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적 '반 한나라당 연합'은 유통기한 지났다

[5·31 그 후 ⑩] 오세훈 득표율 61%의 의미

등록 2006.06.03 17:13수정 2006.06.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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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 결과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역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얻은 동력이 되었던 대통령 탄핵 역풍을 빗댄 말이다. 여당은 처참하게 졌고, 한나라당은 완벽하게 이겼다. 유권자들이 이런 선택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선거결과가 향후 정치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오마이뉴스>는 정치빅뱅까지 몰고 올 수 있는 정국에 대한 분석과 진단, 전망에 대한 글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이러한 '정치평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누리꾼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5·31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선출 결과
5·31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선출 결과오마이뉴스 고정미
예상은 했지만 여당의 참패는 자못 충격적이다. 건국 이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여당이 이토록 완패한 적은 없었다. 미증유(未曾有)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래 늘 적대적인 논조를 유지해온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신이 났다. 이들은 목청을 높여 이번 선거 결과가 "참여정부와 여당의 무능과 오만에 대한 비판"이라느니, "민심에 탄핵당했다"느니 하면서 평가하고 있다. 여당의 패배가 양과 질 모두에서 워낙 극악한 것이라, 보수언론의 평가가 타당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참여정부와 여당은 역탄핵을 당한 걸까?

참과 거짓

국민(이처럼 모호하고 부정확한 표현도 흔치 않다)들이 참여정부와 여당을 심판했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이 '참'이려면, 기존 한나라당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무당파 혹은 여당 및 타 정당 지지자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거 한나라당에게 표를 던졌다는 실증적 통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그런 통계는 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기존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지난 2002년 대선에 필적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고, 여당의 지지자들은 기권하거나 타 정당에 투표했다고 보는 것이 한결 합리적일 것이다.

서울만 보더라도 오세훈 후보가 얻은 득표율 61%를 투표율 51%를 감안하여 유권자 대비 지지율로 환산해 보면 31% 수준인데, 이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이 얻었던 지지율과 놀랄 정도로 같은 수준이다.

결국 기존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2007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인식하고 똘똘 뭉쳐 투표장으로 향한 반면, 여당 지지자들은 기권하는 편을 택한 것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가장 큰 원인인 셈이다.


물론 여당의 무능과 오만(?)에 분노한 일부 무당파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투표한 것도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원인 중에 하나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인이다. 와신상담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최고도로 결집한 반면, 기존 여당의 지지자들 중 대다수는 여당에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한 마당에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여당 지지자들이 기권 선택한 까닭


자, 위에서 살핀 것처럼 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간명하다. 한 마디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전부 투표소로 몰려간 반면 여당 지지자들은 대거 기권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 여당 지지자들은 도대체 왜 여당에 투표하는 대신 기권을 택한 것일까? 이제는 너무나 많이 언급되어서 식상한 감마저 있지만, 정부와 여당이 한국사회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발본적인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국사회 각 부면에 대한 개혁설계와 집행 모두에 서툴렀고, 심지어 개혁의지마저 끊임없이 의심받았다.

부동산 정책부터 대미 외교에 이르기까지 참여정부는 쉴새없이 지지자들을 이탈시켜 왔다. 본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지지자들은 한나라당의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과는 성격이 전혀 틀려서, 자신들이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이유가 상실되면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금방 철회하곤 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참여정부의 '불량 개혁'이 기존 지지자들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당이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사회의 각 부면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발본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해 기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길 밖에 없다할 것이다. 그러나 여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들어보면 철저한 개혁을 통해 전통적인 지지층을 복원할 생각 보다는, 고건 전 총리, 민주당, 심지어 국민중심당까지를 아우르는 '반 한나라 연대'를 통해 난국을 타개하려는 듯해 적잖이 걱정스럽다.

만약 여당이 고건 전 총리와 민주당, 그리고 국민중심당을 하나로 묶어 '반 한나라 연대'를 구성할 경우, 그 호칭이나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호남·충청의 지역연합을 통한 영남 고립화 전략이라고 밖에는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대결구도 통한 대선필승전략은 유통기한 지나

고건 전 총리
고건 전 총리오마이뉴스 권우성
도무지 반등을 보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지율, 보선에서의 거듭된 패배, 지방선거에서의 유례없는 참패 등을 감안하고, 한나라당이 경상도라는 확고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얘기도 나름대로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생각해보면 87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 선거지형에서 '지역주의'는 가장 강력한 상수(常數)였다. YS가 3당 합당을 통해 호남 고립에 성공함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DJ가 JP와 DJP연합을 통해 영남을 포위함으로써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호남과 충청(물론 충청의 지지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기인한 바가 컸다)의 전폭적인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백천간두의 위기에 몰린 여당입장에서야 지난 두 차례의 대선승리전략을 답습해 내년 대선에서도 승리하고픈 유혹을 느낄 법 하다.

그러나 여당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지역대결구도를 통한 대선필승전략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났다. 전라와 충청의 지역연합이 영남을 누르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전라와 충청의 표가 최고도로 결집해 여당 후보에게 향해야 하며, 둘째는 영남 표가 적잖이 분산되어야 한다.

DJ와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위의 두 요소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DJ와 노 대통령은 전라와 충청의 표를 최대한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DJ에게는 이인제라는 우군(?)이 등장하여 영남 표를 분산시켰고, 노 대통령은 그 자신이 영남 출신이었기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영남 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설령 여당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고건·민주당·국민중심당 등과 반 한나라 연합을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적시한 두가지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전라와 충청의 결집도는 이미 현저히 이완된 상태이다. '호남자민련'으로 전락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이나 고건 전 총리,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중심당이 결합한다고 해서 전라와 충청의 표심이 고도로 결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반면 경상도 사람들은 10년 만에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상태이다. 이인제 학습효과로 인해 이인제와 같은 배신자(?)가 다시 등장해 영남 표를 분산시킬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자, 이처럼 현실정치지형을 냉정히 살펴보면 지역대결구도 혹은 '동서 3차 대전'을 통해 여당이 한나라당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여당은 지역대결구도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을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그램

기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길은 간단하다. 상대방 지지자들 보다 우리편 지지자들을 더 많이 투표장으로 향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상대방 지지자들을 귀순(?)시키는 일은 수고롭기만 하고 보답은 적다.

영남패권주의에 감염되었든, 극우 반공 프레임에 포획되었든, 대한민국에는 선거 때면 언제나 한나라당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30~35%는 된다. 이들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에 대한 종교적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에 대한 관심은 끊고 범 개혁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총체적이고도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그램의 마련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명확한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그램의 제시 없이 지역대결구도를 통해 대선에 임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여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설혹 명확한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그램을 가지고 차기 대선에 임해서 패하더라도, 그 패배는 의미있는 패배일 것이며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 여당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사회 전 부면에 대한 총체적 개혁 프로그램의 마련,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그램의 마련임을 기억하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협동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 블로그에도 기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협동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 블로그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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