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두륜산 대둔사

땅끝 해남...서산대사의 부도와 발우가 남아있는 절

등록 2006.06.01 11:01수정 2006.06.01 16:14
0
원고료로 응원
몇 해전 해남 두륜산 등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에 온몸 젖어가며 북미륵암을 거쳐 대둔사(대흥사)로 내려왔습니다. 사진은 물론이고, 너무 뒤처져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한 채 대둔사(대흥사) 일주문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래선지 대흥사에 대한 느낌은 거의 남아 있지도 않았고,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둔사 경내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과 물길이 여행객을 반깁니다. 단풍을 보고있노라니 가을이 그리워집니다.
대둔사 경내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과 물길이 여행객을 반깁니다. 단풍을 보고있노라니 가을이 그리워집니다.문일식
이번 여행에서 대둔사(대흥사)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은 대둔사(대흥사) 경내까지 이르는 울창한 숲길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느낌이 좋았던, 만물이 소생하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며 삐죽삐죽 새순을 내미는 아름다운 숲길이 바로 대둔사(대흥사)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비가 내린 뒤라 신록은 더욱 더 깔끔하게 새단장하고, 숲길을 따라 구불거리며 따라오는 맑은 물길 또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등산객들의 바쁜 발걸음도 있었지만, 맑고 깨끗한 숲 속을 느끼면서 걷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부의 모습과 손을 맞잡은 채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이곳의 주인공이 대흥사가 아닌 바로 이 숲을 따라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옛 선현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즐긴 탁족을 하고 싶은 맘을 간신히 누르며 맑은 기운을 맘껏 들이마시며 걸었습니다.

대둔사(대흥사)로 가는 숲길에는 느티나무, 참나무, 벚나무 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고, 넓게 퍼진 동백나무 군락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두륜산에는 왕벚꽃나무의 자생지가 있어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대둔사 부도밭 뒷편 가운데에 세워진 서산대사 부도
대둔사 부도밭 뒷편 가운데에 세워진 서산대사 부도문일식
10m 됨직한 피안교를 건너면 바로 일주문을 통과하게 되고, 얼마가지 않아 대둔사(대흥사)의 부도밭에 이릅니다. 이곳에는 약 50여 기의 부도와 10기 남짓되는 부도비가 낮은 담장 안에 위엄있게 앉아 있습니다.


이 부도밭에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서산대사의 부도도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곳 대둔사(대흥사)의 사세가 커지게 된 것은 서산대사의 유언 때문입니다.

평양의 묘향산 원적암에서 서산대사는 입적하게 되는데 입적하기 전에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이 돌아갈 곳이라며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에 있는 두륜산에 두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제자였던 사명당 휴정과 뇌묵당 처영은 가사와 발우를 대둔사(대흥사)에 안치하게 됩니다.

대둔사(대흥사) 부도밭은 긴 담장으로 둘러싼 뒤 안으로의 진입을 하지 못하게 문을 잠궈 놓았습니다. 마음껏 둘러보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미황사의 부도밭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담장 뒤편으로 돌아가서 서산대사 부도를 보고 여러 부도를 먼발치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숲길은 계속이어지고, 해탈문 앞에 이르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숲길은 끝이 나고 대둔사(대흥사)에 이르게 됩니다. 사천왕문은 없고 해탈문만이 남아 있습니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뒷편으로 두륜산 자락이 기세좋게 펼쳐져 있습니다.

대둔사(대흥사) 일주문.
대둔사(대흥사) 일주문.문일식
대둔사(대흥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사찰로 현재 대흥사로까지 불리기까지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륜산의 옛이름은 '한둠'이었고, 한강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은 크다의 뜻이고, 둠은 '둥글다'내지는 '덩어리'라는 뜻이라 합니다. 여기서 한자로 바뀌면서 대듬, 대둔으로 바뀌었고, 사찰 이름 역시 대둔사로 바뀌었습니다. 한편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에서 백두대간을 거쳐 마지막으로 끝맺는 산이라 하여 한글자씩 따서 두륜산으로 바뀌었습니다.

한편 일제시대로 들어서면서 두륜(頭崙)산 대둔사는 두륜산(頭輪)산 대흥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지금 글에서도 같이 섞어 쓰는 이유도 대둔사가 맞겠지만 대흥사가 너무 많이 통용되기 때문입니다. 일주문에서만큼은 두륜(頭崙)산 대둔사를 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앞으로도 대흥사를 대둔사로 바꿔 부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원 구역인 천불전 입구 가허루의 둥근 문턱. 가허루를 통해 천불전이 보입니다.
남원 구역인 천불전 입구 가허루의 둥근 문턱. 가허루를 통해 천불전이 보입니다.문일식
대둔사(대흥사)는 총 4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북원과 천불전을 중심으로 하는 남원, 사당영역인 표충사, 대광명전영역 등입니다. 우리나라의 다도를 중흥시킨 1인자 초의선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연못인 무염지를 지나 남원영역인 천불전에 들어섰습니다.

천불전은 가허루를 통과해야 하는데 가허루 문턱은 둥글게 만들었고,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가허루 문턱을 오른발로 디디고 들어가면 아들이, 왼발을 디디고 들어가면 딸이 잘 된다고 합니다. 결혼을 못한 저로서는 그냥 넘어설 따름입니다.

천불전의 아름다운 꽃살무늬 창살
천불전의 아름다운 꽃살무늬 창살문일식
가허루에 들어서면 아담한 정원처럼 꾸민 뒷편에 천불전이 높은 기단위에 앉아 있습니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천불전의 모습은 날개를 활짝 핀 독수리처럼 위세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데 정면에 나있는 문에는 꽃무늬가 가득한 분합문살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북 부안의 내소사나 개암사, 논산의 쌍계사에서 볼 수 있는 꽃창살이어서 화려함과 함께 꽃향기에 푹 젖은 듯했습니다.

천불전 내부의 전경. 일본을 표류하다 돌아온 불상에는 '日'자가 씌여져 있답니다.
천불전 내부의 전경. 일본을 표류하다 돌아온 불상에는 '日'자가 씌여져 있답니다.문일식
천불전에는 옥돌로 만든 불상이 가득 들어차 있고, 불상 하나하나마다 그 모습이 서로 다릅니다. 이 불상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경주에서 천불을 만든 뒤 뱃길을 따라 해남으로 오는 도중 배 한척이 일본에 표류하게 되었는데, 일본인들이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시려하자 꿈에 나타나 이르기를 '우리들은 해남 대둔사 가는 길이며, 이곳에 안치될 수 없으니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다시 배에 태워 해남 대둔사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일본인들이 아쉬움에 불상에 '日'자를 표기해놓았다고 합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더욱 더 커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냇가를 건너 북원에 이릅니다. 삼진교를 건너 침계루를 통과하면 바로 대웅보전과 맞닥트립니다. 일자로 길게 쌓은 석축위로 대웅보전과 명부전, 응진전, 범종각이 일렬로 나란하게 세워져 있고, 응진전 앞에는 보물 32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외롭게 서 있습니다.

대웅보전 내부 대들보를 넘나드는 용과 새를 타고 나는 사람의 형상이 걸려 있습니다.
대웅보전 내부 대들보를 넘나드는 용과 새를 타고 나는 사람의 형상이 걸려 있습니다.문일식
대웅보전 내부에는 대들보를 타고 넘나드는 용들이 휘황찬란하며, 주변에는 새를 타고 춤을 추거나 악기를 불고 있는 비천상도 걸려 있습니다. 대웅보전 정면 기둥위에도 용들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왼쪽편의 용의 모습은 마치 어퍼컷을 맞아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어서 늠름하게 보이는 주변의 용들과 대조적이었습니다.

대웅보전 정면 기둥위에 용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어퍼컷 맞은 듯한 용의 모습도 보입니다.
대웅보전 정면 기둥위에 용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어퍼컷 맞은 듯한 용의 모습도 보입니다.문일식
천불전과 무염지를 지나 올라가면 표충사에 이릅니다. 표충사는 서산대사와 사명당, 뇌묵당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세 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표충사의 편액은 조선 정조가 직접 써서 내려준 것이라 하며, 내부에는 세분의 영정이 나란히 걸려 있고 표충사 좌우로는 조사전과 표충비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표충사 주변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발우
표충사 주변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발우문일식
표충사 앞쪽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서 전한 가사와 발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무염지에서 맹꽁이 한 마리가 기특하게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고 해탈문 앞에 서서 시원하게 펼쳐진 두륜산의 능선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곳' 서산대사가 말씀했던 대로 대둔사(대흥사)는 땅끝마을로 알려진 이 곳 해남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며 백두대간의 대미를 장식했고, 법맥이 닿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둔사 계곡의 맑은 물빛이 보기만해도 시원해 보입니다.
대둔사 계곡의 맑은 물빛이 보기만해도 시원해 보입니다.문일식
대둔사(대흥사)를 나와 숲을 따라가는 길은 들어설 때의 신선함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막 피어난 연두빛의 새 잎들이 바람에 몸둘 바를 모르고, 산새소리, 옆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가슴속에 묵은 찌꺼기들을 하염없이 흩어놓고 있었습니다. 해남 두륜산 대둔사 또다시 걸어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2. 2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3. 3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