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청년 귀농인 "나이는 문제되질 않아"

[인터뷰] 귀농 6년차 이승성씨 부부의 사는이야기

등록 2006.05.29 11:38수정 2006.05.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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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7세에 농사일을 시작해 노동으로 거칠어진 이승성님의 손.

57세에 농사일을 시작해 노동으로 거칠어진 이승성님의 손. ⓒ 이종혁

요즘 시골에서 나이 60이면 젊은 축에 속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귀농을 해서 농촌으로 들어가 영농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는 이에 비해서 젊은 편입니다. 나이 60이 넘어 귀농한다고 하면 은퇴형 귀농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 많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일은 나이를 초월해서 정신만 살아 있으면 된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시는 63세의 귀농 6년 차 청년농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27일 경북 상주군 화북면 청화산 부근에 귀농한 농민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청화산 부근은 20년이 넘도록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친환경농업의 역사가 오래된 지역입니다. 부산 귀농학교 현장체험학습과 일손돕기를 위한 이번 자리에는 귀농인 5가구와 귀농학교 동문 25명이 함께 만나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일하며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천귀농학교 2기 출신으로 57세의 나이로 귀농해서 6년째 농민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승성씨를 만나서 사는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상주는 귀농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한데, 이분은 지역 귀농인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십니다. 다른 귀농인들은 이씨 부부를 "일 열심히 하고, 농사 잘 지으시는 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승성씨에게 들은 귀농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농사짓고 사는 일이 힘들지 않으세요.
"인생이란 것이 원래 아름답기도 하고 고생스러운 일이 있기도 하고,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것입니다. 귀농하고 이제 6년 정도 지나니 지금의 생활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농사를 배우고 일할 때는 건강도 좋지 않았고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에서 노동하면서 사니까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사람 살면서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아도 이만큼 중요한 것은 없드라고요."


- 농사는 얼마나 짓습니까?
"귀농 첫 해에는 텃밭 정도만 했지요. 다음 해에는 300평 정도 밭을 빌려서 했는데 작년에는 밭만 1700평 정도 했는데 많이 하다 보니까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올해는 1000평으로 줄였어요. 작은 평수에서 더 알차게 수확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하고 시도하면 그렇게 많이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이 하는가보다 얼마나 알차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a 일하다 캐낸 더덕을 안주삼아 시원한 막걸리로 새참을. 아.. 좋다.

일하다 캐낸 더덕을 안주삼아 시원한 막걸리로 새참을. 아.. 좋다. ⓒ 이종혁


- 하루에 얼마 정도 일하세요.
"6시간 정도 집중해서 일하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처음 농사배울 때는 지금 6시간 일하는 정도를 해내려면 3배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입니다. 일머리라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이 알아서 이것을 터득해야만 하거든요. 농사는 단순하면서도 원칙이랄 것이 따로 없어서 지혜를 많이 이용해야 덜 고생하고 즐겁게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뿌리는 시기와 거두는 시기는 알아야 하지만 나머지는 알아서 조절해야 합니다. 잘 생각하면 한번에 할 일을 일머리가 없을 때는 죽기살기로 여러 번 해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물론 6시간이란 것은 농번기와 농한기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농사의 양보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귀농해서 적응하는데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처음엔 당연히 힘들었지요, 3년이 고비였던 것 같습니다. 1년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했어요. 괴나리봇짐 싸 들고 처음 장터에 나온 것처럼 정서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 같았고 무지 불안했어요. 2년째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무작정 바쁘기만 했어요. 3년째는 돈도 바닥나고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까지 겹쳐서 막막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3년이 지나고 나니까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얼마나 농사를 지어야 하고, 그런 목표들이 구체적으로 되면서 마음에 의지가 생기고 힘이 되더라고요. 프로농사꾼 한 명이 막 귀농 한 사람 열 명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일곱 명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농사꾼이 된 것 같습니다."

- 농사짓고 살면서 좋은 점을 이야기 해 주세요.
"자연에 매료되어 사니까 다른 머리 아픈 생각들이 없어졌어요. 물결이 험하게 치는 곳에서 잔잔한 곳으로 오니까 마음 속의 지저분한 것들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 같고요. 도시에서 살 때는 몸이 많이 안 좋았는데 자연 속에 살면서 치유가 많이 된 것 같아요."

a 소를 키우는 축사는 잘 관리되어 냄새가 나지도 않고, 바닥도 질지 않습니다.

소를 키우는 축사는 잘 관리되어 냄새가 나지도 않고, 바닥도 질지 않습니다. ⓒ 이종혁


- 많은 나이에 귀농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요?
"사람 사는 일이란 것은 나이를 초월해서 정신만 살아 있으면 된다고 봐요. 일하다 보니 혈기가 생기고, 건강해지고, 자신감이 생겨서 좋았어요. 그리고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니까 나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 귀농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건축 관련한 귀농 강사의 말만 듣고 200만원이 넘는 공구를 구입해서 들어왔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공구는 두 개 정도 밖에 안 되고 살 필요도 없는 것들이어서 많이 황당했어요. 희망과 용기를 주는 좋은 강의도 있었지만 좀 비현실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 귀농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귀농 할 때는 맨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뼈를 묻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와야 오래 버티고, 농민으로 정착할 수 있지 하다가 안 되면 도시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실패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원래 고민이 많을 시기입니다. 나도 도시에 있을 때는 엄청난 고뇌로 살아갔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진 게 없으니 걱정이 없어졌어요. 내가 제일 행복한 것 같습니다. 내가 놀랄 정도로 마음이 열리고 좋아진 것 같아요. 농촌의 현실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내가 기른 것을 내가 수확하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점과 좋은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일입니다. 귀농, 해볼 만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나이 많은 청년 농민의 이야기가 어떤 분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좋은 면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친 손을 자랑스럽게 내 보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는 내가 행복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얼마나 자신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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