수정 2006.05.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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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침 햇살에 빛나는 건너방 침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건너방 침실 ⓒ 조정구

한옥에 산다 하면, 사람들은 전통고가구나 한복 혹은 한식 등을 함께 떠올리는 것 같다. 옥인동에 작은 한옥을 고친 뒤 방송에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이 때 사회를 봤던 건축가가 집을 둘러보고 처음 한 말이 '이 집은 아직 가구나 인테리어는 집에 맞추지 않은 것 같군요'였던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한옥에는 그에 걸맞은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옥에서 이제 만 3년을 지내고 겨울을 세 번, 봄을 네 번째 맞이한 경험으로는 그렇게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한옥은 충분히 좋은 집이고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전통 고가구가 없다. 대부분의 가구들은 신혼 때 장만한 가구들이고 오랜 된 것은 나 어릴 적 아버지가 전파사를 하실 때 어찌어찌하다가 생긴 진공관 전축과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전축 케이스’라 불리는 목재장이 전부다.

아파트나 다세대와 마찬가지로 한옥도 주거로서 우리의 평범한 삶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특별한 대접을 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한옥에 살면,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여럿 있다. 아파트에 살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 그것들 중 오늘은 '빛나는 창’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a 가을 햇살 가득한 대청의 모습

가을 햇살 가득한 대청의 모습 ⓒ 조정구

우리집 주변에는 한옥뿐 아니라, 근생(근린생활시설이 들어가는 건물)이나 다세대주택, 15층이나 되는 대형 빌딩 등이 있으며 최근에 신축한 10층짜리 중규모의 사무소 임대건물도 있다. 따라서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주변의 높은 건물들에 가려 오전 10시나 11시가 돼야 해가 들어온다.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온 햇볕은 대청 유리창을 지나, 대청 안쪽을 비춘다. 이 빛은 여기저기를 부딪치며, 대청과 안방 사이에 있는 사분합문도 밝게 비춘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집안 전체가 '빛’으로 가득해 지는 것이다.

a 밝게 빛나는 안방 4짝문

밝게 빛나는 안방 4짝문 ⓒ 조정구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한옥의 창과 문은 창살이 밖으로, 창호지가 안으로 붙는다. 보통, 안방에서 보면 그저 허연 창호지문이지만 빛이 가득한 대청이 되고 나면, 그 빛이 비쳐 4짝문은 신비한 문양을 띠며 '빛나는 창'이 된다. 봄이 되고, 초여름에 접어드는 요즘, 이른 아침부터 드는 햇살과 '빛나는 창들'은 안방 4짝만이 아니라, 침실로 쓰는 건넌방, 그리고 안방 주인창으로 눈부신 빛과 살그림자를 만들며, 우리 가족의 아침을 맞이해 준다.

아파트에 살 때도, 이보다 더 좋은 햇살을 받고 아침을 맞이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도 그것은 집과 내가 별로 나눈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a 마당에서 본 건너방을 비추는 햇살

마당에서 본 건너방을 비추는 햇살 ⓒ 조정구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집이나 거기에 사는 사람은 서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집일 수록 여러 이야기가 있고, 부지런하고 안목 있는 사람일수록 집에 해줄 일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옥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많은 집이다. 격앙된 표정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말하듯, 부자연스러운 형태와 공간으로 말하려는 현대 건축과 다르게, 한옥은 조용히 가진 것을 내어 놓는다. 마당이 있고, 그것을 맞이하는 대청과 방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여유로운 창과 문살들이 이런 조용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인공들이라 하겠다.

a 햇살이 드는 창과 까맣게 자고 있는 식구들

햇살이 드는 창과 까맣게 자고 있는 식구들 ⓒ 조정구

처음 와서 맞이한 아침의 풍경이나,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만 안 된 날에,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에도, 햇살 가득한 대청과 빛나는 창들이 있었음을, 글을 쓰면서 알게 된다. 어쩌면 한옥이 우리 가족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우리와 삶을 같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원래 집이란 우리들과 삶을 같이 하는 게 아니었던가?

덧붙이는 글 | 도시답사와 한옥을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우리 도시에 대한 이야기, 한옥을 살면서 느끼고 체험한 이야기들을 간간이 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도시답사와 한옥을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우리 도시에 대한 이야기, 한옥을 살면서 느끼고 체험한 이야기들을 간간이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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